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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

바다위떠있는 인형의집… 도시마저도 아름다워

산달림 2009. 9. 4. 11:00

 

노르웨이 | 오슬로·베르겐·올레순

북단의 땅 노르웨이(Norway). 나라 이름도 '북방으로 가는 길'이다. 비할 데 없이 빼어난 자연 만큼이나 도시들도 아름답다. 오슬로 베르겐 올레순 등 도시들 거리엔 '인형의 집'의 작가 헨리크 입센, 그 입센의 희곡'페르귄트'에 아름다운 선율을 새겨 넣은 작곡가 에드바르 그리그, 노르웨이 국민 조각가 구스타브 비겔란드, '절규'를 그린 에드바르트 뭉크 등 전설적 인물들의 이야기와 흔적들도 깃들어 있다.

오슬로

 
 
 

↑ 노르웨이의 작은 도시 올레순은 대화재의 상처를 딛고 아르누보의 도시로 아름답게 다시 태어났다

 
남한의 4배나 되는 면적에 인구는 460만명 밖에 안 되는 노르웨이. 그 중 50만명 가량이 수도 오슬로에 모여 있다. 노르웨이 관광 안내 브로슈어에는 '오슬로에서 카페에 들리거나 쇼핑을 하는 것은 삼림욕을 하며 피톤치드를 호흡하는 것과 같다'고 적혀 있다.

노르웨이는 스웨덴 덴마크와 함께 바이킹의 전설을 지니고 있다. 오슬로에 있는 바이킹 박물관에선 당시 사용됐던 실제 배 3척을 복원해 전시하고 있다. 이곳을 찾은 관람객들은 바이킹 배의 섹시한 곡선에 감탄을 한다.

박물관은 그저 이교도란 이유로'무서운 약탈자'로만 알려진 바이킹에 대한 여러 오해를 풀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바이킹은 크리스토프 콜럼버스보다 500년 전 미 대륙을 발견, 지금의 캐나다 뉴펀들랜드에 12년 가량 마을을 만들고 거주했었고, 9~11세기 250여년 간 유럽 전역의 바다를 장악해 동·서양 문물의 이동을 관장했었다. 프랑스 노르망디에 터를 잡았던 바이킹은 나중 영국을 통일하고 '정복왕 윌리엄'의 이름을 역사에 아로새겼다.

의외로 바이킹 남성의 평균 키가 160㎝ 정도 밖에 안됐다는 가이드의 설명에선 바이킹에 대한 환상 한 구석이 스르르 무너지기도 했다.

이 박물관과 그리 멀지 않은 뷕더이란 곳에 프람 박물관이 있다. 프람호는 노르웨이 탐험가이고 독립 영웅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프리드토프 난센이 북극을 탐험하기 위해 제작한 탐험선이다. 빙산의 압력을 견딜 수 있도록 배 앞쪽을 항아리처럼 둥글게 만든, 당시로선 획기적 디자인의 탐험선이다. 프람호는 나중 로알 아문센이 빌려가 남극 탐험에도 사용했다. 남극과 북극을 모두 가본 배다.

난센과 아문센을 배출한 노르웨이에는 '견디기 힘든 일일수록 기억하기엔 더욱 달콤한 법'이라는 격언이 있다고 한다. 탐험가의 나라답다.

오슬로 시가지 중심에 비겔란드 조각공원이 있다. 조각가 비겔란드의 조각군 212개와 인물상 671개가 전시된 공원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음을 맞기까지의 인생 전반을 묘사한 정밀한 조각들이 서 있다. 귀한 작품이지만 사람들은 조각상을 매만지고 올라타며 작품을 느낀다. 공원의 한가운데에 있는 17m 높이의 원통형 탑 이름은 모놀리스. 121명의 남녀노소가 한데 뒤엉킨 모습을 조각한 걸작이다. 그 안에 인생의 처음과 끝이 다 담겨 있다. 비겔란드가 이 작품을 완성하는 데 13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오슬로 시내의 국립미술관이나 뭉크 박물관에 가면 '절규'하는 뭉크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베르겐

뮈르달에서 열차를 타고 베르겐으로 향했을 때다. 배정된 좌석은 역방향이었다. 눈 앞으로 하나씩 멀어져 가는 노르웨이의 풍경을 바라보며 MP3를 꺼내 들었다. 그리그의 페리귄트 모음곡에 있는 '솔베이지의 노래'와 '아침 분위기' 등이 흘러나왔다. 귀로 듣는 음악과 눈으로 보는 자연이 다르지 않았다. 그 산 물결, 숲 물결처럼 멜로디가 넘실댔고 오르락 내리락 리듬을 탔다. 곡은 산자락에 걸린 구름처럼 아늑하게 퍼지다가도 바위에 부딪는 폭포수처럼 격하게 흘러 질주했다.

베르겐행은 '북구의 쇼팽'이라고 하는 그리그를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하다. 베르겐 근교에 그리그 생가가 있다. 소프라노 가수였던 부인 니나와 22년 간 살던 집이다. 피오르드를 창문 가득 담고 있는 그의 작업실을 둘러볼 수 있고, 150㎝ 단신인 실제 모습 크기의 동상과 사진 찍으며 가볍게 산책도 할 수 잇다.

베르겐의 중심은 보겐만에 접한 부둣가다. 15채 가까운 중세풍의 목조 창고 건물이 어깨를 겯고 일렬로 서있다. 베르겐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시킨 주인공들이다. 베르겐은 14세기 북유럽 상권을 장악했던 독일 무역상 중심의 도시 연합 한자동맹의 한 축이었다.

부두 광장에는 색색의 포장 가판대들이 몰려 커다란 생선 시장이 형성돼 있다. 항구도시답게 싱싱한 해산물과 몰려든 관광객들로 항상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도시 중심의 플뢰엔 산 전망대에 오르면 베르겐의 아름다운 시가지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올레순

게이랑에르 피오르드 여행의 관문인 아름다운 항구 올레순은 아르누보의 도시다. 인구 4만2,000명의 작은 도시지만 수산업으로 그 명성이 높다. 세계적인 대구 청어 집산지다.

올레순이 아르누보의 도시로 거듭난 건 도시를 홀딱 잿더미로 만든 재앙 때문이다. 1904년 1월 23일 마가린 공장에서 시작된 불이 마침 이곳을 덮친 허리케인 바람을 타고 도시 전체로 타올랐다. 16시간 만에 도시가 전소됐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사망자는 소방서 옆에 살던 할머니 한 명뿐이었다는 것.

올레순 전소 소식에 전 세계에서 구호의 손길이 답지했다. 게이랑에르 피오르드의 절경에 반해 수차례 이곳을 찾았던 독일 황제 프리드리히 빌헬름2세는 제일 먼저 선박 4채에 구호물자를 실어 보냈다. 이웃 도시의 빵공장들은 휴일에도 빵을 구워 보냈다. 독일 영국 그리스 오스트리아 등에서 공부하던 노르웨이의 건축학도들이 급거 귀국해 올레순 재건에 뛰어들었다. 이런 저런 도움으로 당시 유럽을 휩쓴 아르누보 양식의 석조 건물 350채가 완성됐다.

유럽의 도시 여러 곳에서 아르누보를 느낄 수 있지만 도시 전체가 아르누보 양식으로 집약된 곳은 올레순뿐이다. 올레순의 악슬라산 전망대에 서면 피오르드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아르누보의 도시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올레순을 가장 잘 즐기는 방법은 천천히 거리를 거닐며 각 건물의 창들이 층마다 모양새를 달리하는 모습을 눈 여겨 보거나 벽에 그려진 다양한 문양들을 감상하며 아르누보의 다양성을 느끼는 것이다.

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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