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달림의 걷기여행과 마라톤 그리고 등산
지리산둘레길 15구간 법하에서 19구간 산동마을(2) 본문
지리산 둘레길 안내표지판
검은색 방향은 반시계방향 빨강색 방향은 시계방향
방광마을 ~ 산동면사무소 구간 안내 지도
방광마을 ~ 탑동마을 고저도 최정상이 구리재500m가 넘나요?
난동마을에서 구리재까지는 고도를 높여야 함.
전통한옥 민박마을을 지나니 곡전재 가는 길이 있는데 갈길이 바빠 지나치고,
연꽃이 곱게 핀 “차 시음판매장”을 지나자 만나는 19번 도로변에 있는 올갱이 해장국집에서 이른 점심시간이지만 아침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에 시장하기 전에 미리 올갱이 해장국으로 식사를 해 두는게 집 떠난 여행자의 수칙이 아니겠는가?
식사를 하면서 우리쌀 파스테르막걸리인 “순희”도 한통 주문해 먹고 마시고 나니 속이 다 든든하다.
하사마을을 지나는데 주변의 농촌집들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상사마을을 지나(10:58) 지리산탐방안내소까지는 잘 정비된 시멘트길이라 좀 빠른 속도 진행하여 지리산남부탐방안내소가 있는 황전마을까지 달려가니 입구에 음수대를 설치해 놓았는데 수도꼭지를 빨고 얼굴에 땀만 헹구고 화엄사입구를 통과.
이제 길은 다시 지리산 자락으로 올라간다. 더운 날씨에 땀이 등을 타고 사타구니로 흘러 내려 뛸 때마다 쓰려오는 고통.
이길은 둘레길의 전형처럼 소나무숲 사이길로 간혹 화엄사입구에서 숙소를 잡고 산책 삼아 나들이 나온 여행자들이 더러 보인다.
한낮으로 가는 시간에 후끈한 지열을 받으며 크로스컨트리로 달리니 금새 시원한 샘물이 있다는 수한마을(12:26)에 도착 샘터에서 시원한 샘물을 배불리 마시고,
수한마을 동네들 통과하여 달려 나오니 천은사로 올라가는 길과 만나고 둘레길은 방광마을로 이어진다.
방광마을은 옛전통이 잘 보존된 마을로 어릴적 본 정미소가 그대로 있고 돌담이 옛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큰 느티나무 아래 더위를 피하는 정자가 있고 그곳에는 동네 노인 몇분이 오수를 즐기고 계신다.(12:38)
당동마을을 지나니 전원주택단지 같이 조성되어 있는데 겔러리도 있네. 여기가 화가들만 모여 산다는 화가마을(13:36).
난동마을을 지나자 지리산 생태숲 안내도가 기다린다. 생태숲길은 뭐고 둘레길은 뭔가? 오늘 둘레길에서 알바를 많이 한다.
그리고 나타나는 시멘트 임도길 오후 두시가 가까워 오는 시간에 한점 그늘도 없는 구리재까지 임도길을 구절양장같이 구비구비 오르는 최악의 시간.
다리도 많이 지쳐 급 오르막을 뛸 수도 없고 가파른 오르막은 걸어도 호흡이 거칠기만 하다.
고행의 길인 땡볕을 걷고 걸어 구리재에는 14:37에 도착.
여기서 다시 3.5km의 시멘트길도 있고 흙길도 있는 임도길을 달려 훅훅 열기가 올라 오는 탑동마을에는 15:08 도착.
탑동앞에는 마침 지리산온천의 입구라 식당이 있어 시장하던 차에
왕갈비탕으로 늦은 점심식사를 하는데 이곳이 산수유로 유명한 곳이라 산수유막걸리도 있다. 식당에서 내오는 반찬이 깔끔하고 맛깔스러운데다 친절 또한 더하여 다시 찾고 싶은 식당이다.
효동마을로 진행하는데 덥기도 덥고 금방 식사를 한 후라 배가 불러 달리기도 귀찮다. 소화도 시킬겸 천천히 걷는데 점점 피곤함을 느낀다.
효동마을을 지나 한참을 가도 둘레길이 아닌듯하여 되돌아 오면서 현지인을
만나 길을 확인해도 둘레길은 관심밖으로 우리는 그런 것 모른단다.
괜히 더운데 왔다리 갔다리 했더니 몸도 마음도 더 피곤해 진다.
좀더 둘레길 표지목도 세우고 바닥에 페인트 표시를 해두면 둘레길 여행자들이 좀더 편리하게 여행을 할듯.
기를 쓰고 달리니 달리는 속도가 걷는듯 달리는 듯 자꾸만 지쳐가고, 다리에 영 힘이 실리지 않는다. 산동면사무소를 지나니 수락폭포 가는길과 19번 도로고 가는 길이 기다린다.
무심코 수락폭포가는 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진행했는데 돌레길 표지가 없다.
현지인에게 확인하니 여긴 둘레길이 아니란다. 황당함이란....
다시 오던 길을 돌아 내려 오는데 밤재로 올라가면 귀경하는 차편이 없어
심야버스를 타야 할것 같다.
그래서 나머지 길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산동면소재지로 돌아와 시원한 캔맥주 한캔을 마시고 남원행 버스를 기다리며 이번 지리산 둘레길 크로스컨트리를 마감.(16:40)
그래도 알뜰하게 크로스컨트리 잘 했고 이제 다리도 이력이 났는지 내림길에 근육통에 있었는데 말짱! 그게 운동효과?
이제 지리산둘레길도 2구간도 채 남지 않았네. 시작이 힘들지 시작만 하면 지리산을 한바퀴 도는 둘레길 그 길이 끝나간다니 조금은 시원섭섭해 져 온다.
오미정
오미마을에 있는 정자
오미 은하수 행복마을
오미마을의 소공원 전통 그네도 설치
오미은하수 민박마을 입구
은하수 민박촌 모습
오미 은하수 민박촌
차 시음판매장과 연꽃
한창 연꽃이 피기 시작하는 철
용두골 식당
여기서 이른 점심을 먹고 출발(10:30)
아점으로 먹은 골뱅이 해장국과
막걸리 순희
순희란 단어가 정감이 가지 않나요?
용두골에서 지리산 둘레길은 두갈레로 갈라짐
오미 ~ 난동(섬진강변길)구간과 오미 ~ 방광(지리산 산길)구간
난 지리산 산길을 지나가는 오미 방광길로 들어섬
제법 모가 파랏게 자라는 하사마을
신라 흥덕왕 때부터 형성된 오래되고 큰 마을이다.
본래 승려 도선에게 이인이 모래 위에 그림을 그려 뜻을 전한 곳이라 하여
사도리라 불렸던 것이 일제 때 윗마을과 아랫마을을 구분해 상사리와 하사리가 되었다.
승려 도선은 이인의 삼국통일을 암시하는 그림을 보고 고려 건국을 도왔다고 전한다.
하사저수지를 품고 넓은 들을 바라보는 마을 정경이 아름답다.
저수지 바로 옆과 마을 앞에 당산과 정자가 있어 쉬어가기 좋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하사마을 전경
큰 정자나무 아래 집은 무더위 쉼터
이규익 효자비각
아버지가 병이 들자 백방으로 수소문해 약을 구해도 소용이 없자,
허벅지 살을 잘라 구워드리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해 3일을 더 연명하게 했고
돌아 가신 후 6년간 시묘살이를 했다는 글귀가 있음
하사마을 위 상사마을(10:58)
조상묘소를 돌보는 자손들의 벌초
여기서 잠시 길을 잃고 알바!
둘레길은 상사마을 뒷길로 이어짐
둘레길 옆의 농작물은
자식같이 정성으로 키운것으로 손데지 말것.
둘레길 옆의 연못
상사마을의 전원주택
단풍으로 물든게 아닌
원래부터 붉은 단풍나무
황전마을 전 조그만 저수지
붉은 연꽃
물이 많은 곳이라 연밭도 많음.
황전마을 지리산남부관리사무소 도착(11:56)
아점을 먹은지 겨우 1시간이 지나 그냥 통과
화엄사 입구 집단시설지구로 유명하다.
화엄사까지는 차로 15분 정도 거리다.
지리산 탐방안내소가 있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또한 민박촌을 포함한 각종 숙박시설과 식당들이 즐비하다.
조선시대 형성되어 황둔마을로 불리다가 일제 때 바로 옆 우전마을과 합쳐져 황전마을이 되었다.
현 지리산호텔 자리에 여러 가구가 있었는데,
어느 해 일어난 산사태로 전체가 몰사한 아픈 기억이 있다.
마을 옆을 흐르는 황전계곡에서 발을 담그고 가도 좋은 곳.
소나무숲이 좋은 당촌마을 가는 길
둘레길 표지판과 게스트 하우스 안내 표지판
당촌마을 안내판
조선 말기에 전주이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본래 풍수지리 상 사직형국이라 해서 사직동이라 했다
한자로 바꾸면서 당촌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령이 300년 된 마을 정자나무에서 매년 음력 정월 초삼일에 당산제를 지낸다.
둘레길은 마을 뒷길을 지나는데 길 옆으로 축사가 있다.
당촌마을 바로 옆에는 KT수련원이 있어 둘레길 이정표가 된다.
수로 다리가 많은 구간
수한마을의 둘레길 지도
수한마을
조선 선조 25년경에 임진왜란을 피해
남원에서 이주한 경주김씨 3세대가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본래 물이 차다하여 물한리로 불리다가
행정구역 개편을 하면서 수한마을이 되었다.
마을에는 520년 수령의 도나무 당산나무 잎이 일시에 피게 되면 풍년이 들고,
2~3회 나누어 피면 흉년이 든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마을 당산에서 매년 당산제를 지내 마을의 평안을 빌고 있다.
마을의 돌담길과 늙은 감나무가 예스런 분위기를 연출한다.
길 위에 만난 우리 구례
둘레길은 길위에서 만난 사람들
담쟁이가 아름다운 담장
옛스러움이 묻어나는 담장
수한마을의 당상나무
당상나무 아래는 정자가 있다.
수한마을 입구 표지석
수한마을옆 용전마을
옆엔 세월을 알수 없는 비석이 오래된 마을임을 알려줌.
볼록거울에 하는 셀카놀이
방광마을 입구
임진왜란 때 외지인이 피란 와 마을이 형성됐다.
본래 판관이 살았다하여 팡괭이라 불리다 방광으로 변했다.
방광리라는 이름에는 소로 변한 사미승 전설이 전해진다.
지리산 우번대(牛bj臺)라는 암자에 사미스님과 노승이 살았다.
어느 날 사미승이 남의 밭에서 조 세알을 훔치는 것을 본 노승이
‘3년 간 일해 갚으라’는 벌을 사미승에게 내린다.
이후 사미승은 소로 변했고, 밭주인 집에서 여물대신 밥을 먹고 살았다.
그런데 소가 싼 똥이 땅에 떨어지면 빚을 내면서 곡식이 잘 자랐고,
그래서 마을 이름이 방광리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천은사와 지리산 성삼재 길목 마을이다.
방광마을 입구 당상나무
그 아래 쉼터
시간이 여유로우면 쉬었다 가도 좋은 곳.
방광마을의 성황당
옛 추억이 되살아 나는 정미소
성황당 아래 무더워 쉼터
수령으로 보아 몇백년은 된듯한 성황당
방광마을은 들 가운데 형성된 큰 마을로 마을 안에 정미소가 있다.
마을 복판에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가 이 마을의 오랜 역사를 말해준다.
골목길을 따라 가며 만나는 돌담도 볼거리다.
옛스러움을 간직한 방광마을 길
돌담길의 정겨움.
돌담길이 마을의 연륜을 전해줌
오랫만에 접하는 황토벽
대나무 숲이 아름다운 방광마을 길
방광마을을 벗어나면 나타나는 수영장
지리산 계곡수를 이용한 수영장
청정계곡수가 수영장 물
맑디 맑은 계곡수
짙푸른 억새가 싱그러움을 주는 7월 초하루
수로을 따라 걷기
조금 높은 수로인데 수로로 걷기는 슬릴 만점
갑자기 둘레길이 개인 감나무 과수원(한울농장)을 통과
가을엔 감따기 이밴트가 있나 봅니다.
감 과수원을 통과하면 만나게 되는 목재다리
목재다리 옆에 있는 큰 쉼터
작은 탠트 몇동은 넉넉히 설치 가능
정자 아래 있는 저수지와 뒤로 보이는 구례 들판
대전리 석불입상 안내판
대전리 석불입상 건물
대전리 석불입상
잘 가꾸어진 소나무 농장
당동마을 안내판
지리산 남악사당이 이 마을 북쪽에 있었다고 해서 당동마을이란 이름을 얻었다.
고려 때부터 100여호가 살던 큰 마을이었지만
봄가을 남악제를 지내기 위해 남원부사와 고을 수령의 발길이 잦고,
이로 인한 피해가 잦아 많은 이들이 이주하면서 마을이 작아졌다.
전설에 의하면 해방 직후 유씨란 사람이 남악사터에 묘를 쓰자 마을에 가뭄이 들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묘를 파내자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큰 비가 내려 모내기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지금도 그터는 손을 대지 않는다고 한다.
당동마을은 최근 화가들이 많이 이주해와 ‘화가마을’로도 불린다.
지리산둘레길이 지나는 곳에는 화가들이 짓고 있는,
현대적 조형미가 느껴지는 집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다.
당동마을에 들어선 화가마을
겔러리도 보임.
화가마을 안내표지
화가마을 전경
난동마을 더위쉼터
지리산생태숲이 있는 지초봉 아래에 자리한 마을이다.
당동마을처럼 산중턱에 자리해 들판 내려보는 전망이 좋다.
지리산 둘레길은 마을의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간다.
그 길 끝에 마을의 역사만큼 오래 묵은 소나무 몇그루가 어울려 자랐다.
솔숲 가운데는 제당을 꾸려놨는데, 정자도 있어 쉬어가기 좋은곳.
지리산 구례생태숲 안내판
이곳은 둘레길에 조금 벗어나 있음.
구리재로 오르는 임도길은 햇볕은 쨍쨍!!
고행의 길 시작
가파른 구리재로 오르는 둘레길 옆의 정자
시멘트 길이 끝나고 흙길이 이어지고
도착한 구리재 정상의 정자
여기서 탑동까지는 내리막길(14:37)
탑동까지 안내하는 둘레길 표지
구리재를 넘어 도착한 탑동마을(15:06)
여기는 탑동마을!(15:08)
탑동마을 입구
방광 → 탑동마을 구간은 둘레길은 마을뒤에서 앞으로 이어짐.
여기서 산동 밤재는 10.1km
시장기를 느껴 금강산도 식후경
탑동마을(지리산 온천) 입구라 큰 청기와란 큰식당이 있으며
산수유냉면이 별미.
19구간인 효동마을을 경유 밤재로 이어짐
효동마을은 탑동마을과 마주보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 복판에 지리산 천년수 공장이 있다.
마을을 감싼 산세가 효자가 많이 나오는
청룡고지(靑龍高地)라 해서 효동마을이라 이름지었다.
효동마을이 산동천과 만나는 곳에는 국궁장이 조성돼
마을 사람들의 여가와 건강에 기여하고 있다.
지리산둘레길은 효동마을 복판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산동면사무소가 있는 원촌마을로 향한다.
산동면사무소 앞((16:18)
지리산 아래 산동은 산수유로 유명
지리산둘레길은 산동면사무소를 오른쪽으로 끼고 돈다.
면사무소 주변에는 식당과 마트, 버스정류장 등이 몰려 있다.
거리는 70년대 풍경처럼 정겨워 한번쯤 둘러볼 만하다.
면사무소를 끼고 돌아 북쪽으로 향하면 왼쪽에 원촌초등학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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