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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달림의 걷기여행과 마라톤 그리고 등산

남양주 다산 정약용 유적지 탐방 본문

국내여행

남양주 다산 정약용 유적지 탐방

산달림 2014. 12. 2. 14:42

 

 

 

 

다산 정약용 그는 1762년 음력 6월 16일  남양주 조안면 능내리에서

나주 정씨 재원과 어머니인 숙인 해남윤씨의 넷째아들로 태어 났다.

 

7세에 "작은 산이 큰산을 가리웠다네"란 시를 창작하였으며,

1777년 다산은 자신의 학문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스승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가 실학의 선구자인 성호 이익이다.

 

다산은 22세때 진사시험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 갔다.

28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시작하였으며

이때 수원성을 쌓는데 유형거와 거중기를 만들어 사용할 것을 건의하여 많은 경비를 절감하였다.

 

정조가 서거하고 순조가 즉위하면서 노론과 남인사이에

당쟁으로 산유사옥이라는 천주교 탄압사건으로 다산은 천주교인으로 지목받아 유배형에 처해진다.

 

다산은 포항 장기로 유배되고

9개월 후에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다시 한양으로 불려와 조사를 받고

강진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유배지에서 경세학과 경학에 대한 집중적 연구가 이루어 졌으며

500여권에 달하는 그의 저서가 대부분 유배지에서 이루어 졌다.

 

57세가 되던 해 가을 유배에 풀려 고향으로 돌아 온 다산은

이미 이루어진 저술을 수정하고 보완하였는데 목민심서를 완성하였으며

회갑을 맞이하여 자찬묘지명을 지어 자신의 생애를 정리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다산 유적지 및 문화의 거리

 

 

다산 유적지 입구 천일각

 

 

다산 유적지 입구 조형물

 

 

다산유적지 문화의 거리

 

 

2012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

다산 정약용

 

 

다산이 저술한 책 제목

 

 

다산 회합의 삶

 

 

유배길에 오르는 다산과 형 약전

 

 

유배지 강진에서 다산학 형성

 

 

유배지 강진

 

 

다산의 글들을 정독하고 있는 스님

 

 

 

 

 

 

 

 

 

 

 

 

 

 

 

 

 

배다리

정약용이 28세때 용산과 노량진 사이의 한강을 건너는 배다리 설계

 

 

배다리 안내글

 

 

다산 정약용 생가

 

 

다산 정약용 동상과 뒤의 언덕위에는 그의 묘가 있다.

 

 

최근에 조성된 다산 생태공원

 

 

61살에 스스로 묘지명을 짓다.

 

 

강진 다산초당에서 귀양시절

 

 

그가 저술한 유명한 책들

 

 

겨울로 접어든 다산 생태공원

 

 

그 길을 아내와 아들, 딸이 걷고 있다.

봄이 오면 다시 한번 찾아오자고!

 

 

생태공원 전망대에서 아내

 

 

생태공원 산책로

 

 

팔당호반

이곳의 물은 서울시민의 젓줄인 수돗물

 

 

서내 나루 전망대

 

 

늦가을 아니 초겨을 비가 추적이는 다산생태공원

 

 

다산 생태공원 전망대

 

 

실학 박물관에서 다리도 쉴겸 퍼즐게임

 

 

글꼴에 관심이 많은 딸애는 글꼴 사진찍기

이게 컴퓨터 글씨체 만드는데 도음이 된다고

 

 

1932년 달력

 

 

1935년 달력

수, 목, 금, 토, 일, 월 화

 

월요일이 처음이 아니고 수요일이 처음인게 이채로움.

요일이 세로로 좌측에 있는것도 발상의 전환?

 

 

1962년 달력

그때 표어가 " 건전한 가축생산으로 농촌부흥 이룩하자."

 

 

 

1968년 달력

그땐 가족계획이 강조되던 때

피임기구 "루우프"에 대한 계몽운동

 

 

 

1971년 달력

 

 

다산 유적지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