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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달림의 걷기여행과 마라톤 그리고 등산

마더 테레샤 수녀님 사랑의 선교회가 있는 꼴카타 본문

아시아 여행/인도

마더 테레샤 수녀님 사랑의 선교회가 있는 꼴카타

산달림 2016. 2. 22. 19:48

 

늘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있어 새벽 5시 30분 경 일어나 산책이나 갈려고 나가려는데 철대문이 자물쇠가 굳게 잠겨져 있다. 하는 수 없이 책을 꺼내 읽고 있는데 6시경에 인기척이 있는데 한국말이 들린다. 문을 열고 나오니 테레사 하우스에 하루 봉사활동을 간다고 한국에서 온 여행자들이다.

 

가난한 자의 어머니, 마더 테레사 수녀님은 '가난한 자중에 가장 가난한 자'를 무상으로 돌보는 '사랑의 선교회'를 건립해 헤어나기 힘든 가난한 자에게 봉사하신 분으로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닌 무관심'임을 평생에 걸쳐 설파하며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을 위해 삶을 산 수녀님의 고귀한 정신은 지금도 세인들의 가슴 속에 기억되고 있다.

 

그곳은 서더 스트리트에서 걸어서 20여분의 거리로 그들을 따라 나섰다. 가는 길에는 가축시장을 지나가는데 소 다리가 걸려 있고 막 숨이 끊어진 염소가 길거리에 내팽겨져 있는 등 쇼킹한 인도의 뒷거리를 보았다. 

등교길의 학생들은 대부분 아빠, 엄마 혹은 할머니의 손을 잡고 등교하는데 자식에 대한 사랑은 인도도 예외는 아니어서 "바보아빠."  "바보 엄마"는 인도에도 마찬가지로 부모의 내리 사랑은 어디에도 있었다.

 

그들은 테레사 수녀원으로 들어가고 갔던 길을 되돌아 오는데 꼴카타의 교통수단은 노란택시, 오토릭샤, 싸이클릭사에다 인력거까지 참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꼴카타시민들이다. 불쌍하다고 인력거를 이용하지 않으면 인력거 주인은 끼니를 굶게된다. 그래도 인력거를 이용해 주는게 그들을 돕는 길이란다.

 

밤기차 시간이 22:35분이라 하우라 역에서 기다리면 지루하고 피곤 할것 같아 마리아호텔에서 그때까지 머물다가 갈 요량으로 주인장에게 얼마를 더 주어야 되냐고 문의하니 "350Rp" 한푼도 깍아 줄수 없다고 한다. 역시 듣던데로 마리아 호텔 사장님은 까칠하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10시 체크아웃이라 한다.

 

아침부터 숙소 구하러 다녀야 했다. 주변 도미토리는 만원이고 겔럭시호텔이나 호텔파라곤은 방이 없고 트레블 Inn은 방이 있었다. 가격도 착하게 300Rp. 그곳으로 방을 옮기고 쉬었다가 빅토리아 메모리얼로 걸어서 가는데 앞에 서양인 아가씨 두명이 걸어가고 있다. 이때 편한게 지금부터 지도를 보지 않고 그녀들만 따라 가면된다.

 

정문에서 매표를 하는데 멀리서 온 이방인에게 말을 걸어 오네. 어디서 왔는냐? 여정은? 어디를 경유해서 왔는냐? 앞으로 일정 등에 대해 물어 왔다. 그녀들은 뉴질랜드에서 왔고 2주일정이라 시간이 너무 부족해 아쉽다고 하면서 한달 일정으로 남인도를 돈다고 하니 많이 부러워 했다.

 

빅토리아 메모리얼(Victoria Memorial)은 1901년 죽은 빅토리아 여왕을 기리는 일종의 추모기념관으로 추모 5주년을 기리면서 지었는데 르네상스 스타일의  외관과 중앙의 무굴식 돔과 이슬람식  격자세공 창문을 가미해 인도적인 느낌도 살아 있는 건물이다. 돔위에 우둑선 동상은 빅토리아 여왕을 상징하는 승리의 여신상으로 이탈리아에서 제작해 왔다고 한다.

 

그리고 인근에 있는 성 바울성당(St Paul Cathedral)으로 갔다. 1847년에 세워진 60m 높이의 고딕 성당으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스테인드 글라스(Stained Glass)가 곱다. 성당내에는 소원을 적는 곳이 있어 가족의 이름과 건강을 기원하였다.

 

벌라천문관(Birla)은 공사중이라 출입문이 굳게 닫혀있어 지나와서 점심때가 되어 현지식으로 식사하고 주변에 있는 AC마켓에 가서 Hot Pot를 사려고 하는데 가격이 만만하지 않다. 51,000원의 거금. 사는걸 포기했는데 이곳은 꼴카타의 부유층이 주로 이용하는 마켓인듯 했다.

 

죽음을 기다리는 집 칼리사원(Kali Temple)로 가려다 다녀 오면 인디언 뮤지엄을 볼수 있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서 먼저 인디언 뮤지엄(Indian Museum)를 찾았다.  입장료가 내국인은 20Rp 외국인인은 25배나 많은 500Rp. 그래도 인도에 왔으니 박물관은 보고 가야 할것 같아 들어가는데 소지품은 보관을 해야 하고 금속탐지기를 통해 입장.  

 

인도에서 최초의 현대식 박물관으로 간다라 불상에서 부터 라자스탄, 무굴 세밀화, 티베트 불교의 탕가, 심지어 이집트에서 가지고 온 미이라를 비롯하여 맘모스 표본까지 전시되어 있다.

 

2층은 자연사 박물관으로 3층은 회화 전시실로 중국의 송. 명, 청대의 화려한 진품 도자기를 볼수 있고 특별 전시실에는 일본 도자기와 회화도 전시되어 있었다. 규모가 커서 찬찬히 보면 한나절을 보내야 하지만  칼리사원을 다녀와야 하기에 서둘러 보고 나섰다.

 

지하철 Park St에서 Kali Ghat역으로 이동하여 걸어서 10분 거리인데 많은 힌디들이 무리를 지어 움직이기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칼리사원은 전형적인 벵갈식 사원 양식으로 꼴카따의 수호여신인 칼리를 모신다. 칼리사원은 특히 의식을 올릴 때 산 제물을 바치는 것으로 유명한데 18세기 이전에는 드물긴 하지만 인신공양이 벌어지기도 해 서양인들이 힌두교의 야만성을 강조하는 소재로 등장하기도 했는데 지금도 칼리사원은 매일 아침에 염소가 산제물로 바쳐진다고 한다.

 

제물로 끌려 온 지도 모른 채 야자수 잎을 오물거리는 염소와 몇분후에 펼쳐지는 살육(한칼에 목이 떨어짐) 그리고 사원에서 잡은 고기라는 이유로 비싸게 팔리는 상황을 보면 종교의 존재가치에 대해 자문하게 된다. 꽃과 붉은 색으로 치장한 사원에는 힌디들은 빌고 또 빈다. 무엇을 빌까? 재산, 건강, 명예일까?

 

돌아 오는 길은 어두워 진 후라 길의 분간이 쉽지 않아 잠시 지하철 역을 지나 길을 잃었는데 꼴카타의 지하철역은 입구에 별다른 표시가 없기 때문에 자세히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매표소에서 5Rp를 주고 표를 사는데 퇴근시간 이후라 줄이 무척이나 길다. 지하철도 비행기 타듯 금속탐지기를 통과하여야 하는데 군인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고 지하철을 군사시설로 관리하고 있기에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돌아 오는 지하철에서 어깨에 맨 가방의 자크가 열려 스마트폰이 보이니 잠그라고 알려 주는 지하철의 시민. 인도인도 착한분들이 더 많다. 밤기차를 타야 하기에 저녁식사는 든든히 싱가폴식 볶음 Rice와 Sweet 라시를 주문하니 200Rp(3,400원)이다. 서더스트리트엔 신심찮게 한국인을 만날 수 있었다. 여긴 맥주를 마실려면 Beer & Wine 가게에서만 구입이 가능한데 가격도 현지 물가에 비해 비싸고 술병이 보이지 않게 신문지에 싸서 준다. 술 마시는걸 아름답게 보지 않는다. 

 

오늘은 인도에 조금 적응해 나가는 날이다. 우리가 하는 많은 걱정은 일어나지도 닥치지도 않는 괜한 걱정을 미리 한다고 한다.  인도에서 닥치는 일들은 그때 처리하면 될일이지 미리 걱정을  할 필요는 없는것 같다. 첫 밤기차 타기가 오늘밤 과제다.

 

속소에 돌아와 시간이 이유가 있어 쉬면서 Wi-Fi가 잘되 되는 곳이라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언제부턴가 23:35분으로 생각하고 시간을 보내다가 그래도 일찍 하우라역에 나가야지 하는 생각에 숙소 체크 아웃을 하고 기다리는 택시는 요금이 비싸 서더거리 입구에서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하우라역으로 가는데 문득 그때 생각나는게 22시 35분 기차지 하는 생각이 들며 기차표를 보는 순간  머리가 하얗게 된다. 정신하고는?.

 

숙소에 택시를 탄 시각이 21시 55분인데 하우라 철교를 지나면서  과연 기차를 탈수 있을까? 만약 타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머리가 복잡하다. 하우라 다리를 건너면서 시계를 보니 23시 09분. 다행히 늦은 시간이라 도로는 그리 막히지 않고 인도의 대부분의 택시기사가 그러하듯 열심히 달린다. 그런데 하우라역앞 진입로가 막혀 입구 차도에서 내려 달라고 하고 내려 뛰었다. 출발 15분전 근데 하우라역 입구를 쉽게 찾을 수 없다. 지하로 내려가 다시 지상으로 오르니 하우라역으로 연결이 된다.

 

뿌리(Puri)가는 기차가 몇번 홈에서 출발하는지 알수가 없어 부근 젊은 친구에게 물으니 그도 전광판을  찾아서 보란다. 전광판도 보이지 않고 시간은 흐르고 있어 짐꾼에게 물으니 배낭을 머리에 얹어 달라고 한다. '하우 마취?' 하니 '삐프티 루피!" 그가 짐을 운반해 주는 사람임을 알고 50Rp를 손에 쥐어 주고 뿌리 풀렛홈으로 가자고 하니 앞서서 젭사게 달린다.

뒤에서 55L 배낭을 매고 따라 가는데 창고 건물사이로 뛴다. 의심이 가지만 그들 믿고 따라가는 수 밖에 없다.  창고 사이로 빠져나와 게시판을 가리키며 이름을 확인해 보라고 한다.

 

인도의 기차는 출발역  플렛홈에 승차자 명단이 붙어 있다. S3 67번에 내이름이 있다. 그런데 인도 기차는 길이가 4 ~500m 가 되니 어디에서 타는 위치의 확인이 필요하다. 열차 S3 위치를 찾는데 마음이 급하니 당황하여 인도인에게 물으니 대충 "저기!"

인도의 기차는 A에서 시작해 B, C 그리고 S칸인데 1, 2...... 12번 정도로 길다. 다행히 기차 승무원 같은분을 만나 S3의 위치를 물으니 저기쯤된다고 한다. 그때가 22시 35분.  그런데 아직 기차가 들어오지 않았다.

 

5분정도 지나니 그제야 기차가 플렛홈으로 들어온다. S다음칸인 인도서민들이  타는 칸은 남부여대로 바리바리 짐을 들고 서로 기차를 타려고 몸싸움이 심하다. 그칸은 침대는 없고 단지 의자만 있는데 좌석을 잡으려는 그들은 필사적이다. 기차가 플렛홈에 들어 왔지만 내부 전등을 켜지 않아 어두운데도 인도인들은 스마트폰 불빛으로 자리를 잘도 찾는다. 나도 그들과 같이 자리를 찾았다. 3단 침대중 가장 윗쪽이다. 자리를 잡고 배낭을 내려 놓으니 온몸이 땀으로 홈뻑 젖었다. 이제 긴 안도의 숨을 내쉬며 액땜이라 생각하고 선반 같은 침대에 몸을 뉘였다.

 

나 홀로의 배낭여행은 직관이 발동한다. 여행지에서 긴박한 상황시 직관에 집중하게 되는데 여행중에는 직관을 내리는 연습을 하기에 아주 좋은 시간이 된다. 그게 일상으로 돌아 왔을때 위급한 상황에 직면할때 의사결정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될것 같다.

 

 

빅토리아 메모리얼 가는 길

 

빅토리아 메모리얼 정원

 

빅토리아 메모리얼 부조

 

 

빅토리아 메모리얼 전경

 

빅토리아 메모리얼

지금 인도는 건기 스프링 쿨러로 물주기

 

빅토리아 메모리얼  정원

 

빅토리아 메모리얼  정원

 

빅토리아 메모리얼  정원

 

 

마더 테레사 수녀원 사랑의 선교회에서 운영하는 고아를 돌보는 곳인 샤슈 바반

 

마더 하우스 안내판

 

 

빅토리아 메모리얼 전경

 

 

빅토리아 메모리얼  정원

 

 

빅토리아 메모리얼  승리의 여신상

 

 

빅토리아 메모리얼

 

 

빅토리아 메모리얼  내부는 촬영금지

 

 

빅토리아 메모리얼

 

 

빅토리아 메모리얼  전경

 

 

성 바울 성당 입구

 

 

성 바울 성당

 

 

스테인 글라스가 예뿐 성 바울 성당

 

 

성 바울 성당

 

 

성 바울 성당 내부 조경시설

 

 

성 바울 성당  조명등

 

 

성 바울 성당  입구 계단

 

 

성 바울 성당 앞

 

 

성 바울 성당  내부 조경

 

 

성 바울 성당  전경

 

 

 

인디언 뮤지움 1층 입구 전시관

 

 

공룡전시관

 

1층 내부 공룡전시관

 

2층 이집트 전시관

 

 

2층 이집트 전시관

 

 

인도의 세계 문화유산 분포

 

인도 고등학생들

 

 

 

타지마할 모형

 

이집트 전시관

 

유산균의 일종인 음료수 라시

 

인도의 인력거

 

하우라역의 기타 탑승자 명단

 

힌두의 수행자인 사두

맨발로 다님.

 

 

칼리사원 첨탑

 

 

칼리사원 전경

 

 

칼리사원 입구

 

 

칼리사원의 사원용품 파는 곳

 

 

향내가 자욱한 칼리사원

 

 

칼리사원앞에 있는 사랑의 선교회에서 운영하는

호스피스공간인 죽음을 기다리는 집(나르말 흐리데이)

 

 

죽음을 기다리는 집의 옥상 십자가

 

 

칼리사원의 옥상 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