해외 산행

유럽 최고봉 엘브루즈 원정이야기

산달림 2013. 12. 12. 10:28

 

백두대간과 아홉 정맥을 잇는 이들의

엘브루즈(Elbrus 5,642m) 원정이야기

엘브루즈(Elbrus)와 코카서스(Caucasus)

코카서스(Caucasus)는 카프카스(Kavkaz)의 영어식 표현

유럽 최고봉인 엘브루즈(Elbrus)는 코카서스 산맥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상은 서봉(5,642m)과 동봉(5,621m)으로 이루어져 있다. 코카서스(Caucasus) 지역은 북쪽으로는 러시아, 남쪽으로는 코카서스3국(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과 이란, 터키, 서쪽은 흑해(黑海 Black Sea), 동쪽은 카스피해(Caspian Sea)와 접하고 있다. 카스피해에 접해 있는 독립국가연합의 아제르바이잔공화국 수도 바쿠에서 북서쪽으로 흑해를 향해 1,500㎞의 길이로 뻗어있는 코카서스 산맥은 동서양을 나누는 역할을 하고 있다.

본 내용은 정상 등반을 위한 고소적응과 정상 등반을 위주로 작성하고

현지 지명은 사람마다 발음이 조금씩 달라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발음을 택하였음

부푼 꿈을 안고 서울에서 모스크바로

6월 21일. 목요일, 드디어 기다리던 유럽 최고봉 엘브루즈 등정을 위해 출발하는 날이다.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며 공항리무진을 타기 위해 택시를 탄다. 날씨는 매우 좋다. 제발 현지에서도 이런 날씨가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다. 상계백병원 앞에서 공항까지 1시간여, 너무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1시간여를 더 기다렸다가 대원들과 합류한다.

이번 엘브루즈 원정은 6월21일부터 7월1일까지 9박11일 일정으로, 원정대의 대원은 모두 8명, 서울시청산악회 9정맥종주대원 5명(대장인 나와 총무인 최태석, 강운석·김훈·최분임 대원)과 여행사에서 소개한 2명(김해; 이상현, 유승광 대원), 그리고 여행사(유라시아트렉) 측 김주진 팀장이다. 모든 대원들과 합류하자 여행사(서기석 사장)에서 모든 출국절차를 밟아준다. 화물까지 모두 탁송완료 후에 곧바로 입국장으로 들어간다.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는 러시아항공(SU251편)이다. 인천에서 모스크바까지 근 7천여 킬로미터를 8시간 반 정도 걸려 도착한 다음 모스크바에서 하루를 묵는다. 러시아의 밤은 백야(白夜)현상으로 어리둥절하지만 날씨만큼은 아주 맑다. 이런 날씨가 며칠만 계속되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서울과 모스크바의 시차는 5시간.

모스크바의 궁금증을 뒤로하고 체겟으로

다음날인 6월 22일 금요일, 다시 모스크바 공항(세르메티에보)으로 이동하여 국내선을 타고 약 2시간여 걸려 민보디공항에 도착하고, 민보디공항에서 또 차량으로 3시간 정도 걸려 엘브루즈 등반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체겟에 도착한다. 체겟 역시 날씨는 최상급, 푸르디푸른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것을 보니 왠지 이번 원정에 좋은 징조처럼 느껴진다.

모스크바에서 첫 번째 우릴 맞아준 현지 가이드는 한국 유학생이었고, 민보디공항에서 두 번째로 우릴 맞아준 가이드는 러시아 현지인으로 보기엔 나이가 굉장히 많아 보이는 ‘블라디미르(52)’라고 하는 남자였다. 이때 까지만 해도 이 남자가 우릴 엘브루즈 정상까지 안내할 등반가이드 인줄은 몰랐다.

민보디공항을 출발해서 차량으로 서너 시간이 걸린다는 체겟까지는 아름다운 박산계곡을 지나는데, 문제는 대화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차창을 스쳐 지나가는 간판이나 안내판의 글자를 한 자도 알아 볼 수가 없다는 것. 처음 모스크바 공항에서부터 갑갑했던 것인데 눈에 보이는 모든 글자를 한 자도 알아 볼 수가 없었다. 영어, 중어, 일어 등 타국어 글자라곤 한 글자도 보이질 않는 것이다.

체겟에서 우리가 묵을 호텔(볼프람)은 호텔이라기보다는 산장형태인데 건물 외벽을 전혀 치장을 하지 않은 상태다(이후로는 산장이라 부름). 건물은 4층으로 주변은 전부 소나무로 말 그대로 송림지대. 오늘의 일정은 짐 정리하고 푹 쉬는 것이다.

짐을 내려 안으로 들어서니 숲속이라 그런지 약간 침침한 느낌은 들지만 외부와는 달리 내부는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다. TV와 소파가 놓여 있는 작은 거실에서 가이드가 한 깡마른 여자를 매니저라고 소개하며 이름은 ‘엘리나’라고 한다. 6시에 저녁식사를 하는데 식당은 지하 1층이라고 알려준다.

우리가 묵을 곳은 모두 2층이다. 모스크바에서 지냈던 짝대로 방을 배정 밭아 짐을 옮긴다. 방은 침대 2개와 TV, 그리고 샤워기만 있는 화장실. 짐만 옮겨놓고 바로 식당으로 내려간다.

저녁식사 메뉴는 빵과 야채(토마토, 오이, 양파), 생선(이름은?)구이 1마리에 안남미 쌀밥, 그리고 커피와 홍차가 준비되어 있는데 생선과 밥이 맨 마지막에 나온다. 가이드와 함께 식사를 마치고 모스크바에서와 마찬가지로 거주지 등록을 위해 여권을 맡겨두고 산책을 나선다. 약간 늦은 시간이지만 이곳 역시 백야(白夜)현상으로 산책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왔던 길로 광장 쪽으로 나서니 오른편으로 곤돌라 승강장이 보인다. 안내판에 이곳이 해발 2,120m이고, 중간 승강장이 해발 2,735m, 맨 위쪽 승강장이 해발 3,100m라고 표시되어 있다. 이곳의 방위를 살펴보면 우리가 왔던 쪽, 즉 박산(Baksan) 계곡이 동쪽으로 흐르고, 엘브루즈 정상은 북서쪽이다. 북쪽사면은 푸른 초원으로 뒤덮여 있고, 남서쪽은 설산이다. 광장 주변을 한 바퀴 돌다가 설산의 모습에 반해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 보고 싶다는 생각에 1시간 여 기화요초로 만발한 초원과 어우러지는 멋진 설산을 배경삼아 아름다운 산책을 한다.

고소적응 첫 날, 체겟(Cheget)봉을 오르다!

아침 7시에 기상하여 식사를 마치고 산책을 나선다. 산장에서 이어지는 송림 속의 아침 공기는 정말 신선하다. 숲속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과 조금은 차가운 듯한 신선한 아침 공기는 장거리 비행과 차량 이동, 그리고 시차도 말끔히 씻어준다. 맑은 공기를 가슴 깊숙이 들이마시며 송림 속을 걷는다. 눈 녹은 물이 계곡에서 흘러나와 바닥을 적신다. 온갖 야생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향유하고서 다시 숙소로 돌아와 산행준비를 한다. 오늘은 고소적응훈련 첫 번째로 체겟봉을 오르는 날이다. 산행 차림은 간단하다. 햇살을 가려줄 모자와 배낭, 배낭에는 따뜻한 물과 간식용 초콜릿뿐이다.

오전 9시쯤에 광장 쪽으로 나선다. 체겟봉의 등산로는 어제 저녁 산책삼아 올라갔던 쪽이다. 작년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 오를 때를 생각하며 이번에는 제발 고소를 느끼지 않아야 할 텐데 하면서 조심에 조심을 하면서 산행을 시작한다. 그런데 블라디미르가 안내를 한다. 이 아저씨가 우리 산행가이드란 말인가? 조금 의아함이 들지만 미주알고주알 물어볼 필요가 없어 그냥 따르기로 한다.

광장에서 15분쯤에 곤돌라 밑 조망 터에 닿는데, 출발지점인 광장과 엘브루즈의 동(東)·서(西) 봉우리가 살짝 조망되는 곳이다. 체겟봉으로 오르는 길은 좌우가 모두 송림과 초원지대로 많은 야생화가 피어 있다. 한동안 오름길 후에 슬슬 설산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수첩에 눈에 보이는 설산의 그림을 그려 가이드에게 보여 주며 각 봉우리의 이름을 물었더니 아예 글로 써준다. 가장 높은 봉우리가 Donguzorun(돈구조룬·4468m), 그 오른편의 봉우리는 Nakra(나크라·4,277m), 그리고 왼편의 두 개의 뾰족한 봉우리는 Kogutai(코구타이·3,891m/3,850m)라고 쓴다. 이들 산군이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를 짓는다고 설명한다.

길은 우리의 임도수준으로 완만한 오름길. 좌 전방으로 만년설로 뒤덮인 웅장한 돈구조룬이 그 자태를 드러내고, 떨어진 낙석으로 뒤덮인 빙하는 빙하수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곳에서도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이가 있다. 커버가 있는 곳에서 속도를 줄일 때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다. 오늘 날씨가 너무나 쾌청하다. 정상 등정하는 날도 이렇게만 좋아준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싶다. 하지만 파란하늘에서 내려 비치는 햇살이 너무나 따갑다.

중간 중간 힘들면 다리쉼을 반복하지만 사방으로 피어 있는 초원의 들꽃풍경과 돈구조룬의 웅장한 설경을 감상하며 오르니 힘 듬도 잠시 잊을 만한 것 같다. 한 무리의 양떼가 풀을 뜯고 있다. 양치는 목동은 풀을 뜯거나 말거나 바위에 드러누워 잠만 자고 있다. 위쪽으로 가파른 사면에는 예전에 사용하던 스키곤돌라 기둥들이 흉물스럽게 서 있다. 계속해서 임도를 따라 오르는데 주변엔 야생화가 가득한 초원지대. 하지만 힘든 대원도 생긴다.

광장에서 2시간쯤에 곤돌라 중간 승강장에 닿는다. 해발 2,735m 지점이다. 승강장 위쪽 휴게소(Ai Cafe)에서 잠시 쉬어간다. 이곳에서도 돈구조룬과 엘브루즈의 전경이 멋지게 조망되는데, 엘브루즈의 서봉은 구름 한 점 없는데 동봉엔 흰 구름이 얹혀 있어 금방이라도 서봉까지 감춰버릴 것 같다.

중간 승강장을 출발하여 다시 또 임도를 따라 헐떡거리며 오른다. 주변엔 역시 초원지대가 계속되는데 만병초가 군락을 이루며 하얀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20여분 쯤 올라 능선을 돌아서는데 우와~ 하는 함성이 절로 나올 정도로 엘브루즈의 전경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아~ 그런데 구름이 동봉과 서봉을 거의 감싸버린 상태라 너무나 아쉽다. 1시간만 일찍 올라왔었어도 푸른 하늘아래 살포시 솟아오른 아름다운 두 개의 봉우리를 가진 엘브루즈의 모습을 깔끔하게 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너무나 아깝다.

한 발 한 발 위로 오를수록 펼쳐지는 풍경은 더욱 감탄을 자아낸다. 모두들 따가운 햇살에, 높이를 더할수록 점차 힘들어하는 모습들이 역력하게 나타난다. 그래, 빨리 가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고소적응이니까 천천히 쉬엄쉬엄 고도를 적응하며 한 발 한 발~ 그러는 중에 머리 위로는 곤돌라를 타고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서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넨다. 타고 가는 사람들은 참 좋겠다~

낮 12시20분. 상부 승강장(해발 3,100m)에 도착한다. 광장에서 얼추 3시간 정도 걸린 셈이다. 작은 카페(매점)가 있는 곳으로 올라 주변을 돌아보니 말 그대로 엘브루즈와 돈구조룬의 조망대라 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엘브루즈의 두 봉은 이미 구름 속에 묻혀 버렸고, 돈구조룬의 꼭지는 거의 눈높이에 와있다. 체겟봉의 정상(Cheget·3,404m)은 아직 멀었는데 오늘 산행은 여기까지라 한다. 다행이 모두들 고소는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아마도 온갖 들꽃향기와 푸른 초원, 그리고 시원하게 불어오는 신선한 공기 탓이 아닌가 싶다.

가볍게 정상주 한 잔씩 하고, 30여분 정도 조망을 즐기다가 상부 승강장을 내려선다. 올라 올 때와 내려갈 때의 주변 환경은 조금씩 달라 보인다. 돈구조룬의 옆 봉인 나크라봉 바닥에는 빙하수가 녹아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는데 물빛이 옥색을 띤다. 내리막길은 올라올 때보다 훨씬 쉽다. 중간 승강장까지 내려가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그렇게 쾌청하던 날씨가 갑자기 비올 징조를 보이는 것이다.

중간 승강장에 도착하자 더운 날씨 탓에 은근히 생맥 생각이 난다. 가이드에게 이야기하여 Ai Cafe에서 병맥주로 한 잔씩 마시다가 비올 조짐을 보여 출발을 서두른다. 하산길이라 한결 편하다. 건너편 사면에는 비 묻어오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내려올 때는 2시간 정도 걸려 광장에 내려선다.

점심식사는 산장에서 하지 않고 광장 한쪽에 있는 카페에서 한다. 소주를 곁들여 점심식사를 마치고, 이어 광장에 있는 가게에 들려 잠시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저녁식사 전(오후 6시)에 가이드가 장비점검을 하였다. 이어 저녁식사 후에는 내일 배럴산장으로 올라가야 하는 관계로 짐을 정리하고 휴식을 취한다. 배럴산장에서는 동계용만 있으면 되니까 하계용은 모두 이곳에 두고 가기로 하였다.

체겟에서 배럴산장으로 이동

그리고 고소적응 두 번째 프리웃산장 트레킹!

다음날 테스콜(Terskol)을 거쳐 아자우역(Azau·2,180m)에서 화물용 케이블카를 타고 올드뷰포인트(Old view point·2,970m)역에서 케이블카를 갈아타고 미르역(Mir·3,470m)에 도착, 짐과 3명의 대원은 설상차로 이동하고, 나머지(5명)와 가이드는 도보로 배럴산장으로 이동한다. 천천히 고소를 적응하며 오르는데 엘브루즈의 두 봉우리가 잘 조망된다. 미르역에서 1시간 20분쯤 걸려 배럴산장(3,800m)에 닿는데 배럴산장의 상징인 원통형 숙소와 설상차(Snow Car)가 생소하다.

가이드가 식당으로 안내를 해주어 뜨거운 물 한 컵을 마신 후 숙소에서 50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카고 백을 나른 후 점심식사를 한다. 프리웃까지 고소적응 트레킹은 오후 2시쯤에 출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일단 배럴을 배정 받고 짐을 정리한 다음 고소적응 산행준비를 한다. 이번에는 중등산화에 스패츠와 크램폰까지 착용하고, 햇살을 막기 위해 고글과 바라크바라까지 뒤집어쓴다. 목표 지점은 해발 4,157m 프리웃산장까지라고 하지만 배럴산장이 해발 3,800이니까 고저 차는 불과 360m도 채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도가 높기 때문에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

오후 2시를 조금 넘겨 배럴산장을 출발하는데 12발 크램폰까지 착용한 등산화의 무게가 묵직하게 느껴진다. 숙소에서 보기엔 밋밋해 보이던 설사면이 막상 가까이 다가서니 가파르기가 꽤 된다. 속으로 “최대한 천천히”를 외치면서 한 발 한 발 옮기기 시작한다. 30여분 정도 한바탕 오름길로 올라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모두 다 힘든 모습이 역력하다. 하지만 사방으로 펼쳐지는 설원에 힘 듬도 잠시 잊고 다시 또 발걸음을 뗀다. 두 번째 휴식 중에 일본인 몇 명을 만난다. 내일 목표인 해발 4,700m의 파트코브락까지 올라갔다 오는 중이란다. 설상차도 한 대 올라간다. 누가 구조(?)를 요청하였나 싶다. 눈이 녹아 질퍽이는 곳도 나온다. 이런 곳을 주의하라며 설명을 해준다. 말로만 듣던 크레바스라고 한다. 크레바스(Crevasse)라고 하면 빙하(氷河) 속에 생긴 깊은 균열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곳은 그런 것이 아닌가 보다. 하기사 매서운 추위에 저런 곳에 빠져 등산화에 물이라도 들어가게 되면 큰일은 큰일이다. 이어 가파른 오름길에 타 팀의 남녀가이드 두 명을 만나 우리 가이드와 한 동안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아마도 정상의 상황을 물어보는 것 같다.

배럴산장에서 1시간 40여분, 좌측으로 원형의 건물 하나가 보이는데 프리웃산장인가 싶다. 아직 고소는 느껴지지 않지만 힘이 조금 드는 것은 사실, 해서 좌로 틀어 평탄하게 이어지지만 속도는 내지 않는다. 날씨가 맑아 경치는 정말 좋다. 어제 체겟에서 보았던 전경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2시간여 만에 원형의 프리웃산장(해발 4,157m)에 도착한다. 원형의 건물은 자물쇠가 잠겨 있다. 그리고 바로 위쪽에도 건물이 있는데 가이드가 프리웃산장은 위쪽에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곳은 예전에 국경수비대 초소로 쓰였다가 화재로 인해 소실된 “Priut 11”이라는 캠프였다고 전해진다. 20여분 쉬었다가 올라왔던 길로 그대로 내려서는데 하산은 40여분 소요되었다.

저녁식사가 7시라고 하니 2시간여 시간이 남는다. 장비를 정리하고 이후는 휴식시간으로 보낸다. 태석이가 모자를 벗고 까불다가 고소가 온 모양이다. 그렇게 얘길 했건만~ 그래선지 일찌감치 잠자리로 들고 만다. 잠 좀 자고 나면 나아지겠지. 저녁은 라면과 압력밥솥으로 지은 쌀밥에 국내에서 가져온 밑반찬들이다. 이곳 역시 한밤중까지 어두워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일의 훈련을 위해 일치감치 침낭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한다. 잠결에 누가 바깥을 갔다 오더니 날이 흐렸다고 한다. 이곳의 날씨는 시시때때로 바뀐다고 하니 내일 낮은 또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고소적응 세 번째 파트코브락 트레킹!

모닝콜도 필요 없이 자동으로 잠이 깬다. 너무 일찍 잠이 깼나 싶다. 이곳에선 세수라는 이름은 아예 없고, 물티슈로 대충 눈곱만 제거하고, 혹여 일출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하고 밖으로 나가본다. 한참을 기다리니 서봉에 햇살이 비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태양이 솟아오르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린다. 기다리는 동안 다른 대원들도 한 둘, 배럴을 빠져나온다. 드디어 태양이 솟아오르는데 너무나 빛이 강렬하다. 일출 후 어제 고소로 일찍 잠자리에 든 태석을 찾아 확인하니 아직도 심한 것 같다. 태석 누님이 어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잠이 들었는데 밤새 끙끙 앓고, 밤에 물만 겨우 조금 마시곤 했는데 그나마 몽땅 다 토했다고 한다.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3일 차 고소적응 트레킹 준비를 한다. 오늘은 산행에 동참하지 못하겠다는 대원이 발생된다. 고소증상이 있는 대원 2명과 김주진 팀장마저도 허리가 안 좋다는 이유로 함께 남겠다고 한다. 해서 결국은 5명만 산행에 나선다. 오늘은 고소적응 마지막 날인데 파트코브락(Pastukhova Rocks, 4,690m)까지 갔다 오는 일정이다. 다행히 날씨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햇볕이 쨍쨍한 아주 맑은 날씨다.

아침 7시에 출발해서 어제 갔다 온 프리웃산장까지 1시간 반 정도 걸려 올라서고, 해발 4,400m 쯤에서 가이드가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한다. 위치를 가늠해보면 파트코브락까진 조금 더 올라야 하는데 너무 일찍 마치는 것 같아서 조금 더 가보자고 하여 충분히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출발 해발 4,520m까지 오르다 더 이상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걸음을 멈춘다. 대원들 또한 상당히 지친 모습이다. 배럴산장에서 보았을 때 ‘ㄱ’자 바위지대 하부 훨씬 못 미친 곳이다. 힘은 들지만 고소증상은 없는 듯하여 다행이다. 4시간 조금 넘게 올라왔으니 고소적응은 거의 된 것 같다. 오늘도 날씨는 맑지만 어제와는 달리 바람이 제법 분다.

앉아서 10여 분간 쉬었다 하산을 시작한다. 30분 정도 걸려 프리웃산장에 들렸다가 배럴산장에 도착하니 12시50분, 얼추 6시간의 산행이었다. 어제와 오늘 산행 중에는 햇볕이 강렬했고, 바람은 거의 없어 추위는 거의 느끼지 못했다. 맑은 날씨라 가시거리도 멀어 주변의 풍광은 그야말로 최상의 상태였다. 내일 정상을 오를 때도 어제 오늘만 같으면 정말 좋겠다.

오늘 점심은 라면이다. 일부 고소를 느끼는 대원들이 입맛이 없는 모양으로 라면을 선호한다. 나 또한 입맛이 별로다. 원래 해외에서는 입맛을 잘 못 맞추는데 치즈, 햄 등이 들어간 음식은 정말 별로다. 오늘 라면 담당은 산행에 함께 동참하지 않은 태석이가 한다. 내일은 정상 등정하는 날이기 때문에 새벽 1시에 기상을 한다고 했기에 점심 겸 저녁을 라면으로 때우고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한다. 그러나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있는데 누가 들어오면서 밖에 비가 내린다고 한다. 은근히 걱정이 된다. 새벽까지 비가 그치질 않으면 어떻게? 낮에 식당 벽에 붙은 천후표를 보았는데, 오전까지는 맑고 오후부터 눈이 내리는데 예상 강설량이 3㎝로 나와 있었고, 이후로 연속 날씨는 좋지 않은 걸로 나와 있어 내일 정상 등정을 못하면 예비일도 불가능이다. 그러면 자동으로 하산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가 잠이 들었다.

드디어 때가 왔다! 엘브루즈 정상을 향하여~

한밤중에 잠이 깨어 시계를 보니 1시가 못 되었다. 어제 낮부터 누웠던 탓인지 허리도 뻑적지근하고 해서 그냥 일어날 준비를 한다. 어제 밤에 한동안 소나기가 내리는 바람에 걱정도 되고 날씨가 궁금해 밖에 나가보니 동쪽과 서남쪽 하늘에 별이 총총하고, 북쪽은 검은 구름이 끼어 있어 한편으론 안심이 되고 한편으론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든다. 오후부터 눈이 내린다는 기상예보가 맞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식사는 압력밥솥에 남아 있는 누룽지로 간단하게 한다. 낮의 중식을 위해 간단한 행동식도 준비해 주었다. 이어 숙소로 돌아와 산행준비를 한다. 먼저 새들까지 운행복장은 새벽이라고는 하지만 가파른 오름길이라 가벼운 운행복으로 하고, 정상에서의 날씨를 감안 미리 핫팩 하나를 꺼내 카메라 가방에 챙겨 넣는다. 다음 뜨거운 물과 행동식을 배낭에 챙겨 넣는다. 양말은 혹시 몰라 두 켤레를 껴 신은 다음 중등산화를 신고 스패츠를 한 다음 크램폰을 착용한다.

밖으로 나와 인원을 확인하니 한 사람도 빠짐없다. 인원은 보조가이드(2명) 포함 모두 11명. 잠시 후 총괄가이드를 따라 모두 헤드랜턴의 불을 밝히고 설상차 타는 곳으로 이동한다. 벌써부터 양쪽 다리가 묵직해 오는 것이 긴장이 된다. 다행히 생각보다 날씨는 그렇게 춥지 않다. 밤하늘의 별들이 총총함을 보면서 산행이 끝날 때까지 이런 날씨가 계속되기를 빌어본다.

새벽 2시10분에 설상차가 출발한다. 11명이 탄 설상차는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빼곡하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를 때는 몸이 뒤쪽으로 솔려 맨 앞쪽에 앉은 사람은 뒤쪽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용을 쓰는 바람에 고소를 느낄 판이다. 특히 김훈 대원은 벌써부터 이마에 땀방울이 번진다. 계속되는 오름길로 25분 정도 오르다 설상차가 멎는다. 파트코브락에 도착했나 싶은데 내려서보니 주변 상황을 살필 만한 환경이 되지 못한다. 모두 다 내리자 김주진 팀장이 진행순서를 정해준다. 난 11명의 중앙인 6번째인데, 총괄가이드가 맨 선두에서 서고, 보조가이드 두 명은 중간과 꼴찌에서 함께 할 모양이다.

새벽 2시40분, 설상차가 출발하자 바로 등반을 시작한다. 처음부터 오름이 예사롭지가 않다. 하기사 어제 고소적은 훈련 중 마지막 지점에서 보았을 때 위쪽으로 경사가 꽤나 심하였었고 오름길이 무척이나 힘들겠구나 싶었던 구간이다. 새벽이라 주변은 깜깜하지만 바닥이 눈밭이라 하얗게 보인다. 해가 뜰 때까지는 주변 풍광을 눈여겨 볼 수도 없는지라 오직 뒷사람의 발뒤꿈치만 보고 한 발 한 발 가파른 설사면에 올려놓는다. 앞장선 총괄가이드가 가끔씩 뒤로 돌아보며 어떻게 잘 따로 오는지를 확인한다.

출발하고 15분을 조금 넘겨 앞장 선 총괄가이드가 걸음을 멈춘다. 잠시 쉬었다 가자는 뜻이다.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았지만 다들 힘든 표정. 다행이 아직까지 고소는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무척 힘든 것은 사실이다.

15분 간격으로 두 번째 휴식을 취하는데 김주진 팀장이 하이캠프라고 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왼쪽으로 텐트 2동이 보인다. 주변을 살펴보니 천막을 칠 정도로 제법 넓게 평탄한 곳이다. 고도계를 보더니 해발 4,700m라고 한다. 그럼 아까 설상차가 멎은 곳은? 그런데 어떻게 이 놓은 곳까지 와서 텐트를 쳤단 말인가? 얇은 장갑을 낀 손가락이 조금씩 시려옴을 느껴 두터운 동계장갑으로 바꾸어 낀다. 잠시 휴식 후에 다시 출발하는데 이내 쉑쉑~ 숨소리가 힘겹게 새어 나온다. 속으로 3초 1보라 중얼거리며 한 발, 한 발, 척~ 척~ 앞사람의 발자국을 그대로 찍으며 오른다.

계속되는 오름길, 희박한 산소로 인해 힘들지, 사면은 가파르고. 바로 앞선 김훈 대원은 열 발짝 정도 간격을 두고서 잠시 쉬었다가 후딱 앞사람 뒤쫓아 가기를 반복하는데 보조가이드가 쫓아와서는 손짓으로 그렇게 가지 못하게 한다. 그렇게 빨리 가면 금방 고소가 와서 정상까지 못 간다고 판단을 한 모양이다. 이후로도 두어 번 더 지적을 받는다. 하지만 이미 몸에 익은 습관은 쉽게 고쳐지질 않는 모양이다.

세 번째 휴식은 처음과 두 번째와는 달리 40여 분만에 이루어진다. 에고 힘들어라~ 아까부터 등산화 속의 발가락이 조금씩 시려올 것 같아 한 발 한 발 움직일 때마다 바닥을 한 번씩 더 굴려 마찰을 일으킨다. 한동안 오르는 중에 누군가 외국인 한 명이 멋진 배경으로 모두를 대상으로 사진을 찍어준다. 나중에 줄려나? 보조가이드가 저런 역할까지 다해주나 싶다.

네 번째 휴식부터는 1시간 간격으로 이어진다. 어느 듯 먼동이 터오자 시야가 넓어진다. 휴식시간에 뒤돌아보니 이른 새벽 여명 속으로 멋진 장관이 나타나는데 유럽과 아시아를 구분 짓는 코카서스산맥의 줄기가 좌~ 악 펼쳐진다.

몇 차례 휴식을 통한 고산 오름길, 5시간의 산행은 장난이 아니다. 대원들의 피로도도 점차 높아간다. 잠시 또 한 번의 휴식시간을 갖는데 동봉의 중턱쯤, 이제 방향은 왼쪽으로 꺾어지며 지금까지와는 달리 길이 조금 평탄해 보인다. 그런데 뜬금없이 하산을 하라니, 뭔 소리? 체력이 떨어져 힘들어 보이는 대원들의 모습을 보고 보조가이드가 결정을 한 것이라고 한다. 중간 휴식 중에 진행순서를 앞쪽으로 이동하여 선두 쪽에 있다 보니 뒤따라오는 대원들의 상황을 잘 알 수가 없는 상황, 언뜻 느낌에 두 대원(태석이와 김훈)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아서 돌아보니 다들 힘든 표정이다. 하지만 여기서 하산한다는 것은 아니다 싶어 일단 새들까지 가서 보자고 우겨 새들까지 진행하기로 한다. 다행이 평탄하게 진행하는 바람에 새들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온다.

오전 8시, 새들(Saddle·해발 5,416m)에 도착한다. 우리 앞쪽에 5명으로 구성된 한 팀이 먼저 와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스키 장비를 갖추고 있다. 주변에 깃발이 붙은 막대기를 한 묶음 묶어 포장하여 세워놓았는데 누구든지 필요하면 가져가서 필요한 곳에 꽂으라는 것인가? 대원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나 어떡해? 하는 표정, 이제 이곳에서 정상 오를 사람과 포기할 사람을 선정해야 한다.

처음부터 가장 걱정했던 것이 날씨와 고소였는데 날씨는 너무 좋고, 고소 또한 큰 느낌이 없어 정상 오르는 데는 조금 힘은 들망정 고소로 인한 걱정은 없을 것 같고, 또한 손발이 시리면 어쩌나하고 큰 걱정을 했었지만 해가 뜨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손발 시린 것은 이미 해소가 된 상태다. 한편 김주진 팀장은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이런 체력으로는 등정이 어렵다고 하면서 못 갈 사람부터 선정하는데, 김해 팀 두 사람이 먼저 못가겠다고 나섰지만 그 다음엔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그러는 중에 총괄가이드는 장비를 챙긴다. 즉 정상에 오를 생각인 것이다. 잠시 상황을 살피든 김주진 팀장이 “태석이 형은 어때?” 하고 포기(?) 여부를 묻는다. 뒤로 벌렁 드러누운 태석인 그 상태로 나에게 되묻는다. “형은 어떡할 건데?” 하고. 그 말에 그의 얼굴표정을 보는 순간 “정말 어떻게 하지?”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 자신도 힘들긴 마찬가지. 다만 걱정했던 고소증세가 없기에 여기까지 와서 포기는 있을 수 없다 생각하고, “당연히 가야지!” 했더니 “그럼 나도 가야죠!” 하고 김주진 팀장에게 대답한다. 그 말에 김주진 팀장은 잠시 말이 없더니 김훈 대원에게 또 묻는다. “훈이 형은 몸 괜찮아요?” 하고. 역시 대답은 “괜찮습니다!” 였다. 강운석 대원은 당연히 물어보나마나 간다 할 테고, 잠시 머뭇거리든 김주진 팀장이 나에게 피켈을 하나 건네준다. 그리고 또 김해 팀의 피켈 두 개를 받아 태석이와 김훈 대원에게 나눠주는데 하나가 부족하다. 속으로 태석이 누님은? 하는데 갑자기 “저도 안 갈래요!” 하고 태석 누님이 포기 선언을 한다. 뜻밖의 대답이었다. 그렇담 인원은 정해졌다. 등정할 사람은 나를 포함, 김주진 팀장, 태석, 김훈, 강운석 대원 이렇게 5명이고, 포기한 사람은 3명(태석 누님, 유승광, 이상현 대원)이다. 정상을 오르기 위해 다운자켓으로 갈아입는다.

새들에서 조금 더 쉬었다가 출발 전에 김주진 팀장이 새들에서 바라보이는 진행방향의 급사면을 가리키면서 상황을 설명하는데, 가파른 설사면에 하나씩 꽂혀있는 깃대를 따라 오르다 왼쪽으로 급선회하면서 꺾어지는 곳부터는 매우 위험함을 알려주며 한 번 더 등정을 숙고해보라고 한다. 또한 가이드도 역시 급사면을 가리키면서 “슬라이딩=다이”라고 엄지손가락으로 제스처를 한다. 즉 미끄러지면 죽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결정한 것을 가지고 다시 간다 못 간다 할 필요가 없다.

정상까진 배낭과 스틱을 이곳에 두고 대신 피켈만 가져가기로 한다. 태석인 먹을 것이 있다면서 구지 배낭을 메고 가겠다 한다. 하기사 먹을 것과는 상관없이 배낭을 메는 것이 안전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어쨌든 가이드가 시키는 대로 난 배낭에서 플랜카드와 초콜릿 몇 개만 꺼내 자켓 주머니에 집어넣고 배낭은 두고 출발한다.

새들(Saddle)에 20여분 쉬었다가 정상으로 향한다. 새들의 고도가 해발 5,416m이니까 정상(해발 5,642m)까지는 230여 미터만 더 오르면 되는데, 밑에서 보기엔 까마득해 보인다. 처음부터 오름길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아까까지는 못 느낀 증상인데 순간적으로 몸이 휘청거린다. 고소일까 잠 부족일까? 두어 번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데 깜짝 깜짝 놀라면서 다시 정신을 차리고 힘겹게 한 발 한 발 올려놓는다.

눈이 조금 녹은 너덜지대 바위구간이 나오는 곳에서 잠시 휴식을 하는데 태석인 그대로 드러눕는다. 새들에서 1시간 조금 더 지난 시간이다. 몸도 말이 아니다. 정말 올라 갈 수 있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오르는데 길은 점차 가팔라진다. 우리 앞에 올라가던 다른 두어 명도 가다 쉬다를 반복하고 있다. 가파른 사면은 때론 눈이 푹푹 빠지는 곳도 나오고, 12발 크램폰도 죽죽 미끄러지는 곳도 나온다. 아차 실수 하면 그대로 날아갈 형태의 급사면이다. 밑에서 보았을 때는 그렇게 보이지 않던 것이 막상 닥치고 보니 정말 장난이 아니다. 이런 곳에서 눈보라와 함께 강풍이라도 몰아치는 날이면 정말 고생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안전벨트와 로프를 준비한 것도 바로 이 구간에서 사용하기 위해서였는데 오늘 날씨는 정말 우릴 살려주는 것 같다.

새들을 출발한 지 2시간 여, 가파른 설사면을 힘겹게 올라 잠시 휴식하는데 총괄가이드가 “츄츠”라고 한다. 새들에서 가파르게 오르다 왼쪽(위쪽 정상)으로 꺾어지는 지점으로 이제부터 급경사는 면한 것 같다. 하지만 대원들의 모습은 무지 힘들다는 표정이 역력한 것 같다. 건너편으로는 엘브루즈의 동봉이 바로 눈앞인데 동봉을 오르는 사람은 거의 없나보다. 휴식 후 가파름이 조금 덜한 오름길로 오르는데 좌측 11시 방향으로 뾰족하게 솟아오른 봉우리가 보인다. 빨간 깃발은 좌측 봉우리 우측 중턱으로 이어지고 있고, 그 깃발을 기준으로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힘겹게 오르고 있다. “그래~ 저기가 정상이야” 하면서 숨을 몰아쉬며 한 발 한 발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잠시 후 좌측 봉우리 능선으로 올라서니 어렵소? 사람들의 발길이 좌측 봉우리가 아닌 능선을 넘어 평탄하게 직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 조그맣게 솟아오른 또 하나의 봉우리가 보이고, 사람들의 모습이 그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즉, 좌측의 봉우리는 배럴산장에서 정상처럼 보였던 그 봉우리이고, 서봉의 진짜 정상은 배럴산장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대열의 뒤를 따라 간다. 길은 예상외로 거의 평탄하다. 그런데 희한한 것이 지금까지 골골대던 태석이가 제일 먼저 정상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평탄하던 길은 마지막 정상 밑에서 조금 오름길을 만든다.

오전 11시06분. 정상 도착. 드디어 유럽 최고봉인 엘브루즈 정상(서봉 해발 5,642m)에 발을 올려놓은 것이다. 정상엔 우리 말고도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올랐는데 정상은 생각보다 넓지가 않다. 바람도 생각보다 그렇게 불지 않는다. 정상에 올랐으나 당연히 사진을 찍어야 하고, 그런데 열댓 명의 사람들이 서로 돌아가며 찍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되는데 왜 그렇게 빨리 내려가자고 안달을 하는지 원~ 그래도 찍을 사진은 찍어야지 하면서 가져온 현수막을 펼쳐 사진을 찍고, 작은 현수막은 정상석에 둘러 싸맸다. 정상에 오르면 흑해와 카스피해가 보인다고 해서 총괄가이드에게 카스피해와 흑해의 위치를 물어보니 말이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지만 대충 알아듣고 손짓을 하는데 구름이 깔려 보이질 않는다. 국내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정상에서는 기온이 낮아 웬만해서는 자동카메라 작동이 안 된다고 하여 수동카메라까지 준비해 왔는데 날씨가 포근(?)하니 카메라 걱정은 끝이다. 빨라 내려가야 한다는 조급함에 마음껏 조망도 즐기지 못하고 내려서는 바람에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만다. 우리 뒤를 이어 몇 명의 꾼들이 더 올라왔다.

정상에서 20여분, 나름대로 사진촬영과 조망을 즐긴 다음 서두르는 조급함에 쫓겨 정상을 내려선다. 하지만 문제는 하산이다. 뭘 좀 먹고 가자던 태석이가 또 먼저 내려선다. 올라왔던 길로 그대로 되밟아 내려가는 길이니까 정상에서 조금 내려서면 바로 평탄해지고 이어 잠시 완만한 내리막길이 끝나면 급경사 내리막길로 이어지는데 급경사 구간에서 결국 태석인 한 번 미끄러지고 만다. 피켓으로 찍어! 하는 소리에 제동이 걸리고 일단 멈춘다. 그리고 또 한 번 더 미끄러지는 곳에서는 아예 엉덩이 썰매를 탈 자세를 취한다. 가이드도 “NO!” 김주진 팀장도 “NO!”를 연발하는데도 꿈쩍도 안 하다가 몇 번이나 소리를 쳐서야 일어난다. 하여튼~ 우여곡절 끝에 새들(Saddle)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온다.

새들에 도착하니 12시20분이 채 못 되었다. 올라갈 때와는 달리 내려올 때는 50분 정도 걸린 셈이다. 도착하자마자 셋(강운석, 김훈, 태석)은 벌러덩 드러눕고 만다. 다들 드러누워 있는 모습을 보면서 김주진 팀장이 “이제 와서 이런 말 하면 안 되겠지만 이번 등정은 정말로 자살행위였어요”라고 한다. 하긴 나 역시나 힘겨워 하면서도 태석이를 부추겨 정상에 오르자고 했으니 나를 두고 한 말인 것이다. 속으로 “그래요, 하지만 어쨌든 우린 무사히 정상 등정에 성공했잖아요.” 하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위험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정도 가지고 저렇게 체력이 고갈될 정도라면 처음부터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잠시 휴식을 가진 다음 다시 또 김주진 팀장이 나를 향해 말문을 연다. “형이 제일 연장자니까 이제 어떡할 건지 대답해 보라”고 한다. 이 말 역시 제일 연장자는 핑계일 뿐이고, 네가 부추겨 이렇게 된 것이니까 하산은 형이 책임지라고 하는 말과 똑 같이 들리는 것이다. 김주진 팀장으로서는 속으로 무척이나 걱정 아닌 원망을 했을 거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 마당에 난들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 없지. 여행사 책임자가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은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질문을 던졌으니 어쨌든 답은 해야겠지. 내가 보기엔 최소한 겉으로는 태석이와 김훈 대원의 상태는 그야말로 최악, 저런 상태론 도저히 배럴산장까지 걸어서 내려갈 수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어차피 이곳까지 설상차가 오질 못한다고 하니 무조건 새벽에 설상차를 타고 온 곳까지 가서 거기서 설상차를 타고 갈 수 밖에 없지 않겠나 했더니 더 이상 말이 없다. 하지만 파트코브락까지 내려가는 것도 걱정이다. 내가 가자고 선동(?)을 했으니 영 마음이 찜찜하기도 한다. 일단 푹 좀 쉬었다 가기로 한다.

30분 정도 쉬었다 새들을 출발한다. 조금 쉰 탓인지 다들 억지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오후에는 눈 예보가 있어 조금 서두르지 않을 수가 없다. 새벽에 올라오던 것을 생각하면 내리막길 또한 매우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다행히 한동안은 동봉 중턱을 평탄하게 나아간다. 올라올 때와는 달리 김훈 대원과 함께 가이드보다 먼저 앞장을 서서 나아가는 데도 가이드가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다. 김훈 대원도 새들에서 조금 체력을 회복했는지 진행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는 듯 보인다.

동봉 중턱을 평탄하게 가로지른다고는 하지만 사면이 급경사라 아차 실수하면 그냥 날아갈 판이다. 그런 중에 태석이 또 한 번 미끄러진다. 한 번 경험이 있어서인지 금새 피켈로 찍어 중심을 잡고 일어난다. 새들에서 평탄한 길로 한 구비 돌아서자 드디어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조심에 조심을 하지만 새벽에 올라 올 때와는 달리 고도감이 더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문제가 생겼다. 전방에서부터 검은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새들을 출발한지 40여분 쯤 지났을까 좋았던 날씨가 갑자기 눈발이 날리더니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는데 금새 1미터 앞도 보이지 않게 변한다. 이거 클랐네~ 급한 마음에 크램폰에 걸려 두어 번 넘어지고 만다. 그때마다 크램폰으로 제동을 걸고 가까스레 중심을 잡고 일어선다. 선두는 김훈 대원, 바로 뒤를 이어 진행을 하는데 다행이 빨간 깃발이 보여 길 안내를 해준다. 갑자기 앞선 김훈 대원이 힘이 드는지 먼저 가라며 길을 비켜준다. 시야는 더욱 흐려지고, 고글까지 썼으니 시야는 더욱 깜깜, 결국 고글을 벗고 운행하는데 하나씩 폴이 희미하게 나타난다. 폴을 목표삼아 조심조심 한 걸음 한 걸음 가파른 설사면을 내려선다. 갑자기 올 초 백두대간 삽당령에서 백복령까지가 생각난다. 새벽부터 심야까지 허리까지 빠져가며 러셀하던 시간, 18시간의 힘들었던 것을 생각하니 그 때보단 조금 났다는 생각이 든다. 그땐 방향을 몰라 무척이나 어려웠었는데 지금은 그나마 깃발이라도 보이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싶다.

깜깜하던 시야가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한다. 언제 내렸냐는 듯이 눈은 금방 멎어 있었고, 한 치 앞을 구분 못하게 하던 구름도 서서히 걷히는 것이다. 우~ 다행이다. 시야가 트이자 밑으로 새벽에 보았던 두 동의 텐트가 까마득하게 보인다. 새벽에 못 보았던 전경들이 펼쳐지는데 정말 장관이다. 위에서 볼 때는 금방 내려설 것 같았는데 아무리 내려가도 가도 거리는 별로 좁혀지지 않는 느낌, 뒤돌아보니 대원들이 저만큼 위쪽에서 지체하고 있다. 앞쪽 저 밑에서도 아까부터 한 명이 내려서며 연이어 뒤를 돌아보곤 한다. 눈 위에 주저앉아 잠시 다리쉼을 하다가 다시 내려서고 하기를 두세 번, 한 명의 외국인이 뒤따라 내려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나도 덩달아 엄지를 치켜세워준다. 우리 보조가이든가 했다.

아까부터 발바닥에 작은 통증이 느껴진다. 많이 걸으면 이런 증상이 가끔 있긴 했는데 모처럼 느껴지는 통증이다. 아마도 딱딱한 눈 발자국으로 인한 것 같다. 움푹움푹 패인 발자국으로 인해 걸음도 또한 더욱 더디다. 아래쪽으로 펼쳐지는 전경은 점점 뚜렷하게 시야로 들어온다. “ㄱ”자 바위지대인 파트코브락과 그 아래 프리웃산장이 빤히 내려다보인다. 하지만 금방 내려설 것 같이 보이던 캠프(텐트 2동 쳐져 있는 곳)까지도 상당히 더디게 내려선다.

새들에서 1시간40분 정도, 하이캠프장(텐트 2동)으로 내려선다. 해발 4,800m 파트코브락이라 불리는 곳이다. 뒤돌아보니 우리 대원들의 모습은 아직 까마득하다. 텐트 좌측으로 가파른 사면을 내려선다. 잠시 후 먼저 내려서는 가이드(블라드미르)와 만나는데 마침 설상차가 올라오고 있다. 아마도 가이드가 내려오면서 시간을 맞춰 보내달라고 한 모양이다.

오후 2시50분. 어제 가이드가 알려주었던 “ㄱ”자 바위지대 맨 밑자리에 닿는다. 새벽에도 이곳에서 설상차 내렸던 곳이라고 한다. 어제 산행 종점을 어림해보니 이곳에서 아래쪽으로 500여 미터쯤 더 내려가야 할 것 같다. 설상차는 금방 도착하고, 이어 대원들도 연이어 도착한다. 새벽부터 시작한 엘브루즈 등정은 휴식시간 포함해서 꼬빡 12시간이 걸렸다. 이제부터 불행 끝, 행복 시작이다. 도착하는 순서대로 설상차에 탑승한다. 설상차가 출발하고부터는 룰루랄라~ 그간의 힘들었던 것들이 한순간에 몽땅 녹아내리는 것만 같다.

오후 3시10분. 배럴산장 도착. 새벽 오름길보다 빠르게 도착한다. 이로서 유럽의 최고봉인 엘브루즈 서봉 정상 등정을 모두 마친다(설상차 하산대여료 300유로. 올라 갈 때 400유로). 설상차에서 내려 숙소로 오는 중에 정상까지 함께 하지 못했던 대원들이 나와 맞아주며 수고했다 말은 하지만 함께 하지 못해 마음은 영 찜찜하다. 일단 모든 장비를 챙겨 스패츠와 등산화는 햇볕에 말린다.

오후 6시에 저녁식사를 한다고 했지만 모두 점심을 제대로 먹지를 못했기에 우선 라면을 끓여 요기를 하기로 한다. 그러다보니 저녁 생각이 없는 대원들은 숙소에서 쉬기로 하는데 나 역시나 일찌감치 숙소에서 잠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예비일 이후 배럴산장 하산부터 서울까지

오늘은 원래 날씨가 좋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여 예비일로 비워두고 모든 일정은 배럴산장에서 지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정상등정을 마친 지금 구지 이곳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 하산하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리프트와 설상차 운행이 안 된다는 것이다. 한참동안 가이드와 협의하고 하였지만 결국은 미르역까지 각자의 모든 짐을 메고 가기로 했다. 미르역까지 각자 짐을 운반한 다음 화물용 리프트를 타고 올드뷰포인트를 거쳐 아자우역에 도착한다. 그리고 처음 묵었던 산장으로 이동하여 그 동안의 피로를 풀고 푹 쉰다.

다음 날은 가랑비 속에 1시간여 트레킹, 이름도 모르는 어느 장소에 닿아보니 탄산수가 솟아나는 캠핑장 같은 지역이다. 생각지도 않은 낚시질, 9마리의 송어를 잡아 꼬챙이 구이로 점심식사를 하는 일정이었다. 우중이라 올 때는 차량으로 귀가하고, 저녁식사 시간에 가이드가 등정인증서를 전해준다. 인증서야 있건 없건 사진으로 다 남으니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닐 진데도 모두 신기한 표정들이다. 이어 저녁식사와 함께 맥주와 소주로 등정축하 기념파티가 이어진다.

6월29일. 금요일, 오늘은 엘브루즈에서의 모든 일정을 끝마치고 떠나는 날이다. 되돌아가는 길이야 왔던 길로 다시 나가면 되는 일, 그래도 함께 한 시간이 아쉬운지라 다 함께 단체 사진을 찍고 출발할 무렵에는 모두의 눈에 이슬이 맺힌다. 차량으로 3시간여 박산계곡을 거쳐 민보디공항에 닿아 다시 항공으로 2시간여 걸려 모스크바에 닿는다. 처음 묵었던 호텔에서 하루를 더 묵으면서 모스크바 시내를 관광하고, 다음 날 밤 러시아항공으로 모스크바를 떠나 8시간여 만에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엘브루즈(Elbrus) 원정을 마치며

2011년 4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이후 차기 목적지를 유럽의 최고봉인 엘브루즈(해발5,642m)로 정하게 되었는데 당시만 해도 천천히 준비만 제대로 하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큰 기대감을 가지고 계획이 추진되었지만 그 준비란 것이 마음대로 잘 되지는 않았다. 출발하는 날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일정도 7박9일에서 9박11일로 늘어나면서 인원 또한 10여명이 넘게 신청했다가 마지막엔 5명으로 줄어든 것은 어찌 보면 우리 공직사회의 여건 탓인지도 모르겠다.

출발일이 다가오면서 미팅은 단 두 번, 장비점검을 위해 한 번, 장비연습을 위한 산행 한 번이 다였다. 우리에겐 출발 전 미팅은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은 것은 거의 10여 년간 백두대간과 아홉 정맥 등 중장거리 산행을 매월 함께 2-3회씩 해온 사람들이라 얼굴 표정, 눈빛만 봐도 대충 알 수 있는 사이기 때문이었다.

엘브루즈의 여건은 날씨와 체력싸움이라고 했기에 날씨는 어차피 자연에 맡길 수밖에 없는 일이고, 체력은 다들 대간과 정맥을 종주하는 사람들이라 큰 걱정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설산이라고는 하지만 고도의 등반기술을 요하는 그런 산행이 아니라고 하기에 별도의 특별훈련을 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미지의 세계는 언제나 불안정한 것,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서 출발일자만 기다렸던 원정이었다.

세 번의 고소적응을 위한 등반이라고는 했지만 눈앞으로 펼쳐지는 엘브루즈 일대의 풍광은 과히 오랫동안 잊혀 지지 않을 것만 같다. 그 산의 윤곽을 제대로 알려면 멀리서 보라고 했다. 체겟봉에서의 엘브루즈나 돈구조룬은 정말 잊혀 지지 않는 모습이었고, 엘브루즈를 오르다 뒤돌아보는 코카서스산맥의 설산은 과히 유럽 최고봉과 함께할 수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엘브루즈 원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지금, 또 다음을 기다리고 있다. 준비과정에 많은 도움을 준 서울특별시청산악회에 고마움을 전하고, 원정기간 중 내내 함께 땀을 흘린 강운석, 김훈, 최태석, 최분임 대원, 그리고 유라시아트렉의 김주진 팀장, 나중에 합류한 김해 유승광, 이상현 대원님들 모두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윤창훈) 

출처 : 서울특별시청산악회 9정맥종주대
글쓴이 : 산미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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