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산달림의 걷기여행과 마라톤 그리고 등산

강진 다산초당 본문

국내여행

강진 다산초당

산달림 2014. 5. 12. 14:29

 

 

 

다산초당앞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청산도이지만 워낙 거리가 멀어 가는 길에

내변산 그리고 고창지역을 들려 하루를 쉬고 완도로 향하는 길에 다산초당에 들렸다.

 

다산은 정약용의 호로 실학 사상가로 유명한 다산은

수원 화성축조시 거중기를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다산 정약용은 유형원· 이익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여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했다.

 실용지학· 이용후생을 주장하면서 주자 성리학의 공리공담을 배격하고

봉건제도의 각종 폐해를 개혁하려는 진보적인 사회개혁안을 제시했다.

 

본관은 나주(羅州). 자호는 다산(茶山) 아버지는 진주목사이며,

어머니는 해남윤씨로 경기도 광주시 초부면에서 태어났다.

 

다산의 생애와 학문과정은 순조 1년 신유사옥에 따른 유배를 전후로 크게 두 시기로 구분되며

 그의 사회개혁사상 역시 이에 대응되어 나타난다.

 

다산초당으로 가는 자작나무 숲길

바닥은 이지방이 청자로 유명하듯 황토흙으로 바닥을 듬.

 

자작나무 숲길을 지나 다산초당으로 가는 작은 언덕길

 

다산 초당입구 기념품 판매 및 전통찻집

 

다산 초당과 백년사가는 길

 

뿌리의 길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산길 / 지상에 들어낸 소나무 뿌리들

무심코  힘껏 밟고 가다가 알았다. / 지하에 있는 뿌리가

더러는 슬픈 가운데 눈물을 달고 / 지상으로 힘껏 뿌리를 뻗는다는 것을

 

다산 초당으로 올라가는 길의 뿌리

 

다산초당으로 오르는 돌계단

 

다산초당의 왼쪽에 있는 서암

서암은 다산의 제자 18명이 숙박하면서 다산과 밤이 늦도록

학문을 탐구한다는 뜻으로 다성각이라고도 함.

 

다산초당

다산초당을 다산이 제자를 가르치고 책을 썻던 곳으로

지금은 기와로 되어 있지만 본시 초당에서 알수 있듯이

원래는 초가였다고 한다. 

 

기와로 된 다산 초당

 

다산초당 현판과

다산 영정

 

다산 초당옆에 있는 약천

 

 

서암의 반대편에 있는 동암

다산이 저술한 2천여권의 책을 갖추고

기거하며 손님을 맞았던 곳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으며

목민심서를 이곳 동암에서 완성하였다고 함.

 

천일각, 천일각에서 바라보는 강진앞바다가 아름답게 보이는 전망 좋은 곳.

천일각은 "하늘끝 한모퉁이"라는 뜻의 천애일각을 줄인 말.

 

천일각 앞의 소나무

 

다산초당의 안내글

 

정석바위

다산초당 옆에 있는 정석바위의 글은

다산이 직접 새긴 글이라고 함.

 

다산 정약용 말씀의 숲

 

다산기념관앞의 소나무 햇순

 

다산 정약용의 동상

 

육십년 세월 잠깐사이 흘렀네.

복숭아 곱게피던 봄철이 신혼같구나

생이별이나 사별은 모두 늙음을 재촉하는 것.

슬픈 세월 짧았고 기쁜세월 긴것은

임금의 은혜로다.

결혼하던 이날밤 사랑얘기 다시 좋고

 

지난 유배시절 아내의 치마폭엔 눈물자국 번졌는데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것은 우리들의 참모습

바가지 두쪽이나 자손에게 남겨 줌세.

 

『다산이 죽기 3일전에 남긴 유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