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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달림의 걷기여행과 마라톤 그리고 등산

살아 가는 모습을 볼수 있는 민속촌 외암민속마을 본문

국내여행/충청도

살아 가는 모습을 볼수 있는 민속촌 외암민속마을

산달림 2018. 1. 3. 12:46

 

 

 

 

 

외갓집 같은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민속마을

우리의 선조들은 삶의 터를 잡을 때는 산과과 물, 바람 등 주변 여건을 생각하여 생활의 터전을 잡았다. 풍수는 이런 것을 고려하여 삶의 터를 잡고 주변 환경과 조화롭게 살아 간다. 외암민속마을은 중요민속문화재 제236호로 설화산 동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예안李씨 집성촌으로  전시를 위한 민속마을이 아닌 생활의 터전인 민속마을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한해를 보내면서 해돋이와 해넘이를 보려 가려고 하는데 동해는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개통된 강릉간 철도 개통으로 많이 붐빌것 같아 동해 해밎이는 접고  서해로 방향을 잡았다. 요즘은 대중과 함께 어울리면 오고가고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숙박업소도 이때다 하고 특별요금을 받기에 평소보다 휠씬 비싼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아내도 이제 나이가 든 탓에 겨울산 보다는 온천을 더  선호한다. 내가 좋다고 남도 좋아 할 거란 생각은 나만의 착각이다.

 

서울에서 가까운 1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는 온양온천과 도고온천이 있어 쉽게 찾아 갈수 있는 거리다. 그냥 온천만 하고 오기엔 아쉬움이 있어 부근 둘러볼 만한 곳을  찾다가 찾아 낸곳이 외암민속마을이다. 광덕산과 설화산 아래 고즈넉히 자리잡은 외암민속마을은 주민들의 삶의 터전으로 실제 거주하는 곳으로 마을내 소나무 숲과 장승, 솟대 그리고 초가와 한옥 돌담들이 어우러진 500년 세월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곳이다. 오랫만에 외갓집을 찾는 마음으로 찬찬히 마을을 둘러 보며 옛 고향속으로 걷는 느김은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이다.

 

 

외암 민속마을 종합 안내도

입구는 외암 민속관으로 전시 주택이 있고 나머지는 사람들이 실제 거주하는 민속마을이다.

 

 

 

 

민속관으로 가는 나무 다리인데 통행을 금하고 있다.

고즈넉한 시골 풍경이 묻어 난다.

 

 

 

외암 민속마을 매표소

요금은 어른 1인 2,000원

 

 

 

외암 민속마을에서 운영하는 겨울의 먹거리 군고구마와 군밤을 파는 트럭

 

 

 

민속관 들머리에 있는 물래방아

 

 

 

민속관으로 들어 가는 대문인 삽작

삽작은 삽작대문의 충청도  사투리.

 

 

 

장승은 경계표시나 이정표 또는 수호신으로서 우리 민족의 생활 속에 뿌리 깊게 자리해 온 민속신앙의 조형물이다. 그 기원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2천여 년의 역사를 지니며 변화하고 전승되어 온 것이다.

장승의 기원은 솟대·선돌·신목() 등과 함께 신석기·청동기 시대의 원시 신앙물로서 유목·농경 문화의 소산으로 파악된다. 일종의 수호신상으로서 씨족·부족민의 공통적 염원을 담은 제정일치 시기 지배이념의 표상으로서 기능하다가 삼국 시대 들어 중앙집권적 국가 기틀이 마련되고 불교·도교·유교 등의 통치 이데올로기가 체계화됨에 따라 불교에 습합되어 전승하게 된다.
 

 

 

외암 민속마을에서 촬영한 영화와 드라마

취화선, 태극기 휘날리며, 클레식, 소름, 꼭지, 임꺽정 등이 이곳 외암마을에서 촬영되었다.

 

 

 

돌담길로 이루어진 외암만속마을

 

 

 

양반가에 있음직한 장죽과 작은 탁자

 

 

 

반가의 솜이불

베게도 붉은 색과 파란색 계통으로 음양을 뜻한다.

 

 

 

전통혼례식장

체험프로그램으로 가족, 연인, 신혼부부들이 기념행사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릴 수 있다.

 

 

 

장독대와 겨울이면 땅에 묻는 김치독

 

 

 

다듬이 질.

그땐 그랫다. 모든 옷은 다듬이질을 했고 다리미질도 했다.

 

 

 

글읽은 선비의 일과

 

 

 

중류층 가정의 이불과 요 그리고 베게

 

 

 

중류층 가정의 장독대와 김치독은 땅에 묻어 겨울을 나곤 했다.

 

 

 

지게.

그때 그시절의 짐을 운반하던 수단은 어깨에 메는 지게.

유럽은 길을 내어 마차를 이용하였는데 우리나라는 언덕이 많고 높낮이가 크니 길을 내기 보다 지게를 사용하게 되었다

 

 

 

 

중류가정의 부엌

한쪽은 밥솥 그리고 국솥이었다.

 

 

 

서민가정의 길쌈하는 모습과 이불

 

 

 

초가삼간

초가집에 3칸짜리 집.

부엌 하나에 방2개 서민들의 삶은 그렇게 척박했었다.

 

 

 

새마을 운동하기전의 동네 모습

그땐 그랫지.

 

 

 

외암마을의 농촌체험 운영사무실

공예체험이나 민박 체험을 할 수 있다.

 

 

 

외암마을 뒤의 산들

풍수지리는 마을 뒤는 산으로 막혀 음의 기운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외암민속마을의 동네길

 

 

 

쌀을 빻고 곡식을 찢던 디딜방아

이건 양다리 디딜방아로 외다리 디딜방아도 있다.

디딜방아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네팔, 인도 등 동양권에 널리 보급되어져 있다.

 

 

반가의 집

"국태민안"  나라는 태평하고 국민이 편안하길 기원하는 입춘방 글귀

 

 

 

 

 

 

 

 

 

 

 

송화댁

송화군수를 지낸 이장현의 집으로 '송화댁'이라는 택호가 붙었다. 앞쪽의  '」'자 모양의 사랑채를 두고 뒤쪽의  'Γ' 자 모양의 안채를 두었다. 전체적으로 건물과 건물사이에 조금씩 떨어진 '口' 자  집을하고 있다.

 

 

돌담길이 어울리는 외암민속마을

 

 

 

밤새 내린 눈이 녹이 떨어지는 물망울

좀더 추우면 고드름이 얼텐데 포근한 날씨 탓에 물이 되어 떨어진다.

 

 

 

돌담길이 민속마을의 정취를 더해 준다.

 

 

 

초가집도 있고 기와집도 있고.

초가집은 2년에 한번씩 이엉을 올려 두께가 대단하다.

 

 

 

참봉댁

참봉을 지낸 연휴로 얻은 택호

이 마을에 보기 드문 '一'자 모양의 안채와 사랑채가 나란히 2열로 평행하게 배열된 '二'자 집이다.

 

 

 

엣날 고향의 집을 떠 올리게 하는 초가집

 

 

 

외암마을의 돌담길

 

 

 

외암 의간 사당

이간선생의 자는 '공거' 호는 '외암' 정조때 이조참판을 지냈고

율곡을 태두로하는 기호학파의 성리학자로 수암 문하의 강문팔학사였다.

 

 

 

살아 있는 민속박물관으로 불리는 외암마을

 

 

 

모형이 아닌 실제 거주하는 민속마을이라 더 정감이 간다.

 

 

 

오랫만에 만나는 굴다리

예전엔 이렇게 다리를 만들었다.

 

 

 

처마 아래 매달린 메주

 

 

 

새마을 운동을 하기전에는 대분분 이런 초가집에 살았다.

 

 

 

의암마을의 지켜주는 수호목

세월의 연륜이 느껴진다.

 

 

 

아담하고 포근한 의암 민속마을 전경

마치 외갓집을 다년 온듯 하다.

 

가는방법

자가용이용 : 경부고속도로 천안IC 국도 21호(21km) , 서해고속도로 : 서평택ic

대중교통 : KTX 천안아산역, 온양온천역, 아산 → 시내버스 100번(온양) - 송악면 환승센타(20분 간격)

 

 

외암민속마을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