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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 그리고 꾸뜹미나르 본문

아시아 여행/인도

델리 그리고 꾸뜹미나르

산달림 2018. 4. 24. 21:45

 

 

꾸뜹미나르 / 이슬람교도의 72.5m 승전기념탑

 

이번 여행도 종반으로 간다. 마날리에서 델리로 가는 교통은 버스 밖에 없다. 비시즌이지만 여행자버스는 운행이 된다. Lien버스다. 그냥 타는데 배낭을 정리하는 직원이 수고비 20Rp를 내란다. 다든 내기에 그냥 냈다. 여긴 노프러브럼의 나라 인도니까. 오후 4시 20분에 출발하면 내일 새벽 7시경 델리에 도착한단다. 한국의 2-2좌석으로 시외버스 정도의 수준이다.  

 

버스는 가는 도중에도 손님을 싣었고 9시경 운전사가 바뀌고  9시 30분경 휴게소에 도착하니 델리로 가는 여행자 버스가 전부 도착을  하고 여기서 저녁식사를 하고 화장실을 다녀 오는 시간이다. 30분 정도를 쉬었다 가는데 이곳에서 파는 사과 와인이 맛이다 하여 잠도 잘겸해서 1/4을 마시고 배낭에 챙겨두었다.  자는둥 마는둥하고 밤새 달려 새벽 6시 30분경 어두컴컴한 델리의 어느곳에 내려 놓는다. 뉴델리역과는 그리 멀지 않은것 같다.

 

함께 버스를 타고 온 젊은 친구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하니 어디를 가는냐고 묻는다. '빠하르간지'라고 하니 따라 오란다. 그늘 지하철로 들어 간다. 그런데 지하철을 탈때 인도는 X-ray 검사기에 물품을 통과시켜야 한다. 밀어 넣고 나오니 군인이 부른다. 자크를 열어 보란다. 왜그러냐고 하니, 술병이 있다고 한다. 아, 오면선 구입한 사과와인이 있구나. 술은 지하철 반입이 되지 않는단다. 어쩌나? 나가나, 버리나. 선택은 버리자. 지금은 7시도 안된 어두운 새벽이다. 350Rp를 버리기로 했다. 두고 가면 되냐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검색대 앞에 있는 군인옆에 두고 매표소로 가니 함께 왔던 인도친구가 지하철 토큰을 건네 준다. 얼마냐고 햇더니 됐다고 한다. 참 고마운 친구다. 그는 함께 지하철을 타고 뉴델리역이라고 내려라고 가르켜 준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내리는데 그는 더 가야 한다고 했다. 인도인도 친철한 분들이 많다. 늘 선입견을 가지고 사기꾼으로 몰아가는 것은 일부 관광지에 있는 인도인이 아닐까.

 

새벽의 배낭여행자 숙소 빠하르간지는 쓰레기로 뒤덮인 지전분한 거리다. 청소원이 쓰레기를 쓸고 먼지가 풀풀 날리는 그런곳이었다. 빠흐르간지의 중간쯤에서 숙소를 잡을 생각으로 짜이를 파는 리어커앞에 배낭을 내려 놓고 쌀쌀한 새벽공기를 잊으려고 짜이를 한잔 마셨다.  처음 와본 빠하르 간지지만 여행자의 눈에는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숙소가 많을것 같다.

 

첫번째 숙소는 풀이라 했고 두번째 숙소을 들어서니 바닥에 자고 있던 직원이 눈을 비비며 깨어나 잠시 기다려 보란다. 청소를 하더니 들어 오란다. 밤새 버스를 타고 왔더니 몸이 천근이다. 쉴수 있는 보금자리가 있다는게  이렇게 행복 할 수가. 찝질한 몸을 씻고 잠시 누워도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다.

 

쿠틉미나르로 가기전에 한글 식당간판을 따라 들어 가니 인도이 운영하는 식당인데 한식 메뉴가 다양하다. 제육볶음을 주문했는데 비슷한 맛을 낸다. 400Rp나 하니 인도물가 치곤 좀 비싼편이다. 500Rp를 주고 나왔는데 거스럼돈을 받지 않고 나온걸 5분정도 지난후 알았다. 다시 가서 거스럼돈? 했더니 100Rp를 건내 준다. 인도인도 정직한 사람이 많았다. 내가 만난 인도인은 착한 사람이 많았던건 행운이었을까. 

 

쿱릅미나르는 지하철로 쉽게 찾아 갈수 있었다. 출근길의 델리 지하철도 러시아워라 복잡하다. 다행히 쿱릅미나르가 종점이라 편했다. 역에 있는 릭샤왈라들은 100Rp를 불렀지만 건너편에 가니 50Rp를 부르길레 40Rp에 흥정을 하고 갔다.

 

쿱릅미나르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델리에서 가장 오래된 12세기 유적이다. 원래 이곳에 힌두교와 자인교 사원을 파괴한 뒤 세운 이슬람교도들이 세운 승전탑이다. 쿱릅 미나르의 미나르는 모스크안의 탑을 뜻하는 미나레트의 인도식 발음이다. 모스크에서 미레나르의 역할은 이슬람교도들에게 예배시간을 알리 곳이다. 새벽녘에 '알라 호 아크바르 ~ '로 시작되는 기도 소리는 주변에 모스크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쿠와트 알 이슬람 모스크는 '이슬람의 힘'이라는 뜻이 담긴 인도 최초의 이슬람사원으로 델리를 점령한 후 27개나 되는 힌두사원을 파괴한 후 그 잔해 가운데 쓸만한 것만 모아서 이 모스크를 지었다고 한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히두 우상의 파괴로 인한 이슬람의 지배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모스크의 북서쪽에는 무덤처럼 벽돌을 쌓아 올린 승전탑인 알라이 미나르가 있다 . 얼핏보기에는 탑이라고 보기 힘든 형상인데 1층부분만 지름은 15m나 된다.

 

 

 

 

꾸와트 알 이슬람 모스크 사원

 

 

 

승전기념탑의 섬세한 조각

 

 

 

힌두교 왕조를 멸망시킨 이슬람교도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세운 승전탑(72.5m)

아래 부분은 지름 15m에서 위로 갈수록 가늘어져 꼭대기 지름은 2.5m이다. 탑은 구분이 뚜렸한 5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층은 돌출된 발코니로 구별된다.  1~3층은 붉은 사암으로 4~5층은 대리석 및 사암으로 지어졌다. 원래는 지붕 돔이 씌워져 있었으나 지진으로 무너졌다. 이곳은 이슬람교도들의 기도장소와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탄 안으로 올라 갈수 있는 계단이 있으나 압사사고가 난 이후 폐쇄되었다.


 

 

 

 

이슬람 모스크 문에서 본 풍경

 

 

 

이슬람 모스크의 외

 

 

 

정교하고 섬세한 문양들

 

 

 

이슬람 사원의 긴 회랑

 

 

 

꾸뜹미나르 유적군

 

 

 

이슬람 사원의 열주와 안뜰

 

 

 

 

까마득하게 보이는 꾸듭미나르 승전탑

 

 

 

꾸와트  알 이슬람 사원의 안뜰

 

 

 

이슬람 사원의 열주와 안뜰

 

 

 

이슬람 사원앞의 열주와 안뜰

 

 

 

이슬람 모스크 안뜰

 

 

 

오파츠(OOPatts)는  현대 과학으로 해명이 불가능한 고대 출토물을 가리키는 말인데

앞에 보이는 쇠기둥도 오파츠의 일종이라 한다.

쇠기둥이 제작된 시기는 약 4세기경으로 추정하는데 철의 함량이 99.99%까지 나온다고 한다.

이정도 순도가 나오는 철은 현대 과학기술로도 주조가 불가능 할 정도라는데

1,500년간 노천에서 비바람을 맞아도 녹도 슬지 않는 것이 특이하다.

이 쇠기둥을 양손으로 안아 깍지를 끼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 하는데

너무 많은 인파가 밀려 와 지금은 철조 보호망으로 울타를 쳤다고 한다.

 

 

 

이슬람 사원의 안뜰

 

 

섬세한 조각이 돋보이는 출입문

 

 

 

이슬람사원의 열주와 안뜰

 

 

 

기둥의 섬세한 조각

 

 

 

인도는 잉코새가 야생에 많이 날라 다닌다. 한쌍의 잉코새

 

 

 

중국에서 온 여행자 / 패션  사진 촬영중

 

 

 

꾸틉 미나르 유적군

 

 

 

사진 촬영중인 중국인

 

 

 

인도에서는 역시 인도여인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꾸뜹 미나르 유적군

 

 

 

유적군에서 본 꾸뜹미나르 승전탑

 

 

 

2대왕 일투미시의 무덤

 

 

일투미시의 무덤 내부 모습

 

 

무덤 내부에서 밖으로 본 모습

 

 

일투미시의 무덤 전경

 

 

알라이 미나르어에서 기념사진

 

 

알라이 미나르(Alai Minar)

제 2대왕 알라 웃딘이 꾸뚭미나르를 능가하는 탑을 세우려고 건축을 하다다 1년만에 죽자 공사가 중단된 27m의 미왕성 탑

꾸뜹미나르는 직경이 15m인 반면 이 탑은 직경이 25m나 된다.

 

 

 

꾸뜹미나르의 유적군 모습

 

 

이슬림 사원과 꾸뜹미나르 승전탑

 

 

꾸와트 알 이슬람 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