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달림의 걷기여행과 마라톤 그리고 등산
12년만에 다시 찾은 청남대 울트라마라톤 본문
청남대 울트라마라톤대회를 2011년에 달리고 다시 찾았으니 12년 만이다. 청남대울트라마라톤 대회는 올해로 19회를 맞이하며 코로나로 중단되기도 했지만 2002년 연습주가 있었고 2003년 1회 대회가 열리고 올해 19번째로 그간 많은 울트라 대회가 명맥을 이어 오지 못하고 사라지는 대회가 많지만 청남대 대회는 꾸준히이어 오는 몇 안 되는 대회다. 무병장수의 상징인 십장생 주석판에 한해 한 개씩 순금으로 장식하는 스토리가 있는 대회다. 십장생은 오래 산다고 믿어 오는 해, 산, 물, 돌, 구름, 소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이다. 이 대회에 참가를 하면 최소 10년을 달려야 완성이 되는 특색 있는 대회다. 참가자 규모도 올해는 600여 명으로 대회명성에 걸맞은 명품대회다.
대회준비는 서울국제마라톤을 끝내고 백두대간팀과 백봉령에서 댓재까지 무박 산행 13시간으로 어둠과 잠에 대비한 훈련을 하고 대회전에 경기옛길 중 강화길 52km와 귀가주 10km를 포함해 62km를 달리면서 일전을 준비했다. 대회전까지는 전국적인 고온현상으로 평년에 비해 10일 일찍 벚꽃이 피어 여의도 벚꽃축제 개막 전에 벚꽃이 만개하였고 개막 당일에는 파란 잎이 나오고 다음날 비가 내려 벚꽃이 실종되었다. 하지만 대회전날 다시 꽃샘 추위가 찾아와 최저기온 3도에 바람이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권이 예상되는 날씨다.
서울에서 대회장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있어 편히 대회장에 여유 있게 도착했다. 전국에서 찾아온 울트라마니아들과 봄날 청남대를 찾은 행락객으로 대회장은 잔칫날 같다. 식당 운영을 해주어 든든히 식사를 하고 출발준비를 했다. 복장은 각기 본인의 몸의 특성에 따라 숏팬츠부터 츄리닝까지 다양하다. 비교적 추위를 많아 타는 체질이라 롱타이즈에 두꺼운 상의에 별도로 바람막이에 장갑까지 챙겼다. 호수 주변 산중에는 새벽에 기온이 많이 내려간다. 그때 체력이 있어 달리면 체온유지가 되지만 달리지 못하고 걷게 되면 보온이 필요하다.
출발시간이 다가 오니 전국에서 찾아 온 울트라전사들이 속속 청남대 본관 앞 잔디광장으로 모여든다. 식전행사가 열리고 정각 4시에 출발이다. 초창기 청남대코스는 신탄진, 대전 쪽으로 대청호를 감싸고 돌아 피발령을 넘었지만 늘어나는 교통량으로 안전사고를 우려하여 비교적 한적한 옥천, 보은 쪽으로 돌아 피반령을 넘는 코스로 변경되었고 산간 지방이라 고저차가 심해졌다.
정각 오후 4시에 250리 길을 달리는 레이스의 출발이다. 주말을 맞이하여 청남대를 찾는 차량을 피해 갓길로 1열로 달려 청남대를 달려 나오다 회남방향으로 오르막길을 올라간다. 1km당 6분 페이스로 달리고 있는 게 좀 빠르다는 생각이지만 힘들다는 느낌이 없어 그리 달렸다. 젊은이들은 가벼운 복장으로 얇은 타이즈나 숏팬트차림으로 달리고 있다. 피가 펄펄 끓을 나이다.
서울의 벚꽃은 지고 잎이 돋고 있지만 남쪽인 여기는 아직 벚꽃이 남아 있다. 벚꽃 개화는 위도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그 지역의 특성에도 관계가 된다. 대청호 주변은 기온이 낮으니 개화 시기가 늦다. 눈이 즐거운 벚꽃길을 달리는 길이 청남대 울트라 마라톤이다.
11km 지점에서 첫 Cp가 있다. 잠시나마 여유 있게 바나나 1개를 먹고 페이스를 유지했다. 달리면서 기다는 것은 다음 Cp다. 그곳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으로 먹을 게 있고 반겨 주는 이가 있는 곳이다. 2cp 가기 전에는 290m의 염티고개가 있다. 고갯마루 중단부터 걷는다. 기를 쓰고 달리면 달려 넘을 수가 있겠지만 후반을 위해 체력을 아껴야 한다. 걷는 시간이 휴식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내리막은 가볍게 달린다. 22km 지점인 남대문교 공원에 두 번째 Cp가 있다. 그새 출출해 큰 구슬 같은 꿀떡을 몇 개 집어 먹고 다시 달린다. 이번 만나는 고개는 310m 구름재다. 이 구간은 충청도 속의 강원도를 느끼는 산골 중에 산골이다. 꼬부랑길을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어 올라간다. 외국인 참가자와 함께 올랐다. 그는 가능하면 뛰려고 종종걸음으로 뛴다. 마라톤은 달리는 경기다. 그러나 울트라마라톤은 전구간을 달려가는 이는 선두권분의 몇몇 분 뿐이다. 울트라마라톤을 뛰는 주축이 50대다. 체력적으로는 한 물간 분들로 완주할 수 있는 이유는 끈기 있게 버티는 힘 있다. 구름재를 내려오는 길에서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온다. 이제 랜턴을 켜고 달려야 한다. 배낭 뒤는 깜빡이를 켜고 이마에는 랜턴을 켜고 달린다. 어두운 길을 랜턴이 비춰주는 길만 보고 달린다.
답압 3교 앞 38km Cp는 멀리서 보아도 불이 환하게 켜져 있어 멀리서도 Cp임을 알 수 있다. 벌써 입맛이 떨어져 초고파이는 먹기 싫어 바나나만 챙겨 먹고 출발했다. 다음 Cp는 13km를 더 달려 51km 지점에 있다. 이곳은 중간 체크포인트로 24시 자정인 출발 후 8시간 내에 도착하지 못하면 컷 오프 탈락하게 된다. 앞서 달리는 깜빡이 불을 보고 달린다. 당진영덕 고속도로를 아래로 지나면 차정사거리 개성휴게소 앞이 51.4km로 Cp다. 배번에다 통과했을 표시는 스탬프를 꽝 찍어 준다. 이곳에서는 식사로 쇠고기고기 미역국을 먹을 수 있다. 밤기온이 뚝 떨어져 중앙에 모닥불을 크게 피워 놓았다. 땀이 식으면 금방 추위를 느꼈다. 미역국을 받아 들었지만 영 입맛이 없다. 울트라 마라톤은 먹는 만큼 뛴다. 먹지 못하면 뛰지 못한다. 조금씩 꼭꼭 씹어 먹었다. 갑자기 밀려오는 한기에 모닥불을 쬐며 몸을 데운 후에 출발했다.
밤 10경 도착했으니 남은 10시간 내에 49km를 달리면 되니 산술적 시간으로는 여유가 있지만 몸은 최악의 상태로 가고 있다. 몸이 힘드면 포기란 단어를 떠올리곤 한다. 이전까지만 해도 모든 마라톤은 달려야지 걸으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100km를 달리는데 16시간이란 제한시간을 그리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이제 나이가 들고 중 후미 주자와 함께 달려 보니 울트라 마라톤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언덕이 나오면 걷고 내리막이나 평지는 걷는 방식으로 완주를 하고 있었다. 풀코스 마라톤과는 다른 의미의 달리기가 울트라마라톤이기도 하다.
일단 가는데 까지 가보기로 하고 걷뛰를 했다. 다음 Cp는 적음 3거리 64km 지점 Cp다. 램블러 앱으로 거리를 확인하며 달리니 길을 잃을 없는 게 마음 든든하고 매 1km마다 통과 거리를 알려 주니 큰 힘이 된다. 대회본부에서 갈림길에는 깜빡이를 켜고 방향을 안내하지만 미쳐 확인을 못하고 갈림길에서 직진하는 주자가 있다. 대안 3거리에서 우회전을 해야 하는데 직진을 한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앱을 꺼내 확인을 하니 직진을 하면 알바를 하게 된다. '그쪽으로 가면 안 돼요.' 급히 불러 함께 달렸다. 그 사이에 몇 분은 벌써 지나갔다고 한다. 이 시간에 알바는 치명적이다.
삼거리 길을 통과할 때 보은마라톤클럽에서 생각하지 못한 자봉을 만났다. 밤 날씨도 차가운데 시원한 배와 따뜻한 물과 커피를 제공했다. 속이 편하지 못해 배만 몇 조각 먹고 온수만 2컵 마셨다. 따뜻한 정에 취하고 따뜻한 물에 마음을 다잡아 본다. 자봉 하시는 분 중에 동성이 있어 본을 물어 보신다. 진장환 씨도 알고 있고 언제 보은에 오면 연락하라 한다. 우리는 모두 같은 점 찾기를 한다.
적음 3거리 Cp에서 따뜻한 물만 2컵 마셨는데 속이 울렁 거린다. 얼마 뛰지 못하고 토하고 나니 손이 좀 나아지는 것 같다. 배낭에 먹을 게 있어도 몸이 받아 주지 못하니 안타깝다. 24 시간주에서도 후반에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내 몸은 내가 잘 알지만 끝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달려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아직은 힘이 있어 평지와 내리막은 달리고 오르막은 걸었다. 그런데 밤 벚꽃은 흐르러 지게 피어 아름답지만 내 몸이 편하지 않으니 아름다운 벚꽃도 그리 곱게 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고석삼거리는 가끔 회인에 사시는 누님댁에 오면 아침에 피반령으로 달릴 때 지나는 코스라 눈에 익은 길이다. 몸이 힘드니 완주가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에 다시 마음이 약해진다. 전화해서 차 가지고 오라는 말이 입가 맴돌지만 '포기는 없다.'라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고석 3거리 Cp에서 식은 물만 한 컵 마시고 이제 피반령을 넘는다. 이번 코스 중에 가장 높은 360m의 고개다. 걷뛰로 고개 입구까지 달리고 걸었다. 굽이굽이 고갯길에 앞에 가는 깜빡이 불도 뒤에 오는 깜빡이 불도 모두 달리기의 도반으로 힘이 된다. 혼자였다면 벌써 포기했겠지만 추위에 일회용 비닐 우의를 입고 걷뛰를 하는 분을 보며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아 본다.
좀 더 힘을 주면 속이 더 울렁거려 도로 한켠의 휀스를 잡고 토하고 나니 속이 좀 편하다. 피반령 정상을 올라서니 겨울 같은 한기가 맞아주니 서둘러 내려섰다. 그때부터 몸이 떨려 오고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진다. 쏟아지는 잠에는 항우 장사도 들지 못한다는 눈꺼풀은 그리도 무겁게 내려 온다. 애써 떨쳐보지만 잠은 더욱더 쏟아져 걸으면 더 잠이 와 억지로 달린다. 힘써 달리면 다시 속이 울렁거린다. 생고생이 따로 없다.
잠이 너무 쏟아져 피반령 내리막 고개가 끝날 무렵 버스 정류장 의자에서 잠시 누워서 깜빡 잠이라도 자고 가야겠다. 그러나 막상 누우면 잠은 오지 않고 춥기만 춥다. 이러다가 체온이 떨어지면 저체온증으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다시 길에 섰다. 86km 마지막 Cp인 인차 3거리다.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아니 도움을 받을 게 없다. 물도 마시면 토하는데 어떤 것도 몸이 받아 주지 않는다. 몸이 스스로 회복되기만을 기다려야 하지만 달리니 회복은 커녕 최악의 몸상태로 향한다.
86km를 지나서 90km를 지나니 이제야 훤히 밝아 온다. 남은 거리 10km로 평소 같으면 늦어도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언제 마라톤을 달리면서 컷오프 시간을 걱정했나 싶다. 청남대 들어가는 10km 길이 무척 멀게 느껴진다. 아침 운동을 나온 달림이들이 힘찬 몸짓으로 달려 간다. 오름내림이 있지만 내림이 더 많다. 그 10km의 끝이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먼 거리로 다가온다. 대청댐의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아침 안개가 곱다는 느낌을 즐길 여유도 없이 막판에 쫓겨 달리는 삼삼오오 주자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린다.
예전에 24 시간주를 달리고 나눈 말 중에 다시 "24 시간주 달리시겠습니까?" 하고 제주에서 온 여성분에게 물었다. 그분 대답이 "아기를 금방 낳은 임산부에게 아기를 다시 낳을 거냐요 묻는 말고 똑같네요." 여성들이 가장 힘든 일을 산고로 비유하면 남자들은 곧잘 "군대"를 꺼낸다. 모두 힘들일이다. 하지만 다 보람 있는 일이다. 누구나 달릴 수는 있지만 누구나 완주를 할 수 있는 울트라마라톤은 아니다. 그간 달려본 울트라 마라톤을 이번에는 너무 가볍게 본 것이다. 이제 그 시절 나이가 아니니 몸의 변화를 인정했어야 했다. 늘 마음은 청춘인데 몸은 70고개를 바라본다. 좀 더 겸허히 울트라마라톤을 바라 봐야겠다.
아울러 세상을 대하는 마음도 함께 변해 가야 한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도 남의 입장에서 보면 틀릴 수도 있다. 굳이 맞다고 우기기 전에 그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배려하는 마음도 필요하다. 나에게는 동쪽에 있는 산이 동산이지만 서쪽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서산이다. 같은 사물이라도 어디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 다름을 헤아려 주어야 한다. 세상사 맞고 틀림이 어디 있겠나 다를 뿐이다. 그런 세상의 이치를 울트라마라톤을 달리면서 배워간다.
거리가 99km를 지나니 두 자리 숫자에서 세 자릿수로 바뀐다. 램블러 앱도 밤새도록 수고를 했다. 빨간 카펫이 깔려 있고 제19회 청남대 울트라마라톤 피니쉬 아치가 보인다. 빨간 라바콘을 두줄로 진입로를 나란히 놓았다. 그 길을 달려 100.5km 청남대 울트라 마라톤의 결승선을 통과했다. 컷오프 시간을 44분 남겨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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