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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달림의 걷기여행과 마라톤 그리고 등산

동계 지리종주3 본문

국내 마라톤/32, 하프, 10km

동계 지리종주3

산달림 2006. 12. 29. 14:33
 

성탄절 밤 추억 만들기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잠을 이룰 수 없다. 잠도 오지 않고 눈은 말똥말똥해지고 생각은 밤머리재로 향하고 있다. 그래 출발이다. 스스로 명령하고 그때부터 배낭을 꾸렸다.

침낭을 개어 배낭에 깊숙이 넣고 버너, 코펠, 반찬 등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한걸 하나씩 배낭에 차곡차곡 챙겼다. 배낭을 챙겨 탠트 밖으로 나오니 밤하늘엔 별들이 총총하다.

탠트 플라이를 걷으니 물기가 가득하다. 그래도 탠트안과 밖의 기온차로 물방울이 잔득 맺혔다. 대충 털고 접어 배낭을 꾸리니 배낭 가득이다.


어두움 속에 헤드랜턴의 불빛에 의지하여 새벽 1시 30분에 출발하였다. 등산로는 비교적 좋아 걷는데는 부담이 없었다. 동왕등재를 올라 웅석봉을 향한 성탄의 날 새벽 산행이 시작 되었다.

밤하늘엔 은가루를 뿌려 놓은 듯 별들로 가득하고 멀리 보이는 산청의 작은 도시는 불빛만 가물거리고 고요속에 묻혀 있다.


고요한 밤 지리산 자락을 걷고 있으니 이원규님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란 시가 생각난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詩: 이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 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 노을을 품으려거든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시려 거든

 불일 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 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 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 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님은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등산(登山)은 말고 입산(入山)하러 오시길”이라고 말했다. 등산은 인간의 정복욕과 교만의 길이지만 입산은 자연과 한몸이 되는 상생의 길이기 때문이다.』 라고 했지만 도심에 사는 산꾼에겐 알면서도 수행이 부족하여 실행 할수 없음이 안타깝다.


[이원규의 지리산 가을편지] 등산과 입산


산그늘에 얼굴을 가리고 펑펑 울기에 참 좋은 날입니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기 바랍니다.

다만 등산은 말고 입산하러 오시길.

등산은 정복욕과 교만의 길이지만

입산은 자연과 한 몸이 되는 상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경쟁하듯이 종주를 하다보면

보이는 것이라곤 앞 사람의 발뒤꿈치 뿐이지요.

하지만 입산의 마음으로 계곡을 타고 흔적 없이 오르는 사람에게는

몸 속에 이미 지리산이 들어와 있습니다.

유정 무정의 뭇 생명들이 곧 나의 거울이자 뿌리가 되는 것이지요.

누구나 정복해야 할 것은 마음 속 욕망의 화산이지 몸 밖의 산이 아닙니다.


산에 오를 때엔 바람의 방향을 따라 흥얼거리며

'만만디'('천천히'의 중국어) 오르기 바랍니다.

그것만이 사람도 살고 산짐승도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바람결에 나의 냄새와 노래를 실어 보내면 멧돼지나 반달곰이나 독사들도

알아서 길을 내주지요.

처음엔 향기로운 풀꽃을 따라 갔다가 상선약수의 계곡 물을 따라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곳에 그대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되새겨 볼 말이다.


산짐승과 함께

왕등제는 2개소가 있는데 동․서 왕등재다. 두 왕등재 사이에는 약 8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편의상 동․서 왕등재라고 부른다.

야영지에서 동왕등재 까지는 1시간이 소요되었다. 야간 산행은 오직 길만 보고 걷기 때문에 집중도가 높은 반면 전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빨리 걷기가 어렵다.


꾸준히 걷는데 어제부터 식수가 부족해 물을 제대로 마시지 못해 갈증이 심하였다. 그래서 등산로 주변에 있는 눈을 뭉쳐서 녹여 먹었다.

적당하게 녹아 있는 눈은 물도 많이 나오는데 좀 많이 뭉쳐 먹으면 빨리 녹지 않아 이빨이 시렸다. 눈도 꽤나 먹으니 갈증도 해소에 도움이 된다.

창랑거리는 수통의 마지막 까지 비상용으로 남겨 두어야 한다. 언제 어떤일이 발생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가끔 산 아래로 멀리 보이는 인가의 불빛이 유일한 위안이 되었다. 밤머리재에 있는 휴게소를 우선 첫 번째 목표로 생각하며 걷는데 길이 이리 휘어지고 저리 휘어지니 방향 감각이 희미해져 거꾸로 뒤돌아 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밤머리재를 앞두고 헬기장을 통과하면서 길이 맞다는 걸 확신을 했고 그리고 오름내림을 몇 번 더 했다. 밤머리재라는 지명이 붙여진 것은 밤나무가 많아서 라는 말도 있고, 고개가 너무 길어 고개를 넘으며 밤을 한말 까먹었다는 뜻에서 밤머리재라고 불리기도 한단다.


마지막 헬기장을 지나 밤머리재로 향하는데 오소리인지 산짐승의 울음소리가 무척 크게 들려온다. 그래서 그 울음소리 보다 더 크게 흉내를 내며 소리치니 이내 잠잠해 진다.


밤머리재는 새벽 3시 50분경 도착하니 휴게소 안에 인기척이 있어 “아저씨 먹을 것 팔야요?” 하니 잠옷차림으로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나오신다.

“새벽에 잠을 깨워 미안합니다.” 했더니 “안 그래도 일어날 참이 었어요.” 한다.

“왜요?” “어제 덕산에서 밤머리재 까지 산행한 분이 오늘 새벽 4시에 산행을 시작하는데 주먹밥을 싸 주기로 했어요” 한다.

휴게소 아저씨께 “산짐승 소리가 있던데요.” 하니 대수롭지 않게 “봄날 멧돼지가 발정을 하면 산이 쩌렁쩌렁 울려요.” 한다.


막걸리 힘으로 웅석봉 올라

갈증이 심한 터라 갈증에는 막걸리가 제격이다. 학교 다닐적 가끔 시골에 가서 보리타작 할 때 땀이 많이 나는데 그럴 때엔 먼지와 갈증해소에 막걸리는 물밴또(도시락)라하여 막걸리를 마시고 힘든일을 했던 기억이 있다.


막걸리 한통을 청하여 마시니 속이다 시원하다. 막걸리 한통은 3컵으로 그걸 비우고 갈증을 해소하고 웅석봉으로 향하려는데 그때 한대의 차가 올라 오더니 그분들이 오늘 천왕봉을 등산한다는 분들로 여자 한분을 포함 3명이다.

“즐거운 산행”되시라고 인사하고 웅석봉을 향했다. 아직 일출시간이 되려면 3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는데 동짓달 겨울밤은 길기만 하다.


표고차가 뚝 떨어진 밤머리재에서 웅석봉까지는 상당한 표고차를 극복해야 한다. 계단 하나하나를 딛고 올라서는데 멀리 지곡사의 불빛이 촘촘히 있다. 왕재까지는 오름의 연속이다. 왕재에서 잠시 쉬는데 지곡사의 새벽 독경소리가 들려온다. 출가한 스님은 새벽에 일어나 예불을 올리니 수행은 무척 힘든 일이라 생각되었다.

아침으로 가면서 자꾸만 새벽 안개가 끼어 점점 시야를 흐리게 한다. 등산로도 질퍽해져 있어 길이 미끄러워 걷기도 편하지 않다.

20길로가 넘는 배낭 무게도 두 어깨를 짓눌러 오니 피곤도하다. 밤엔 자주 쉬지 못하고 1시간 이상 걷다가 정말 피곤하면 그때 잠시 쉰다.


공터가 나오고 300m를 더 가면 웅석봉이다. 일명 곰바위산으로 정상에 표지석에 곰이 그려져 있다. 아직 일출 시간은 이르고 배가고파 이른 아침식사를 위하여 산불감시초소로 들어갔다.

동결건조 스프를 끊여 국을 만들고 간밤에 지어온 밥과 함께 걷기 위하여 먹었다. 그때부터 차츰차츰 안개속으로 밝아 온다.


이정표를 보니 어천, 내리, 청계로 하산하는 길이 보인다. 시간도 여유로와 태극종주길인 덕산으로 하산하려고 먼저 산행경험이 있는 리베로님께 통화를 시도하니 이른 아침 7시경이라 아직도 자는 것 같아 메시지만 남기고 청계방향인 듯 하여 그쪽으로 하산을 하였다.

샘터에는 물이 말라 있고 멀리 청계저수지가 보인다. 반신반의 하며 등산로를 따라 내려 오는데 내려 올수록 이길은 아닌 것 같다.


이번 산행에는 길을 전부 안다고 생각하여 지도를 미쳐 챙겨 오지 못했다.

아마, 태극종주길은 웅석봉 오르기 전 공터전에 능선을 따라 계속 직진을 해야 하는 것 같다. 내려온 길이 너무 길어 돌아 가기도 뭣하고 청계방향길도 초행이라 그냥 따라 내려가기로 했다.


산 아래로 경호강이 흐르고 고속도로와 국도가 나란히 있는데 신나게 차량들이 달린다. 청계전원주택단지를 지나 경호강가로 나오니 강바람이 있어 쌀쌀하게 느껴진다. 아스팔틀 길을 따라 원지행 버스를 타는 정류장 까지는 언제나 그랬듯 씩씩하게 걸어 버스를 기다렸다.

원지로 나가 상경을 해야 한다. 새벽부터 걸을 탓에 아침에 산행을 끝내니 홀가분하고 일찍 상경하는 맛도 괜찮네.

아내에게 “나 지금 집에 가”라고 전화해야 겠다. 그래서 여행이나 산행은 돌아 오기 위해 떠난다고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