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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여행 교동도 대룡시장과 강화 새우젓 축제 본문

국내여행/경기도

추억여행 교동도 대룡시장과 강화 새우젓 축제

산달림 2018. 10. 16. 12:07

 

 

 

 

가을은 축제의 계저이지요. 오늘은 강화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중에도 섬중의 섬 교동도로 향합니다. 입구에는 해병대 검문소를 통가하는 것도 특별한 일입니다. 예전에는 배로 건넜는데 이제 다리가 놓여져 편리 합니다.

 

강화 대룡시장 입구에서 처음 만나는 철물건재 상회입니다. 농사에서 사용하는 삽, 쇠스랑, 갈꾸리, 빗자루, 철망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고 요즘 교동도의 고구마 수확철이라 노랑호박 고구마 박스가  가지런히  전시해 놓았네요. 요즘 시세는 10kg에 2만5천원선입니다. 넉넉한 인심에 덤으로 몇개 더 얹어 줍니다. 이런데서 물건값을 깍으려 하지 말고 덤을 넉넉히 얻는게 시골농심을 이해하고 실속을 차리는 방법이 아닐까요.

 

 

 

교동도의 위치입니다.  교동도를 건너는 다리가 놓여 지기전에는 창후리 포구에서 배를 타고 건넜지요. 교동도의 주민들 대부분은 625 전쟁을 피해 황해도 연백에 온 피난민들로  곧 돌아 갈 고향을 생각하며 교동도에 살기 시작했는데 벌써 70년이 가까워 오네요. 그들의 삶의 터전으로 거래를 하던 곳이 지금의 대룡시장의 유래지요. 교동도 대룡시장을 찾아 갈때는 네비게이션에 "교동도"라 검색하시면 안되고 반드시 '교동도 대룡시장 주차장'을 검색해야 제대로 찾아 갑니다.

 

 

 

나이 60이 넘은 분은 한번 이상 신어 봤음직한 고무신입니다.  그중에도 백고무신은 좀 더비쌋고 타이어로 만들어 질긴 타이어표 검정고무신은 질기기가 황소 힘줄이지요. 그때 좀 살만한 사람들의 자녀들은 운동화란걸 신었습니다. 그 고무신을 보면 추억이 아련히 떠 오릅니다.

 

 

 

교동도의 추억여행은 옛날 교복을 빌려입고 사진을 찍는 곳입니다. 여학생 교복은 빳빳하게 풀먹인 하얀 카라가 포인트 였지요. 검정색 교복에 받여주는 교복은 다양성 보다는 획일성을 강조하던 시기였습니다. 복장 통일, 머리카락 통일. 이는 경제발전이 지상과제였던 시절에는 능율성과 효울성이 특히 강조되던 시기였죠.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기였으니 그 이상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것 같습니다.

 

 

 

 

교동다방, 지금은 스타벅스를 비롯한 외국계 커피 전문점이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만남의 장소로는 다방뿐이 었습니다. 레지라고 하여 차를 날라 주는 일을 했지요. 친구를 만나고 다방에서 만나 음식점에 가던지 술집에 가곤 했지요. 아침식사를 못하여 다방을 아침에 가면 커피잔 속에 날계란을 넣어 줬습니다. 그걸 먹으면 속이 든든하고 했지요. 여종업원인 레지는 심심한 손님의 말동무가 되어 주기도 했습니다.

 

 

 

집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팔러 나온 할머닙니다.  땅콩, 밤, 새우젖, 된장, 고추장, 식초 등 가을이라 먹거리가 즐비 합니다. 요즘 호박도 많이 나와 있었습니다. 밤은 한 됫박으로 1만원입니다. 튼실하니 맛이 좋게 빛이 났습니다.

 

 

 

서리가 내리기 전이라 고춧잎도 쌉니다. 대파고 있고 대추도 있고 어느 가게나 강화도 노란호박고구마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상품으로 2만5천원이고 큰건 1만8천원입니다. 너무 큰건 오히려 삽니다. 중간것으로 사는게 맛있는 고구마를 사는 비결이죠.

 

 

 

황세환시계방입니다. 기둥시계, 벽시계, 뻐꾹이 시계, 탁상시계 갖가지 시계가 있습니다. 공부방에는 그때 탁상시계가 있었지요. 요즘은 아침 일어나는 시간을 휴대폰에 시간을 맞추면 되지만 당시는 탁상시계로 일어날 시간을 맞추어 놓으면 따르릉 따르응 하며 종을 치면서 소리가 나지요. 그 소리를 듣고 시간을 맞추어 일어 났습니다. 당시는 아날로그시대고 이제는 디지탈시대지요. 세상이 많이도 변해 갑니다.

 

 

 

당시에는 집집마다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7남매 5남매 많은 경우는 9남내까지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이가 많으니 형이 혹은 누나가 동생을 키웠죠. 엄마가 들일과 집안일을 하느라 돌볼 시간이 턱 없이 부족했던 시절이었습니다. 형이 동생 등목을 해주고 누나가 동생 목욕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을 했지요. 그래서 그런지 그때가 더 우애가 있었던것 같습니다.

 

 

 

 

농촌개몽운동인 브나로드 운동은 동아일보의 "배우자 가르치자. 다 함께"란 운동을 하였으며 브나르드는 러시아어로 "민중속"이란 뜻이다.  심훈님의 "상록수"가 대표적인 농촌개몽 소설이기도 하지요. 그때는 일제식민지 시대로 1932년이랍니다.

 

 

 

 

빨래터의 아낙들, 여자분들이 가장 사랑받고 있는 가전제품이 "세탁기"라고 합니다. 수많은 가전제품 중에 하나만  사용하라고 한다면 고르는게 세탁기라고 합니다. 그때는 요즘 같은 세제도 없던 때 손빨래는 여인네들의 가장 힘든 노동중 하나가 빨래하는 것이었다 합니다. 지금도 인도에는 손빨래를 직업으로 하며 살아가는 직업이 있는데 도비꾼이라 하며 사회적으로 최하층 계급에 속해 있습니다.

 

 

 

어느 스레트집 처마 아래 화분이 쭈루루 늘어져 있네요. 아마 꽃을 사랑하는 어느 아주머니의 손길이 가득한 화분인듯 합니다. 파를 화분에 심어 놓았네요. 큰 화분은 채소를 키우기에 좋은것 같습니다.

 

 

 

 

순무는 쌍떡잎식물 양귀비목 겨자과의 한해살이풀 또는 두해살이풀로 아삭하고 알싸한 맛이 일푸인 순무는 일반 무와  달리 단맛이 난다고 하여 '과일의 무'란 뜻으로 순무라고 한다. 항염, 항암작용이 뛰어난 영양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새로운 슈퍼 푸드로 떠 오르고 있다.순무는 강화도가 유명하며, 강화도의 흙과 해풍, 기온은 영양가와 맛이 딱 들어맞는 최상의 순무를 만들어 냅니다.

 

 

 

교동도 고구저수지 포토존으로 보는 북한땅 연백, 이곳에서 연백은 불과 3km의 짧은 거리로 배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지만 분단 70여년에 갈수 없는 땅입니다. 고수저수지 너머 아련히 북녁땅이 보입니다.  곧 그곳으로 갈수 있는 때가 있겠지요.

 

 

 

고구 저수지는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가을날 낚시대를 드리우고 세월을 낚아도 좋을듯 합니다.

 

 

 

 

외포리로 가는 길에 창후리에 잠시 들렸다 갑니다. 창후리는 예로부터 황복마을로 유명한 곳입니다.임진강 하류에서 올라 오는 황복이 창후리에 많이 잡힌다고 합니다. 황복은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최고의 요리지요.

 

 

 

마침 썰물때라 바닷물이 빠져 나간 갯뻘에는 갈매기의 세상입니다. 갯뻘은 생태계의 보고라고 하지요. 이 뻘속에 여러가지 유기물이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다고 합니다.

 

 

 

갈매기들도 가을 햇살을 쬐며 먹이 활동을 쉬고 일광욕을 즐기고 있습니다. 조나단 리빙스턴의 '갈매기의 꿈'이란 책을 읽어 보면 다른  갈매기는 오직 먹이 활동만을 하는데 이 갈매기는 늘 좀더 높이 좀더 멀리 나는 연습을 한 갈매기를 잘 묘사 했습니다. 우리도 늘 먹고 살기에 연연하지 않고 좀더 높은 꿈 원대한 꿈을 가지고 살아도 좋을듯 합니다.

 

 

 

 

강화도 본섬과 교동도를 연결하는 다리 입니다. 저 다리가 놓여 지기전에는 이곳 창후리에서 배를 타고 건넜다고 합니다. 다리가 건설된 후로는 자연 연락선이 없어 지고 창후리는 인적이 점점 뜸해지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곳 창후리는 매년 9월 중순이되면 전국에서 모인 철각들이 이곳에서 강릉 경포대까지 308km의 한반도 횡단 울트라 마라톤을 시작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56시간내 달려야 완주를 인정 받는데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대회지요.

 

 

 

가을에는 강화도 주변이 망둥어 낚시꾼으로 장사진을 칩니다. 망둥어는 서·남해안에 분포하고 있는 연안성 물고기로서 게·갯지렁이·곤충 등을 잡아먹고 삽니다. 간조 때에는 간석지나 조수못 등에서 살며 조수가 들어옴에 따라 차차 높은 곳으로 이동하는 습성이 있고, 만조시에는 해면의 돌담·말뚝 등에 달라붙어 상반신을 수면 위에 내놓고 있다가 위험을 느끼면 간석지 위를 재빠르게 도약하면서 도망칩니다. 기름으로 튀기거나 말려서 구워 먹으면 맛이 있습니다. 즉석에서 회로도 먹고 매운탕도 맛이 있습니다.

 

 

 

바다는 그냥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탁 트리는 시원함이 있지요. 바다는 그런곳인것 같습니다.

 

 

 

다음은 외포리 새우젓  축제장을 찾았습니다.  전국에서 온 축제인파로 주차장이 가득합니다. 10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열리는데 마지막날 찾았습니다. 매년 전국 새우 생산량의 80%에 해당하는 2천400여톤의 새우가 잡혀 전남 신안군과 함께 전국 3대 새우 산지로 꼽히는 강화 새우를 토굴에서 발효시킨 강화 새우젓은 인삼, 순무등과 함께 강화지역의 대표적인 특산물 중 하나로 꼽힌다. 5월에 담은 새우젓을 오젓이라 하고 가을에 담은 새우젖은 추젓이라고 합니다. 올 김장때 쓸려고 1kg에 15,000원을 주고 2kg을 샀습니다.

 

 

 

 

새우젓 행사 축제중 맨손으로  장어 잡기를 하고 있습니다. 연령대별로 10대이하, 20 ~ 30대, 40 ~50대로  구분해서  하는데 장어가 빠르기도 하지만 미끄러워 좀체 쉽게 잡히지 않습니다. 물밖으로 떠내면 반칙이라 하니 쉽게 잡힐리 없지요. 장어 잡느라 옷이 흠씬 젖기도  합니다. 축제는 어디가나 흥겹습니다.

 

 

 

너나 남여 노소구분없이 장어잡기에 열중합니다. 하지만 쉽게 잡히지 않는 장어와의 일전입니다. 잡은 장어는 가게에 가면 구이나 회로 요리해 준답니다.

 

 

 

품바장터에서 만난 가수 명국환님. 1933년생이니 올해 85세네요. 거동이 조금 불편합니다. 그분의 대표곡으로는 널리 알려진 내고향으로 마차는 간다., 백마야 울지 마라, 아리조나 카우보이, 그리고 방랑시인 김삿갓이 있지요. 오래도록 건강하시길 소망합니다.

 

느지막히 들러 보고 돌아오는 길에 강화에 귀촌해서 살고 있는 지인댁에 전화를 했더니 마침 서울에 다녀와서 집에 계시네요. 오랫만에 막걸리 한잔 나누려고 동막해수욕장 부근에 있는 집에 들렸습니다. 논을 500평 구입해서 대형 컨테이너를 갖다 놓고 살고 계시던군요. 논은 절대농지라 집을 지을 수 없어 가설건축물로 컨테이너를 쓴다고 합니다.

 

400평의 텃밭에는 온갖 유실수와 약용식물 그리고 채소밭을 꾸며 놓았는데 초보 농사꾼답게 어수선 했습니다. 그냥 좋으면 된거지요. 멀쩡한 좋은 아파트는 서울에 그냥 두고 컨테이너에  살고 있는데 이곳이 아파트 보다 더 좋다고  합니다.

개는 5마리로 늘 반겨 주어 좋고 쥐가 있어 새로  고양이도 2마리 새로 키운다고 합니다. 나이들면 애완동물에게 힐링 받는 일이 많은것 같습니다. 막걸리 마시며 지난날 마라톤 이야기로 꽃을 피우다 왔습니다. 가끔 막걸리 생각나면 함 들려 봐야 겠습니다. 그게 아는 사람이 있어 좋은게 아닐까요.

 

 

 

외포리와 석모도를 연결해 주는 연락선입니다. 차량도  가득 싣고 운행하는데 석모도에는 보문사란 우명한 절이 있지요 기도발이 잘 받는다 하여 기도처를 찾는 분들이 많이 찾곤 합니다. 그런데 기도는 본시 "뭘 해주십시요." 하는 기도 보다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란 감사 기도를 해야 마음이 편안해 지는게 아닐까요.

 

 

교동도 대룡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