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달림의 걷기여행과 마라톤 그리고 등산
제8회 해피레그 울트라 마라톤 50km 고행 본문
해마다 7월 중순에 한강에서는 '한 여름 멋진 밤' 해피 레그 울트라마라톤 50km 대회가 열린다. 7월 15일에 열릴 대회가 집중 호우로 한강 수위가 상승하여 잠수교가 침수되어 연중 가장 더운 중복가 말복사이에 열렸다. 이 대회가 의미 있는 것은 시각장애 마라토너들과 함께 달린다는 어울림의 대회이다.
전국적 폭염은 대회일 한양대역에서 살곶이공원으로 가는 짧은 길에서 티셔츠가 땀으로 촉촉히 젖어 온다. 전국에서 모여든 달림이들이 한분 두 분 모여들어 인사를 나눈다. 요즘 마라톤 모임은 지역별 모임과 12 지간인 띠별 모임이 활성화되었다. 같은 해 태어났다고 전국적 모임을 갖고 친목을 도모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밤 11시 출발시간에 맞추어 차분히 준비를 해 본다. 서버이벌 대회로 25km 반환점에서 수박화채를 제공하는 것 외에는 주최측에서는 급수 제공이 없다. 당연히 배낭을 착용하고 달려야 하지만 중간중간에는 마라톤 클럽에서 무료 급수를 제공한다는 소식에 배낭을 두고 작은 물병하나만 챙겨 출발선에 섰다. 29도의 기온에 습도가 73%로 찜질방에 있는 느낌이다.
거리는 50km지만 급수나 기온을 생각하면 풀코스 달리듯 달릴 수는 없다. 대열의 중간 앞에서 서서히 출발이다. 2차선 자전거 도로가 꽉 찬다. 가장 편한 속도로 맞추어 본다. 530 정도의 속도다. 몇몇 주자는 서둘러 달리지만 대부분 페이스를 늦추고 있다. 7km쯤 달리면 잠수교를 넘는다. 1km가 넘는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지만 바람 한점 없다. 잠수교 언덕 위에서 밤새 사진 찍고 있는 분이 계신다. 추억을 남겨주는 아름다운 봉사다.
반달 출발지를 지나 직선주로를 달리는데 애주가클럽의 권*현 님이 어둠 속에서도 용케 알아보고 이름을 부른다. 초창기 울트라 마라톤을 같이 시작한 분인데 대부분 주로에 나오시지 않지만 자기 관리를 잘하시는 분이라 전국 100km 울트라 마라톤에 참가하고 기록도 상위 10% 내에 든다. 페이스를 조절하시는지 천천히 뛰어 함께하니 먼저 가라고 등을 떠민다. 아직은 여유가 있어 앞서 달렸다.
성수대교를 지나고 잠실로 접어 드니 17km쯤에 우리마라톤 클럽에서 꿀물, 이온음료, 보리차, 생수, 콜라 등을 잘 준비해 무료봉사를 하고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잠실대교 아래도 이온음료와 생수를 준비하고 있다. 바나나 반 개를 먹고 헛헛한 뱃속을 채웠다. 속도는 낼 수 없었지만 달리는 데는 그럭저럭 달릴만하다. 습하고 무더운 날씨라 땀은 출발하고 5km 이후부터 줄줄 흘러 다리를 타고 내린다. 앞서가는 분의 다리를 봐도 땀은 물 흐르듯 다리를 타고 흐른다. 오늘은 땀과의 일전이다.
올림픽대교를 지날 때쯤 벌써 선두는 25km 반환점을 돌아 자전거를 앞세우고 달려 오고 있다. 문득 23년 전의 40대 때 나의 모습이 생각난다. 서울 100km 울마에서 한때는 그리 달려 보았다. 삶은 흘러가는 거지 머무를 수 없는 거다. 지금도 이리 달릴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21km 천호대교를 지나니 반환점이 가깝다. 달림이는 출발 때는 반환점을 목표로 달리고 반환점을 돌면 결승선을 생각하며 달린다. 줄줄이 이어 오는 반환점을 돌아오는 주자를 마주 한다. 강동마라톤 클럽에서도 급수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반환점인 25km 지점에는 대회본부에서 얼음을 띄운 수박 화채를 준비했다. 달달하고 시원한 화채를 두 컵이나 마셨다. 세상에서 가장 맛난 수박화채다. 힘든 주자 몇 분은 엉덩이를 땅이 붙이고 쉬었다 간다. 남은 25km 거리는 오롯이 내가 가야 할 길이기에 미련 없이 달려간다. 반환점으로 향하는 주자를 보며 달리다 보면 금세 천호대교다. 여기서 다시 이온음료를 마셔주고 다시 각오를 다진다.
올림픽 대교를 지나 올때도 후미주자는 반환점으로 달려간다. 32km를 지나서 다시 만난 우리 마라톤 클럽 급수대에서 연거푸 꿀물 2잔을 마셔 주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탄천을 건널 때쯤부터 몸이 무거워 온다. 아직 갈길이 18km나 남았는데 체력적 부담이 온다.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에다 땀을 많이 흘리면 맥을 못 추는 소음인 체질이니 걷지는 말고 완주하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아 본다.
한강길에는 여의도를 출발하여 잠실대교를 돌아 오는 한강 나이트 워크 42km 걷기 꾼들이 달빛아래에 걷고 있다. 걷기꾼도 11시간의 제한시간이 있단다. 출발도 동시에 하는 게 아니라 매시간 별로 출발하고 중간중간에 빵과 생수도 공급해 준다. 연령도 다양해 2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다양하다. 참가자가 어찌나 많은지 그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 진다. 밤을 새워가며 걷는다는 것도 쉽지 않겠다 싶지만 여유가 있다.
끊임없이 흘러 내리는 땀에 체력이 점점 떨어지는데 갈 때 마셨던 잠원지구 급수대가 없어졌다. 그걸 기대하고 달려왔는데 낭패다. 처음으로 수돗가에 달려가 머리를 식혔다. 더운 날씨 탓에 물도 미지근하니 데운 물 같다. 그래도 달려야 한다. 걷지만 말고 달리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리던 주자들은 이제 드문드문 보인다. 걷뛰를 하는 주자들을 앞서 달리면 걸었다가 앞서가고 다시 쳐졌다가 앞서 가길 반복한다. 모두가 처절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
잠수교 초입에 교통통제하는 여성분에게 '혹시 물 좀 있나요?' 했더니 가방속에서 커피를 꺼내 준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한잔 마시고 잠수교를 넘었다. 이제 남은 거리 8km다. 다행히 잠수교 북단에서 이온음료를 한잔 받아 들고 조금씩 마시면서 달렸다. 체력이 고갈된 상태라 이온음료도 몸이 쉽게 받아 주지 않을 만큼 체력이 떨어졌다. 성내천 건널 때부터 앞서거니 뒤서거거니 뛰던 대천에서 왔다는 43살의 젊은 친구와 함께 달렸다.
어르신이라 하면서 따라 왔고 꾸준히 달리면 그는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간 졸려서 제대로 달릴 수가 없었단다. 그것도 다 체력이고 실력이라 알려 줬다. 이 길은 예전 반달에서 수없이 달려 본 길이기에 아는 길을 달리는 건 편하다. 지금 바램은 걷지 않고 달리는 것이다.
용비교까지 올라 오면 살곶이체육공원이 코앞이다. 지방에서 올라왔다는 여성분이 길을 잘 모르겠다고 한다. 따라오라 하고 앞서 달렸다. 마지막은 어디에 힘이 남았는지 다리에 힘이 전해 진다. 결승선에서 사진 촬영이 있다고 한 사람씩 들어 가라 한다. 먼저 앞서 달리고 뒤에 두 분이 따라온다. 살곶이체육공원을 가로질러 빨간 긴 카펫이 깔려 있다. 사진 찍기 좋게 천천히 달려 50km 길을 완주했다. 00에서 시작한 시계는 5시간 26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무더위에 50km 긴 거리도 끝은 있었다. 걷지 않고 끝까지 완주한 것에 의미를 둬야겠다. 생전 처음으로 이런 무더위에 달려 보았다. 혹서기 서울마라톤도 오늘 만큼은 덥지 않았던 것 같다. 온도보다 습도가 높아 힘들었던 대회였다. 마라톤이라는 게 늘 날씨가 변수다. 이 또한 넘어야 할 산이지만 그 산이 오늘은 유난히 높았다. 이번대회에 돋보인 것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각 클럽에서 달림이들을 위해 밤새 급수대를 운영해 준 이름 모을 천사들이 있어 그나마 완주할 수 있었다.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다. 한여름 멋진 밤의 아름다운 추억 하나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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