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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달림의 걷기여행과 마라톤 그리고 등산

지리산 천왕봉을 올라 장터목에서 중산리 본문

국내 산행/경상도

지리산 천왕봉을 올라 장터목에서 중산리

산달림 2021. 1. 31. 15:11

산에서 내려가는 날이다. 긴 겨울밤도 아침은 찾아왔다. 탠트를 접는데 바람이 불어 잘 접히지 않는다. 에어매트 아래는 결로 현상으로 물이 흥건하다. 눅눅해진 탠트를 배낭 안에 밀어 넣었다.  또 산에서 하루가 시작된다.

어제 산죽길을 걸을 때 등산화를 적셨다. 아침에 일어나니 동태가 되었다. 발이 들어 가게 입구만 녹이고 발을 밀어 넣었다. 겨울철 산행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자주 발생한다. 어떻든 해결을 해야 한다. 잔머리 굴릴 일이 많아진다. 집을 나서면 새로운 일로 생각이 많아진다. 자연현상에 닥치는 일을 어떻든 수습을 해야 한다.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 1,915M


동녘 해가 뜨기 전에 길을 나섰다. 어제는 눈 위가 녹아 푹푹 빠지면서 걸었다. 밤새 눈위가 얼어 잘 언 곳은 딛이고 지나갈 수 있었지만 설 얼은 눈 위는 푹 빠진다. 발목까지는 빠지는 눈은 금방 지치게 한다. 눈이 내리고 난 후 아직 이곳을 지난 산객이 없어 길을 만들어서 가야 하다.

평소에 알던 길도 눈이 3 ~40Cm 쌓이면 길을 찾기 어렵다. 느낌으로 동물적 감각으로 길을 찾아야 한다. 가끔은 멧돼지가 길을 만들어 놓았다. 그 길은 등산로는 아니지만 눈이 다져져 눈에 빠지지 않으니 그 길을 따라 걷는다. 때로는 멧돼지의 도움을 받는다. 적어도 산에서는 동지다.

 

지리산의 일출은 연중 50일 만날 수 있다.


동녘 하늘이 열린다. 곧 해돋이가 있을 것 같다. 해가 뜨기 전 먼저 하늘을 붉은색으로 물들인다. 걷다 보면 해돋이가 되는 곳은 점점 더 진한 붉은빛을 띤다. 그리고 조금씩 얼굴을 내민다. 눈부신 햇살이 대지를 비춘다. 또 하루가 시작이 된다.

상고대가 진 나뭇가지에 얼음꽃이 피었다. 상고대가 녹으며 추우니 그게 얼음 방울이 되어 보석 같이 빛난다. 겨울산이 주는 희귀한 선물이다. 두류산을 오르는 게 힘겹다. 눈길은 서두르면 먼저 지친다. 천천히 스텝 바이 스텝이다. 눈길을 이길 수는 없다. 적응을 해야 한다. 그게 산에서 배운 지혜다.

 

러셀하며 걷는 길


등산로가 어딘지 알 수 없으니 때로는 덩굴 아래로 지나기도 한다. 나뭇가지가 배낭을 잡아 챈다. 실타래를 풀듯 하나하나 풀어가야 한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이런 길 걷기다. 여기서 인내를 시험해 본다.

하봉에 올라 서면 건너편으로 치밭목 대피소가 보인다. 헬기장은 눈 속에 묻혀 있다. 빤히 올려다 보이는 중봉도 금방이면 갈 것 같지만 눈길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쉽게 길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행히 어느 산객이 하봉까지는 발자국이 있다. 살았다 싶다. 고맙게도 누군가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게 이렇게도 편한가 싶다. 길을 잃지 않으니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따라만 가면 되는 길이다. 그렇다고 마냥 편한 건 어니다. 럿셀하는것 보다 편하다 것이다.

 

상고대가 얼어 핀 얼음꽃


마지막 급사면을 씩씩거리며 오르면 중봉이다. 남으로는 낙조가 일품인 반야봉이 우뚝하고 능선길을 따라 지리산 종주길이 이어진다. 지리산에서 보는 풍경은 일망무제다. '한눈에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하게 멀고 넓어서 끝이 없음'이 여기에 쓰라고 만든 단어인가 싶다.

 

중봉 안내표지


천왕봉의 뒷모습이다. 응달이라 잔설이 많이 쌓여 있다. 깊고도 긴 칠선계곡이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린다. 철계단을 지나 힘겹게 오르면 지리산 천왕봉이다. 겨울의 천왕봉은 칼바람으로 한몫을 한다. 오늘도 그렇다. 휴일이면 줄을 서서 기념사진을 찍어야 하지만 평일이라 한가해서 좋다. 어리석은 자도 지리산에 들면 지혜로워진다는 지리산이다.

천왕봉과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정상에 선 기분은 자연으로부터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360도로 영상을 담아 본다. 노고단이 어슴프레 펼쳐진다. 지리산 종주능선이다. 예로부터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삼신산으로 불러오던 영지다. 칼바람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이번에는 하산길을 장터목에서 중산리 코스로 잡았다. 가는 길에 제석봉이 보고 싶었던 게다.

산은 오를 때 보다 내려올 때 사고가 더 많이 발생한다. 눈이 녹았다 얼었다를 반복해서 완전 빙판길이다. 조심해서 걸어야 하는 구간이다. 통천문을 지난다. 하늘로 통하는 문이란 곳이다. 그만큼 지리산은 영험스러운 산이었다.

제석봉과 고사목


제석봉 고사목 지대는 황량한 바람만 분다. 제석봉 일대 약 33만 평방미터의 완만한 비탈은 고사목으로 뒤덮여 있으며 나무 없이 초원만 펼쳐져 있다. 한국전쟁 후까지만 해도 아름드리 전나무, 잣나무, 구상나무로 숲이 울창하였으나 자유당 말기에 권력자의 친척이 제석단에 제재소를 차리고 거목들을 무단으로 베어냈고 이 도벌 사건이 문제가 되자 그 증거를 없애려고 이곳에 불을 질러 모든 나무가 죽어 현재의 고사목 군락이 생겼다고 한다. 참 애석한 일이다.

장터목대피소다. 지리산에 가장 인기 있는 대피소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여기를 선호하고 중산리 백무동의 들머리가 있어 많이 찾는다. 늦은 점심은 장터목 대피소에서 먹었다.

 

장터목 대피소와 천왕봉 오름길


그간 로터리 산장길을 많이 이용했기에 일부러 이길도 걷고 싶었다. 까글막이 상당히 심한 계단을 연속으로 내려가야 한다. 아래로 갈수록 계곡물소리가 크게 들리고 계곡도 넓어진다. 그리 높지 않지만 법천 폭포가 여인의 치막 자락 같이 물줄기를 드리운다.

계곡 곳곳에 담과 소가 이루져 계곡미를 뽐낸다. 한여름 더위를 식히기 좋은 계곡이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중산리까지는 5.3km이다. 칼바위 전에 법계사 가는 길과 조우를 한다. 칼바위 유래는 태조가 개국 후 지리산에 자기의 목숨을 노리는 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 부하 장수에게 칼을 주면서 그자의 목을 베어 오라고 명을 내렸다. 명을 받은 장수가 지리산을 헤매던 중 소나무 아래 큰 바위 위에서 글을 읽는 선비를 보고 다가가 칼로 내려치니 바위는 갈라져 홈바위가 되고 그때 부러진 칼날이 3km를 날아와 바위가 되어 하늘을 찌를 듯한 형상을 하고 있으니 지리산 최고의 명물이라 하겠으나 어찌 보면 지리산의 아픔이라 하겠다.

법천폭포와 칼바위


긴 내림이 끝나면 중산리다. 여기서 시외버스는 2km를 더 걸어 내려야 한다. 2박 3일의 산행을 돌아보며 걷다 보니 버스 정류장이다. 코로나로 버스가 많이 줄었다. 오후 4시 버스가 출발하기 10분 전에 도착을 했다. 원지로 나가 상경하는 버스를 타야 한다.

 

중산리 시외버스 정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