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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달림의 걷기여행과 마라톤 그리고 등산
동계 지리종주 2 본문
또 다시 뜨는 아침
간밤에는 바람도 불지 않고 포근해서 세상모르고 편히 잤다. 늘 동계 탠트속의 아침은 추위로 일어나기 싫은데 춥지 않으니 쉽게 침낭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간밤에 지어 놓은 3끼 밥과 간단히 동결건조 찌게만 끓이고 밑반찬을 꺼내 조촐한 아침식사를 끝냈다.
멀리서 산행중인 산꾼들의 말소리가 들린다. 오늘도 지리산 일출을 봤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일출은 요즘 같은 날씨에 자주 볼 수 있단다.
탠트를 철수하는데 외피 자락에는 기온차로 고드름이 주렁주렁 열렸다. 지리산의 밤은 아무리 포근해도 영하의 날씨고 내가 잔 자리만 눈이 녹아 움푹 파져 있다.
오늘은 늦장을 부려 8시에 출발이다. 또 하루가 시작이 된다. 내리막을 내려서면 장터목산장이고 아침식사를 하는 산꾼들도 있고 산장앞에 마치 침낭 성능시험을 하는 듯 은박매트를 깔고 빨래판 매트위에 침낭을 깔고 비박을 하고 있다. 이런 날씨에 바람도 적게 부니 비박을 해도 무리는 없겠다.
제석봉을 오르는데 아침에 빈몸으로 천왕봉 일출을 보고 돌아오는 산꾼들의 틈 사이로 천왕봉으로 향했다. 의외로 성탄절을 산에서 보내려는 젊은이가 많이 눈에 띄인다. 제석봉의 고사목 지대를 통과하고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을 지나 1,195m 천왕봉에 섰다.
늘 이곳은 사람으로 붐비는데 이른 시간 탓에 한가하다. 걸어온 길 노고단이 아스라이 멀리도 보이고 그 앞에 반야봉이 있고 반대편으로 보면 가야 할 길 웅석봉도 멀리만 보인다.
이제 중봉으로 향한다.
다들 중산리로 하산을 하여 혼자 걸었다. 깊고도 긴 칠선계곡도 흰눈에 덮여 겨울잠을 자고 있다. 중봉에는 아가씨 두명이 치밭목에서 자고 아침 일찍 올라 왔다고 하면서 사진을 찍는다. 그녀들에게 사진을 부탁하니 그녀들도 천왕봉을 배경로 한 장 찍어 달라고 한다.
“즐거운 산행하십시오.” 인사하고 하봉으로 향했다.
집나간 카메라
중봉에서 써레봉으로 가는 쪽만 등산로가 나 있고 하봉쪽으로는 이번 눈이 온 후로 인적이 끊겨 길이 나 있지 않다.
웅석봉으로 가는 길은 중봉에서 하봉을 경유하여 두류봉을 지나 쑥밭재로 향한다.
지금 까지 오던 길과는 달리 아이젠과 스페츠를 착용하였건만 눈에 푹푹 빠지고 내리막 길이라 몇 번이나 고꾸라질뻔 하였다.
그래도 신설을 밟는 기분은 과히 나쁘지 않았다. 작년말에도 이곳을 반대인 웅석봉에서 올라서 천왕봉으로 산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러셀이 되어 있지 않더니 지금 또한 그렇다.
이 코스는 평소에도 내왕이 뜸하고 겨울철이면 일반 산악인의 출입이 거의 없고 경험 많은 산꾼들만 가끔 찾곤한다.
중봉과 하봉사이에 공터가 있고 이곳에서 치밭목 쪽으로 샘터가 있는데 식수를 구하려고 내려가니 눈에 덮여 샘터를 찾을 수 없다.
다시 배낭을 둘러 메고 눈속을 걸어 하봉으로 내려 가는데 간혹 바윗길이 있어 무거운 배낭탓에 중심 잡기가 만만하지 않다.
하봉에 도착하여 사진을 찍으려는데 디카가 없다. 마지막 사용한곳은 중봉이니 그사이에 없어 진 것이다. 늘 자켓 파일주머니에 넣어 두고 산행중에도 필요하면 찍으려고 넣어두고 사용하였는데 중봉까지는 러셀구간을 걸어서 잘 가지고 왔는데 중봉부터는 몸의 중심이 많이 흔들려 그사이 어디선가 빠져 나간 것이다.
눈속에 다시 찾기는 어렵겠지만 괜한 아쉬움을 남기지 않으려고 배낭을 내려두고 오던길을 되돌아가며 카메라를 찾아 보았다.
이곳 음지의 눈은 분설이라 실험으로 휴대폰을 눈속에 던지니 푹 빠지고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아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로 중봉까지 발끝으로 눈으로 확인하면서 걸어 봤으나 카메라의 행방은 묘연하다.
근 한시간을 올라 갔다가 다시 돌아 오면서 찾아 봐도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포기는 빠르면 좋은데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이번 산행에 찍은 사진도 아깝다.
다시 배낭을 벗어 놓은 곳 까지 돌아오니 힘이 쭉 빠진다. 지리산 계곡을 감상하면서 인절미를 씹으며 카메라는 포기하고 힘을 보충한 다음 다시 산행에 나섰다.
잠시 길을 잃고 헤메며
두륜봉으로 가는 길은 만만하지 않다. 이곳은 바위길이 많아 속도가 나지 않고 오름내림이 심하다. 통제된 등산로라 표시리본도 제대로 붙여 있질 않아 길도 헷갈리는 곳이 많다. 주능선은 대원사 계곡 상단으로 능선이 이상하게 끊어지면서 이어져 늘 길이 헷갈리는 곳이다. 주눙선을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낭떨어지가 나오고 우회하기를 몇 번했다. 단지 독바위를 목표로 길을 잡아 전진했다.
오늘은 날씨라도 맑아 독바위만 보고 가면 길을 잃지 않지만 안개가 끼거나 흐린날은 조심해야 하는 구간이다.
겨울철이 아니면 길이라도 따라가지만 겨울철에 눈이 내려 길을 덮어 버리면 지형지물을 보고 가는게 만만치가 않다.
독바위만 보고 전진했는데 드디어 청어당이 나타난다. 태극종주때 물을 뜨는 곳이다. 계곡에서 점심은 아침에 준비해 온 밥과 동결스프로 찌게를 끓여 점심을 해결하였다.
이렇게 단독산행을 하다보면 때가 되면 식사하고 1시간 정도 걷고 간식 먹고 그러다보면 하루가 간다. 오직 걷기 위해 산을 온 착각을 하기도 하는게 무척 많이 걸을 수 있다.
독바위를 지나면 2군데는 로프를 사용하여 내려 와야 한다. 미끄러운 눈과 배낭무게가 중심잡기가 만만하지 않다.
그렇다고 배낭을 아래로 던질 수도 없고 난감할 때가 더러 있었다. 이런 구간이 많으면 자꾸만 늦어진다. 키를 넘은 산죽밭을 헤치고 나오는데 내린 눈으로 산죽이 이리저리 엉키고 설켜있어 헤치고 나오기도 힘겹다.
지루하던 산죽밭과 암릉구간을 통과하고 외고개로 내려가는 내리막 길을 서둘러 내려오니 오늘 해도 그리 남아 있지 않다.
우측으로 새재의 민가가 몇채 보인다. 외고개에서 오늘 마지막 간식으로 체력을 보충하고 서왕등재인 습지를 향해 올랐다.
아래에 산꾼 3명이 올라 오는 모습이 보인다. 그들이 오늘 처음 만나는 등산객이라고 반가워 한다. 남자 2명에 여자1명으로 그들은 아침9시에 밤머리재에서 출발 했다고 하였는데 목표는 청어당 까지인데 지금까지 진행속도로 힘들 것 같은데 자꾸만 걷는 속도는 생각하지 않고 얼마나 시간이 더 걸릴것 같으냐고 묻는다.
그야 산행속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상당히 지쳐있어 무리라고 했더니 가는데 까지 가보자는 말을 남기고 산을 오른다.
이제 고도가 상당히 떨어져 있어 눈은 녹아 군데군데 남아 있어 산행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거추장스러운 스페츠와 아이젠도 벗어 버리고 가볍게 올랐다.
서왕등제에 있는 습지 나무다리에서 물을 보충하고 해질녁 까지 걷기로 했다. 이번산행은 겨울 산행으로 생각하고 보온에 신경을 써 복장을 갖추고 왔는데 오히려 거추장스럽다.
파일 자켓도 벗어버리고 폴라티셔츠만 입고 걸어도 춥게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건 완전히 봄산행을 온 그런 날씨다.
산중의 밤
천왕봉에 가려서 일찍 해가 진 새재 뒷산을 걸었다. 오늘은 어디에서 또 하루 둥지를 틀까? 그곳은 동왕등재 가기전 안부에서 낙엽을 긁어 모아 탠트를 쳤다.
산중에 어두움은 금새 찾아온다. 제빨리 탠트를 치고 배낭을 안고 들어가니 언제나 포근하다. 오늘은 젖은 탠트도 말리려고 버너를 피웠더니 갑갑하다. 간밤에 충분히 자고 많이 걷지도 않아서 그리 피곤하지는 않다.
삽겹살을 구워 일단 홍주와 대면을 했다. 역시 산행후 마시는 술맛은 역시 최고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니 산중 탠트 속에서 할 일이 없다.
오늘은 여유가 있어 집에도 휴대폰으로 메세지를 보내고, 지인들이게도 편지를 보냈다. 요즘 휴대폰이 널리 보급되어 산중에서도 옆에 있듯 서로 소식을 전할 수 있어 무척 편리하다.
전엔 혼자 산행을 떠나면 아내가 늘 걱정을 했는데 요즘은 즉시로 소식을 알릴 수 있으니 아내의 바가지도 많이 줄었다. 다들 성탄절이라 집에 가족과 함께 있는 줄 알았는데 산행을 나선 분들이 많다. 역시 산꾼은 산을 잊지 못하나 보다.
그래도 어두움이 깃들면 잠이 오나 보다. 밤하늘엔 별이 많은데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다.
밤 하늘의 별들이 모두 성탄트리라 생각하니 적적하진 않다. 시청주변이나 명동은 인파로 가득 할 시간인데 난 인적이라곤 없는 지리산 자락에 혼자 조용한 성탄전야를 보낸다.
얼마를 잤을까? 잠결에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말소리도 들리는걸 보니 등산객 같다. 이 밤중에 어디를 갈까?
이야기를 들어 보니 3명이 천왕봉을 향해 가는 것 같고 한분은 여자목소리다. 성탄 이브날 산행하는 것도 의미있는 성탄전야가 되겠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지나간다.
그래 성탄전야를 걷는 것도 의미 있다. 맞아! 시계를 보니 12시 30분. 잠도 잘 만큼 잤고 이밤을 걸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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