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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민들레영토의 성공비결.. 본문
토종카페 '민들레영토'가 '스타벅스'를 제친 이유 | ||||||||||
[프레시안 2005-02-12 13:42] | ||||||||||
민들레영토의 성공비결, '감성마케팅' 본점인 서울 신촌 민들레영토는 8백평 빌딩 전체가 카페이다. 10년 전 하루 1백명 정도의 고객이 찾아오던 이 곳은 지금은 하루 1만명이 찾아온다. 그 비결은 '감성마케팅'이다. <민들레영토 희망스토리>(랜덤하우스 중앙 간)는 마케팅MBA(주)의 김영한 대표가 민들레영토의 지승룡 대표를 6개월 동안 수십차례 만나 그의 이야기와 마케팅 포인트를 정리한 책이다. 저자는 우선 민들레영토를 '감성리더와 감성사원이 운영하는 감성공간'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이 짧은 표현에는 수많은 위기와 창조적인 해결과정에서 구축된 세계 어디에도 없는 경영방식이 압축돼 있어 이제는 초일류기업들이 벤치마킹하는 '감성마케팅' 사례가 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민들레영토의 대표 지승룡은 39세에 성직자를 그만두고 나서야 자신의 몸에 장사꾼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의 사랑'을 서비스하는 문화카페라는 전혀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을 개척하며 그는 20개의 민들레영토를 전국에 건설했다. 지승룡에게 첫 위기는 서른여섯에 이혼을 하면서 예수의 사랑과 진리를 세상에 전파하는 일에 평생을 바치겠다는 결심이 허망하게 무너졌을 때였다. 멀쩡한 성직자도 교회가 모자라서 목회활동을 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이혼은 목회자에게 치명적인 핸디캡이었다. 그는 3년간 닥치는대로 집 근처 종로 정독도서관에서 2천권의 책을 읽으며 패배의식을 달랬다. 어느덧 그는 경제와 경영분야의 책을 섭렵하는 등 사회 복귀에 필요한 책을 중점적으로 골라 읽고 있었다. 재혼에 성공한 유치원 선생님과 만난 것도 이 도서관이었다. 93년 가을 정독도서관에서 나와 인사동의 조그만 한 카페에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하며 30분 정도 사색에 잠겼던 그에게 주인은 "손님, 이렇게 혼자 오래 앉아 계시면 영업에 지장이 있습니다. 그만 일어나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지승룡은 너무나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편하게 쉴 수 있는 휴식공간이 이렇게도 귀하단 말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시에서 살고 있는데, 도시의 모든 공간이 이렇게 장삿속에만 빠져 있단 말인가?' 그때 하나의 영감이 떠올랐다. 외로운 도시인들이 고향의 집이나 어머니의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휴식공간을 만든다면 틀림없이 성공할 거야. 옛날 시골다방에서 마담이 손님에게 편안한 대화 분위기를 제공했듯, 도시인이 쫓겨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카페를 만들면 어떨까? 가래떡 장사로 모은 초기자본 2천만원 그러나 돈이 없었다. 한 달 동안 80명을 만났지만 단 한 푼도 돈을 빌리지 못했다. 결국 스스로 초기자본을 만들어내야 했다. 어느날 길거리 노점에서 떡볶이를 먹던 그는 가래떡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상품이라는 발상을 떠올렸다. 이때 정독도서관에서 읽은 경영도서들이 힘이 됐다. 어떤 장사를 해도 다른 사람과 다르게 해야 성공한다는 지침에 따라 가래떡 장사를 하기 위해 신사복에 넥타이까지 맨 정장 차림으로 강남의 고급아파트 단지를 입지로 선정했다. 주변에서는 서민들이 즐겨 찾는 음식인 가래떡을 부자동네에서 팔기로 한 그를 보고 장사의 기초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비웃었다. 그러난 그는 가래떡이 강남에 사는 중년부인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거라고 생각했다. 중년부인들이 지나갈 때마다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어머니'라고 불렀다. "이거 쌀로 만든 떡인데 제가 지금 막 뽑아왔습니다. 이 떡을 오늘 집에 가지고 가셔서 요리하시면 가족들이 무척 좋아하실 겁니다. 제가 지금 방금 뽑아온 떡입니다." 장사가 잘 되는 날은 하루 20만원 넘게 수익을 올렸다. 가래떡 장사로 약간의 돈이 모이자 그는 이번에는 의류 재고품 판매에 나섰다. 그 무렵 신문에서 의류회사마다 재고로 골치를 앓고 있다는 기사를 눈여겨 본 것이다. 정가의 25%에 재고품을 받아 팔리는 물건만 결제하고 나머지는 반품하는 조건이었다. 정가의 50%에 판매를 하니 이윤이 짭짤했다. 떡장사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2천만원의 초기자본이 모아졌다. 이제 카페 사업을 시작할 때가 왔다. 연세대 신학과를 나온 그는 모교가 있는 신촌을 사업 장소로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2천만원 예산으로 가게를 얻으려고 부동산 중개소를 찾아간 그에게 중개소 주인들은 "가게 없다"는 퉁명스러운 답변만 했다. 알고보니 적어도 억대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다시 창업 관련 서적에서 읽은 정보를 떠올렸다. 좋은 가게를 얻는 노하우였다. '내려가는 길목에서는 장사를 하지 마라,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을 수 있어야 한다, 추후 확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등의 원칙을 가지고 3개월간 신촌 일대를 관찰했다. 그러던 중 신촌 기차역에서 연세대 정문 쪽으로 난 이면도로 부근이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하루종일 서서 살피다가 카페를 하기 에 딱 맞은 장소 하나를 발견했다. 그곳은 연세대 쪽 골목 안 기찻길 옆에 있는 양장점이었다. 위치가 골목 안쪽이고 뒤편은 기찻길이어서 인적이 드물었다. 그러나 주인은 권리금만 1억원을 요구했다. 몇주일간의 줄다리기 끝에 임대보증금과 권리금을 합해서 7천만원으로 깎았다. 2천만원밖에 없었으므로 나머지는 월세로 돌릴 작정이었던 그는 "가게를 계약하기 전에 반드시 건축대장과 등기부등본을 확인하라"는 창업 지침에 따라 구청에서 건축대장을 떼어보았다. 가게를 하려면 영업허가를 받아야 하고 허가를 받으려면 건축물관리대장에 등재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양장점 건물은 건축물관리대장에 등재되어 있지 않은 무허가 건물이었다. 그는 주인에게 "이곳은 무허가건물이더군요. 구청 담당공무원들이 그러는데 머지않아 철거하고 이 거리를 아름답게 꾸밀 계획이라고 하더군요"라며 재협상에 들어갔다. "없던 얘기로 하자"는 주인은 며칠 후 보증금 1천5백만원,월세 70만원의 조건으로 계약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음료 못파는 10평짜리 카페 오픈 카페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지 9개월 만에 10평짜리 가게를 열었다. 카페에서 무엇을 팔 것인가. 음식과 음료 나아가 종업원의 서비스를 판다는 생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어머니의 사랑'을 팔기로 했다. 손님에게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카페에 온 손님을 쫓아내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결정한 게 리필이었다. 어머니는 자식이 아무리 많이 먹어도 낯을 찡그리지 않는다. '드시고 더 드세요'의 마음가짐으로 손님을 대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무허가 건물이어서 음식을 팔 수 없었다. 그는 예전에 친구와 함께 갔던 한 카페가 머무는 시간을 기준으로 1시간에 1인당 5천원을 받고 누구나 먹을거리를 사가지고 올 수 있도록 했던 것도 무허가였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그는 구청 담당자에게 "무허가 건물이라서 음료를 팔 수 없다면 장소사용료를 받으면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구청 직원은 '선례가 없으니 알아서 하라"면서 "자판기를 들여놓으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까지 내놓았다. 그는 장소사용료로 '문화비'를 받되 카페 안으로 먹을 것을 가지고 오는 손님은 막지 않기로 했다. 자판기에서 파는 음료값에 장소사용료를 포함시키고 고급종이컵을 사용해 싸구려라는 느낌을 없앴다. 나아가 회원제를 실시해 입회비를 내면 도형을 이용해 자아실현상담을 해주기도 했다. 양장점이었던 10평짜리 가게에 탁자 6개를 놓은 카페라고 하지만 무허가여서 간판도 달 수 없었다. 그는 지나가는 학생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간판 자리에 영어로 'Break the Impossibility Habits'라고 크게 써놓고 차를 파는 곳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 커피자판기를 하나 사서 쇼윈도 앞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흔들의자를 두 개 사서 부부가 앉아 있었다. 아내는 공주옷을 입고 남편은 스웨터를 입고 앉아 커다란 활자로 인쇄된 영어 성경책을 읽었다. 실내에는 항상 새소리, 물소리 같은 환경음악을 틀어놓았다. 첫날 2명의 손님이 찾아온 뒤 한 달도 안돼 하루 1백명씩 손님이 찾아왔다. 그러나 돈은 적게 받고 많이 퍼주는 영업방식으로 하다보니 하루 5만원 정도밖에 벌지 못했다. 둘이서 하루 막일을 해도 10만원씩 버는데, 둘이 하루 종일 일을 해서 얻는 수입이 5만원이라는 노력에 비하면 적은 돈이었다. '퍼주기 장사'의 사업화 그는 여기서 '곱하기 공식'을 통해 카페 영업을 사업 수준으로 격상시켰다. 잔금을 1년 뒤에 주고 그 동안 이자를 지급하는 식으로 일단 카페를 대형화시킨 것이다. 10평 카페와 옆 가게 두 곳을 사들여 1백평으로 카페를 넓힌 것이다.매출이 비약적으로 신장하면서 매달 수천만원씩 순익이 남았다. 민들레영토에서는 찻값을 따로 받지 않고 문화비를 내면 민토차를 기본으로 커피, 레모네이드, 녹차 등 다양한 종류의 음료를 3번까지 리필해서 마실 수 있다. 조용히 책을 볼 수 있는 독서실과 여러 사람들이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세미나실, 연극과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게다가 고객들이 직접 참여해서 자신들만의 콘서트를 열거나,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공간도 갖추었다. 감성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그는 오감마케팅까지 동원했다. 시각적으로 아릅다게, 청각적으로 분위기 있게, 후각적으로 향기롭게, 촉각적으로 부드럽게, 미각적으로 입맛에 맞도록 카페를 설계한 것이다. 저자는 특히 민들레영토가 제공하는 '감성체험' 마케팅에 주목한다. 서비스 공간에 한 사람이 오래 머물면서 자리를 점유하면 효율이 떨어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래 머무는 동안 그곳에 친근감이 생겨서 다른 상품들을 소비하기 때문이다. 손님이 오래 머물면 다른 손님들이 민들레영토에 왔을 때 이곳은 항상 손님이 많은 인기 있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주게 된다. 고객도 뛰어난 인테리어가 되어 손님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손님들이 항상 있으면 서비스 사원들도 긴장하여 근무의욕이 높아지고 서비스 스킬도 향상되는 부대효과도 있다. 위기 때마다 위력을 발휘한 '문화공간' 그러나 사업 확장 후 또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서울시가 '아름다운 서울'을 만든다는 취지에 따라 서대문구청은 기찻질 옆 건물들을 헐고 공영주차장과 공공시설을 건립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하루 아침에 카페가 없어질 위기의 순간에 그는 디지털 세대에 주목했다. 그는 카페에서 토크쇼를 열고 '이곳이 헐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단골 학생들은 즉각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고 구청 홈페이지에 하루 수백 건의 글을 올려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민들레영토 지키기 운동에 나섰다. 연세대는 물론 이화여대,서강대 학생들까지 온갖 유흥시설로 덮인 신촌에서 민들레영토는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공간이라면서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사태가 이쯤되자 구청에서 실태조사를 나와 마침내 서울시로부터 계획을 철회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민들레영토가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도시인들의 문화공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도시문화연구소'를 만들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주인이나 대표,사장이라고 부르지 않고 '소장'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고 있다. 지승룡은 '문화공간'의 경쟁력에 대한 확신을 가지면서 이번에는 대학로에 민들레영토를 오픈하기로 했다. 신촌에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지만 밀린 대금들 갚는데 돈이 다 들어가 당시 통장에는 1백만원도 없었다. 어이없어 하는 아내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그는 점포 확장 계획을 밀어부쳤다. 원하는 건물이 매물로 나왔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등기부등본을 확인하니 경매 절차가 진행중이었다. 은행 지점장으로부터 건물대금의 90%까지 대출을 약속받은 그는 경매로 건물을 낙찰받았다. 그러나 IMF가 터지면서 대출을 약속한 은행이 다른 은행으로 넘어가면서 잔금을 치르지 못할 위기가 닥쳤다. 6부 이자의 사채까지 끌어써야 할 상황에서 대출에 부정적이었던 한 신용금고회사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알고보니 이사장의 여비서가 이 가페의 단골로 '문화공간'으로서의 민들레영토에 대한 지원을 간청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된 것이었다. 또다시 '문화공간'으로서의 카페의 위력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민들레영토가 스타벅스와 다른 점 저자에 따르면 지승룡은 "경영이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진정한 문제는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못찾는 데 있다느 것이다. 그는 "문제는 해결의 시작이다. 남들이 풀지 못하는 장애물을 해결하면 성공을 앞당길 수 있다"고 보고 그것들을 창조적으로 헤쳐나갔다. "일주일을 굶어보면 인생을 알게 된다"는 말이 있다. 굶주린다는 것, 그것도 죽기 직전까지 굶주리면 인간은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다. 배가 고파본 사람은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만들고 고객 중심의 서비스를 하게 된다. 사업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종업원들이 함께 움직여줘야 한다. 그래서 민들레영토의 도우미들부터 감동시켜야 한다는 게 지승룡의 원칙이다. 동일업종 최고의 대우를 해주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어려우면 상대적으로 최고의 대우를 해준다. 상대적으로 최고의 대우를 해준다는 것은 매출액 대비, 이익 대비로 최고의 대우를 해준다는 뜻이다. 급료가 높으면 우수한 도우미를 채용할 수 있고 다른 곳으로 쉽게 옮겨가지 않고 오랫동안 일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카페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어머니의 사랑'을 손님들에게 실천할 사람들이 직원들이지만 주인 마음 같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는 민들레영토가 도우미 자신들의 것이라고 느끼게 하기 위해 '마스터 제도'를 도입했다. 마스터 작위는 1년 이상 근무자 중에서 민들레영토의 경영철학을 깊이 이해하고 성실하게 근무하며 경영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을 선발해서 작위식을 거행하고 일정액 이상의 매출을 올렸을 때 인센티브도 주어진다. 그는 요즘도 민들레영토의 홈페이지를 통해 커뮤니티 공간을 넓혀가고 있다. 아예 고객들의 미니 홈피를 찾아서 매일 밤 마실을 떠난다. 고객들의 생각과 감성을 이해하는 통로이기도 하면서 인터넷 시대에 걸맞는 고객관리 일환이기도 하다. 그는 신촌 신관을 오픈하면서 스타벅스와 차별화된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스타벅스는 세계 어디에서나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민들레영토는 여러 지역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 지역에 가장 잘 어울리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민들레영토는 중국과 미국에 해외지점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은 북경에서 시장조사를 거쳐 현지직원이 토지매입 등의 준비작업을 하고 있고, 미국도 LA에서 조만간 오픈할 예정이다. 이승선/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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