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달림의 걷기여행과 마라톤 그리고 등산
북한산 설경과 최고의 상고대 본문
올 겨울엔 설악산 눈산행을 계획하였다가 연이은 폭설로 대피소 예약이 취소되어 눈꽃산행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마침 느지막이 서울에도 폭설이 내려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고 아침 달리기를 하고 배낭을 챙겨 북한산성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전철 밖으로 보는 풍경이 온통 설국이라 눈꽃 산행이 기대된다.
구파발역에서 북한산성으로 가는 버스에는 산객으로 가득하다. 갑자기 내린 눈이지만 눈을 보고 북한산의 설경을 생각하며 길을 나선 산객들이 많다. 이런 걸 이심전심이라 하나. 북한산성 입구에는 국공에서 폭설로 역사관 이후 통제란 안내 표지판이 있다. 반신반의하며 길을 오르니 설국이 따로 없고 여기가 겨울왕국이다.
눈은 만나러 오르는 산객이 꼬리를 문다. 그간 북한산을 다녀지만 지금처럼 겨울 북한산에서 이런 눈을 만나긴 처이다. 발목이 잠기도록 눈이 내려 눈 풍년이다. 눈이 풍년이 이면 그해는 풍년이 든다는 옛 어르신의 말씀이 떠 오른다. 올해도 풍년을 소망해 본다.
선봉사 앞을 오를 때쯤 된비알에 힘들게 눈을 치우는 노스님을 만났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넉가래를 들고 같이 눈 치우기를 했다. 작은 암자라 비구승 두 분만 계시는 작은 절이다. 암자를 찾아오는 신도들의 차가 오는데 불편하지 않게 찾아오고 등산객도 미끄러지지 않게 눈을 치우신단다. 올해 여든이 되신 노비구스님은 아직도 근력이 짱짱하시다.
군시절에 제설작업을 해보고 오랜만에 잡아 보는 넉가래다. 눈이 습설이라 잘 밀리지도 않고 눈의 무게가 만만찮다. 새벽 6시부터 눈을 치웠다는데 아직 절반도 못했다. 시간부자인데 힘 좀 쓰고 가도 좋겠다. 선봉사로 오르는 눈을 치우고 북한동 역사관 앞에 있는 새마을교까지 눈을 치워야 한단다.
넉가래 부러지지 않게 조심하란 말씀을 듣고 "네."하고 대답은 했지만 눈을 밀 때는 부러지지 않지만 눈을 들 때는 힘이 가해지니 '뚝'하고 부러져다. '거봐' 하신다. 자루가 부러져 자루가 짧은 넉가래는 노스님에 드리고 바꿔서 미니 힘쓰는 데는 그래도 내가 낫다. 쌀쌀한 기온에도 눈 치우는 게 힘이 들어 땀으로 온몸이 젖는다. 오랜만에 운동다운 운동을 했다.
가끔 산객이 도와준다고 10여분 해보곤 힘들다고 관둔다. 보기보다 힘든 게 눈 치우기 작업이다. 기왕 시작한 것 끝장은 보고 가야겠다. 다리 위까지 제설작업을 하고 보니 2시간이 걸렸다. 오랜만에 힘 제대로 써 봤다. 스님이 수고했다고 점심으로 라면을 끓어 주시고 드립커피 한잔도 내려 주시며 산청곶감도 주셨다. 제대로 대접받고 나오니 다음에 지나는 길에 들르라며 전화번호까지 남겨주신다. 복 많이 지었다고 합장까지 해주시니 내 마음이 흐뭇하다.
중성문은 북한산성을 찾은 숙종이 길이 너무 평탄해 성문 하나를 더 짓도록 지시하여 중성문은 그렇게 태어났다. 태고사를 가는 길에 눈 속에 강아지들이 7~ 8마리가 떼로 모여있다. 들개로 산객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오히려 졸졸 따라다니며 먹을 것을 달라고 한다. 눈이 내려 먹을 게 없나 보다. 지나던 산객이 새우깡을 주니 맛있게 받아먹는다.
지나 중흥사를 지나서 북한산 대피소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섰다. 예전에는 이곳이 북한산 야영장으로 사용되던 곳으로 쉼터가 되었다. 이곳부터 북한산성을 따라 걷는 길로 산바람이 불어 기온이 떨어지니 소나무에 상고대가 환상적이다. 북한산에서 이런 상고대를 만나다니 행운이다. 마치 바닷속 산호군락을 만난 것 같다.
용암문을 지나 위문으로 가는 길은 만경대 북측이라 눈꽃이 더 굵게 많이 뭉쳐 겨울의 진수를 보여 준다. 노적봉 앞을 지나 봉암문 가는 길은 최상의 눈꽃이 폈다. 폭설로 백운대 오르는 길은 국공에서 출입통제 표시가 되어 아쉬움이 남는다. 안전을 위하여 하는 일이니 이해하고 백운산장으로 내려가는 길도 겨울왕국이다.
인적이 뜸한 백운산장은 까마귀들이 노랫소리만 까악 까악 ~ 울려 퍼진다. 눈이 날리는 북한산도 오늘은 설악산 만한 정취와 풍경이다. 늘 가까이 있어 소중한 줄 모르고 지나치곤 했는데 이제는 좀 더 가까이해도 좋겠다. 인수사를 지나 하루재로 내려오면서 바라본 대한민국 최고의 암장인 인수봉은 오늘도 그 자리를 꿋꿋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때는 바위에 빠져 한해 서너 번씩 오르곤 했는데 이젠 안녕이다.
도선사까지 내려와도 설국 북한산 풍경은 그대로다. 우이동까지 눈꽃을 즐기며 여유 있는 걸음으로 끝까지 눈꽃산행을 했다. 올겨울은 북한산의 설경을 제대로 즐기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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