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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달림의 걷기여행과 마라톤 그리고 등산

동계 지리산 동부능선 웅석봉 본문

국내 산행/경상도

동계 지리산 동부능선 웅석봉

산달림 2021. 1. 27. 16:40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시지 마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고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다.

지리산 시인 이원규 님을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에 이렇게 표현을 하셨다.
견딜만 하면 가지 않으려 하였지만 긴 사회적 거리두기에는 기다림의 시간이 너무 길다. 이런 시간에 훠이훠이 다녀올 만한 산으로 지리산 만한 데가 없다.

웅석봉 들머리인 내리 지곡마을


그중에도 오지에 속하는 지리 동부 능선을 걷기로 했다. 들머리는 산청 내리다.
8시에 남부터미널을 출발하여 산청에는 11시 10분 도착 예정이지만 한가한 고속도로 덕분에 10분을 먼저 도착한다. 택시로 초입까지 가려던 계획이 11시 15분 내리행 마을버스 시간이 맞아 떨어진다. 나 홀로 전세 내듯 타고 들머리에 도착했다.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내리 저수지와 지리산 둘레길 이정목

 

연중 가장 춥다는 대한을 넘긴 지 3일짼데 눈이 아닌 부슬비가 내린다. 배낭 커버를 씌우고 내리 저수지를 올라 지리산 둘레길을 잠시 걷다가 십자봉으로 오르는 길로 들어섰다. 오랜만에 매어 보는 65L 배낭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이제 이 배낭도 작별의 시간이 멀지는 않을 것 같다.

동계 산행은 장비가 많다. 아이젠, 스페츠, 동계용 침낭, 보온용 장갑 2개, 버프, 털모자, 휘발유 버너, 핫팩 등은 겨울에만 쓰는 장비다. 영하 10도 이하에서도 생활해야 하는 겨울산행은 장비가 중요하다.

 

십자봉 가는 길 안내표지와 웅석봉 가는 길

 

십자봉 가는 길의 참샘


곰 바위산인 1,099m 웅석봉까지는 줄곳 오르막이다. 산청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이라 등산로도 쉼터도 군데군데 잘 만들어 놓았다. 중턱에는 참샘도 있다. 오름이 이어지자 더워서 옷을 하나, 둘 벗게 된다. 더운 것보다 쌀쌀한 게 낫다. 체력이 많이 필요로 하는 동계 산행이다. 벌써 등에는 땀으로 젖어 온다. 웅석봉 가기 전에 먼저 십자봉을 오른다.

 

귀여운 곰바위산 웅석봉 1,099m
웅석봉 정상의 데크 전망대


5.3km의 오름길 끝에 웅석봉 정상은 1,099m다. 웅석봉 답게 오석에다 귀여운 곰을 그려 놓았다. 절로 미소가 나온다. 데크시설도 있어 조망이 좋은 곳이다. 오늘은 지리산 쪽으로는 짙은 안개로 시야가 없다. 반대인 산청은 잘 내려다 보인다.

 

산불감시초소와 밤머리재 가는 이정목


정상 옆의 산불감시초소에는 문이 굳게 잠겨 있다. 가끔 근무를 하는 듯 일상용품이 정리되어 있다. 밤머리재까지는 5.3km, 내림 오름의 반복이다. 양지쪽은 눈이 녹아 질퍽하다. 아직 봄은 멀었지만 산은 해빙기다.

헬기장 옆에는 샘터 50m란 안내표지가 있다. 식수를 구할 수 있는 곳이다. 밤머리재까지는 내림이 많다. 내림을 마냥 좋아만 할 수 없는 게 내려서면 그만큼은 다시 올라야 하는 길을 알기에 그르려니 하고 걷는다.


우리네 삶도 내리막이 즐거움이고 오르막이 괴로움이라면 내리막의 즐거움은 언제가 괴로운 오르막이 있다는 걸 알면 지금을 담담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게 락과 고의 연속이 인생이 아니던가. 그래서 우리네 삶은 락고락고의 반복이다.

멀리서 차 소리가 들린다. 밤머리재다. 지리산 자락의 동부 능선을 넘는 고개다. 버스를 개조 한 매점이 있다. 겨울이라 일찍 손님이 끊기니 미리 문을 닫고 산을 내려갔다. 아직 난로는 온기가 남았고 타다 남은 장작을 꺼내 불을 끈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밤머리재 내려 서기전 목제 데크와 웅석봉 입구 안내
밤머리재 표지석

 

입구에는 백두대간 둘레길 1,000km 완주한 J3 방장님의 사진이 걸려 있다. 고성에서 이곳 밤머리재까지 1,000km를 18일간 걸었단다. 세상에는 고수가 많고 도전은 아름답다.

 

J3 백두대간 둘레길 1,000km 완주 사진


여기서 식수를 구할 것으로 생각하고 왔다. 줜장이 없으니 물은 어떻게 구해야 할까? 건물 뒤로 가니 식수통이 있다. 열어 보니 얼었지만 녹은 물이 조금은 있다. 다라이에 눈이 쌓여 녹은 물이 있어 냄새를 맡아보니 음용수로는 부적합하다.
장작을 패는 도끼를 가져와 식수통의 얼음을 깨 보려 했지만 워낙 두껍게 얼어 안 된다. 마침 여행 왔다 가는 차가 있어 물 있으면 줄 수 있느냐 하니 없다란 말을 남기고 쌩하니 산을 내려간다.

물 없이는 저녁뿐만 아니라 아침도 굶어야 한다. 산속에 일단 탠트를 치고 추위를 피해야 했다. 시장기를 면하려면 비상식량이라도 먹어야 한다. 초코파이 2개와 사탕을 먹고 누룽지를 씹어 먹으니 살 것 같다. 산청에 구한 산청 막걸리를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 궁하면 통한다고 해결할 방법은 있을게다.

우리는 쓸데없는 걱정을 너무 많이 한다. 소크라테스는 그랬다 '그렇다. 모든 희망을 내일에 걸지 마라. 네가 숨 쉬고 있는 지금이 가장 소중하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해도 된다.

낙엽 위에 탠트를 쳤더니 쿠션도 있고 포근해서 좋다. 2평도 안 되는 작은 보금자리지만 지금은 세상에 가장 소중한 나의 잠자리다. 크다고 비싸다고 좋은 게 아니다. 내가 편한 곳이 좋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