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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달림의 걷기여행과 마라톤 그리고 등산

화성 방조제 건너 매향리 가는 길 본문

국내 걷기여행/경기만 소금길

화성 방조제 건너 매향리 가는 길

산달림 2020. 11. 15. 21:18

가을비가 내리는 아침이다. 탠트 철수를 하는 게 문제다. 탠트 안에서 누룽지를 끓여 아침식사를 하고 오늘 날씨를 체크해 보니 그리 오래 오지는 않을 것  같다. 비가 뜸하길 기다리다가 탠트를 걷었다. 외피는 이미 젖은 상태고 내피만 젖지 않게 배낭에 밀어 넣었다. 흐린 날씨에 가는 비가 내린다. 오늘 매향리 스튜디오까지 걸어가야 한다. 해안길로 이어지는 길에 비가 내리는데 물은 뿌리는 어르신을 만났다.

"비가 내리는데 물을 주시네요."

"이 정도 비로는 어림도 없어." 
"무슨 씨를 뿌리셨는데요?"

"쪽파 씨야."

"네에, 염전까지 멀어요?"

"저기가 염전이야"

해안가를 가리키시는 쪽을 보니 논 같은 게 보인다. 그곳인가 보다. 인사를 하고 잔뜩 흐린 해변으로 향했다.

해변은 철조망으로 막혀 있고 뚝방에는 노란 야생 들국화가 가득 폈다. 국화향이 가득하다. 뚝방 안으로 염전이 있고 창고 같은 건물이 띄엄띄엄 있다. 뚝방길은 바닷바람이 강해 아랫에 있는 길로 걸었다. 가끔 경기만 소금길 리본이 보이지 않을 때는 GPS지도를 확인하며 걸었다. 다음 목적지가 공생염전이라 우산을 들고 오시는 어르신을 만나 위치를 물어보니 쭉 가면 된단다. 흐린 날에 썰물로 바닷물이 빠진 서해안은 온통 잿빛뿐이다.

공생염전은 한국전쟁 때 월남한 사람들과 철원지역 피난민들이 일군 곳이다. 이 곳은 공평하게 소금판을 분배하고 다 같이 잘 살자는 의미로 '공생염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금도 13가구가 남아 염전을 지키고 있다.

 

화성 염전길

 

백미리로 가는 길에는 가을 추수를 끝낸 논이 황량하게 펼쳐진다. 백미리 어촌마을은 갯벌 체험지로 유명하다. 마을 앞에 부드럽게 펼쳐진 갯벌은 오랜 백미리 주민의 삶을 지탱해 주는 어머니 같은 곳이다. 이곳이 생태 체험공간으로 재탄생하여 바지락 캐기, 굴 따기, 배낚시, 망둥어 낚시를 할 수 있는 곳이다. 깊이 빠지지 크게 힘들지 않고 갯벌을 다닐 수 있다. 입장료를 내고 잠깐 발품을 팔면 바구니 가득 바지락을 캘 수 있다. 소금길은 해안가를 따라 남으로 이어진다. 철조망을 따라가는 길은 인공적인 소리는 사라지고 파도소리, 풀잎 소리, 바람소리만 들린다. 짭짤한 바다 냄새와 풀냄새가 한데 섞여 참 근사하다. 

백미리 가는길
백미리 갯벌 체험장

 

길은 작은 산자락을 넘어서면 궁평 해변으로 이어진다. 마을에 부는 해풍을 막으려고 심은 해송이 근사한 곳이다. 낙조가 아름다운 궁평항 해변의 백 년 송 군락지가 바다가를 따라 이어진 해안사구와 어우러진 풍경이 바다와 잘 어울린다. 이 길의 가운데 궁평 오솔 아트 파빌리온이 있다. 바닷가 물결의 형상을 보여주는 지붕, 소나무 숲을 연상시키는 기둥으로 이루어진 자연 친화적 숲의 형태를 가진 예술 조형물로 자연경관을 경험하고 쉬어 갈 수 있는 곳이다.

 

화성 황금길과 함께 걷는 해안길
궁평 해송숲
오솔 파빌리온

 

궁평 해변에는 요즘 대세인 카 캠핑족이 진을 치고 있다. 쌀쌀한 날씨에 캠퍼들이 하룻밤을 보내고 늦은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궁평항으로 가는 길은 데크로 연결되어 있다. 왼편 동산에는 단풍에 곱게 물들어 바닷물과 잘 조화된다.  궁평항에는 횟집과 수산물 직판장이 있다. 궁평항이 서해 낙조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국화도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는 곳도 궁평항이다. 궁평항을 지나면 화성 방조제가 시작된다. 9.8km를 걸으려면 미리 점심을 먹고 출발해야 한다.

궁평항 입구에 자리한 칼국수집에서 바지락 칼국수로 든든히 속을 채우고 이번 경기만 소금길의 마지막 고비인 화성 바조제를 건넌다.

 

궁평해변 카캠핑중인 캠퍼들(좌), 궁평항으로 가는 데크길(우)

 

화성 방조제는 서신면 궁평리와 우정읍 매향리까지 9.8km의 일직선으로 연결되는 방조제다. 이 길은 인간의 힘을 더해서 바다 위에 없었던 길은 만든 것이다. 해안과 내륙의 거대 호수를 보면 걷는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4차선 도로에 자전거 길이 별도로 있다.  호수 쪽으로는 낚시꾼들이 월척의 꿈을 안고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이 많다. 매향리 방향 끝부분에 매향리 포구가 있어 이동 카페가 있다. 9.8km를 쉬지 않고 걷는다는 건 고행이었다. 이번 소금길에는 시화방조제, 제부도 바닷길, 화성 방조제를 모두 건넜다. 이제 고지가 저기다. 다 왔다는 생각에 길옆에 있는 풀들이 나를 응원해 주는 것 같다. '그간 수고했어.'라고. 화성 드림파크 야구장을 지난다. 오늘도 경기가 있는지 함성소리가 들린다.

 

화성 방조제 길
끝이 보이지 않는 9.8km 화성 방조제

 

이번 경기만 소금길의 끝은 매향리 스튜디오다. 1951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매향리는 항공기 사격 연습장이었다. 매향리 갯벌 농섬은 폭격의 표적이 되어 수많은 폭탄과 기총을 뒤집어써야 했고 하루 11시간 동안 계속되는 폭격훈련은 마을의 상처가 되었다. 2005년 마을 주민과 시민들의 운동으로 화약냄새를 지우고 매화꽃 향이 넘치는 마을로 다시 태어났다. 이곳이 경기만 소금길의 마지막 장소가 된 건 의미 있는 일이다.

 

매향리의 철새떼
화성 드림파크

매향리 스튜디오에는 기다리고 있던 로드 프레스 스텝의 환영을 받았다. 완주증을 받고 매향리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기면 사진을 찍었다. 실러는 말했다. 시간의 걸음에는 세 가지가 있다.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해 있다. 했다. 화살처럼 날아가는 시간에 걷기는 시간을 천천히 즐기는 좋은 대안이다. 그래서 걷기는 수행의 시간이기도 하다.

 

매향리 마을
경기만 소금길 144km 끝인 매향리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