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달림의 걷기여행과 마라톤 그리고 등산
새해 지리산 일출 산행 본문
새해 신년 산행으로 우리나라 두 번째로 높은 지리산 천왕봉으로 정했다. 겨울산은 눈이 없으면 삭막하기 그지없다. 거기다가 지리산 일출은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곳이다. 겨울은 일출 볼 확률이 높은 계절이다. 년간 약 100일 정도 일출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코로나 시절임에도 제한되었던 산악회 안내 산행도 재개되었다. 사당역에서 23시 30분에 출발하는 무박 2일 연하선경 천왕봉 일출산행이다. 산행의 들머리는 쌍계사는 있는 깊은 골짜기 거림에서 출발하여 세석산장을 지나 천왕봉에 오르고 중산리로 내려오는 약 18km 거리다. 거림(巨林)은 아름들이 나무가 빽빽하게 계곡을 메우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버스는 밤을 달려 새벽 3시 20분 거림에 내려 놓는다. 일부는 거림에서 시작을 하고 나머지는 비교적 짧은 거리인 중산리에서 시작이다. 새벽의 밤공기가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져 알싸하게 차갑다. 등산화 끈을 바짝 조이고 해드 렌턴을 켜고 3시 30분에 출발이다. 가게 앞을 지날 때는 불빛이 드문드문 있지만 거림 지킴이터를 지나면서 암흑의 세계로 들어선다. 보이는 건 오직 랜턴 불빛과 밤하늘의 별빛뿐이다.
내대천을 따라 오르는 길은 돌길이라 걸음을 빨리 할 수 없다. 밤길은 길을 찾아야 하고 돌을 잘 디뎌야 넘어지지 않는다. 삐끗하였다가는 부상이다. 들리는 건 내대천의 물소리와 겨울바람 소리다. 영하 10도의 기온이 스틱을 쥔 손가락이 시려온다. 준비해 온 발열 핫팩과 한꺼번에 움켜쥐니 그제야 손가락 시린 건 면하지만 볼테기가 시려오는 건 어쩔 수 없다.
가을 단풍이 일품인 계곡이지만 한 겨울엔 눈이 내리면 설국이 될 텐데 요즘 눈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군데군데 12월에 내린 눈이 녹지 않고 남아 있어 겨울 풍경을 더해 준다. 밤길을 2.7km를 걸으면 남해 전망대다. 남해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인데 밤중에 깜깜한 별만 보인다. 날이 추우니 공기가 맑아 별이 솟아질 듯 많다.
앞서 오르던 두 분은 시장해서 깜깜한 신새벽에 뭔가 간식을 먹는다. 겨울산행은 배가 고프기 전에 먹어야 걷는다. 준비해 온 꿀물을 마시고 올랐다. 이제는 어둠 속에 혼자 걷는다. 이런 길이 싫지는 않다. 높이를 더해가니 칼바람이 옷 속을 파고들어 목에도 버프를 두르고 털모자를 쓰고 걸었다. 겨울산은 체온 유지가 중요하다. 쉬지 않고 걸어도 땀이 나지 않는다. 지리산의 추위가 체온을 빼앗아 간다.
3시간을 걸으니 세석산장의 불빛이 보인다. 잠깐 동안 보지 못한 문명의 이기가 반갑다. 샘터로 가니 꽝꽝 얼었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니 흐르는 물은 얼지 않는다는 말을 증명하 듯 물을 뜰 수 있었다. 칸막이가 된 식당에서 물을 끓여 라면에다 밥을 넣어 끊였다. 추운 날 뜨거운 국물이 있어야 몸이 더워진다. 코로나 시절이라 대피소 침실은 문을 닫은 지 2년이 넘었다. 요즘 지리산 종주는 당일로 끝내야 하니 트레일 러닝이 아니면 불가능 해졌다.
식당에 불을 켜 주지 않아 랜턴 불빛으로 끓이고 먹는다. 더운 걸 먹고 나니 몸이 좋아한다. 무박산행이 힘든 이유는 야간에 잠을 자지 않고 이동하고 걷는다는 게 체력소모가 크다. 잠을 자고 산행을 하는 것에 한 표지만 코로나 시대에는 이 방법밖에 없다. 국립공원 내는 탠트를 칠 수 없다.
촛대봉에서 지리산 일출을 보려면 서둘러 올라야 한다. 음식을 먹고 바로 걷기는 힘든다. 세석의 지명 유래는 이곳에 잔돌이 많아서 세석이란 이름이 붙여졌고 세석평전은 신라시대 화랑이 무예를 연마하던 곳이라 한다. 지금은 봄철 군락을 이루어 피는 철쭉꽃으로 유명하다.
장터목으로 가는 길에 첫 번째 봉우리가 촛대같이 생겨 촛대봉이라 한다. 이곳에 오르면 지리산 칼바람이 분다. 점점 주변이 밝아 온다. 랜턴을 끄고 걸어도 길은 보인다. 촛대봉에 올라 서니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어 온다. 해돋이가 시작되려 한다. 사진을 찍을 때 가장 힘든 게 해돋이 사진이라 한다. 포근한 날은 연무가 있고 청명한 날은 추워도 너무 추운 날에 그 기다림을 이겨내야 순간을 잡을 수 있다. 그리고 높은 산을 오르는 수고로움이 있어야 막힘이 없어 제대로 사진을 담아낼 수 있다. 일출 사진은 기다림이다.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셔터를 눌라야 한다. 흔들리면 안 된다. 기다림 끝에 남해 바다를 뚫고 붉은 해가 돋는다. 해돋이는 순간이다. 지구가 이리도 빨리 돈다는 게 실감이 난다. 폰에도 담고 카메라에도 담고 길을 떠난다. 손이 시려도 너무 시리다. 핫팩이 살려준다.
천왕봉으로 가는 길은 눈길이다. 아이젠을 끼웠다. 겨울산은 필수품이다. 해가 돋고 나니 남해 쪽으로 산 그리메가 한 폭의 산수화다. 산 뒤에 또 산 그리고 산. 산. 산....
그 뒤가 남해바다다. 장터목대피소로 가는 길에 만나는 꽁초봉의 전망이 좋아 쉬어 가기 좋은 봉이다. 겨울바람이 너무 차가워 서둘러 내려섰다. 꽁초봉이란 이름은 이 봉우리에서 쉬면서 그때는 꼭 담배를 즐겨 피웠는데 담배꽁초가 가득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장터목대피소는 산객에게는 칼바람을 피해 쉬면서 먹고 가는 곳이다. 이곳은 경상도와 전라도 장꾼들이 이곳 장터목에서 쉬면서 물물교환을 하던 조상들의 야영터였다. 1980년대만 해도 이곳에 캠핑장이 넓었다.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신새벽에 서둘러 천왕봉에 올라 지리산 1 경인 천왕봉 일출을 보곤 했다.
세석대피소에 먹은 게 있어 바로 제석봉으로 올랐다. 처음부터 된비알이다. 이 길은 힘든 고바이다. 거기에 돌계단에 눈이 얼어 더 조심해야 하고 힘든 길이다. 제석봉을 오르다 보면 고사목 지대를 지나게 된다. 이는 1950년대 권력을 등에 업은 토호와 도벌꾼이 도벌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벌인 방화의 흔적이다.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의 탐욕스러운 일면을 본다. 지금은 복원사업으로 새로 심은 구상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고 있어 희망을 본다.
천왕봉을 오르는 길에는 이곳을 통하지 않으면 하늘을 오를 수 없다는 통천문을 지난다. 바위 사이에 설치된 쇠 다리를 지나면 천왕봉이 한 뼘이나 가까워진다. 마지막 계단을 오르면서 뒤를 돌아보면 지리종주 길인 노고단과 반야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장장 백여리의 긴 종주길이다.
그 끝에는 천왕봉이 있다. 천왕봉 표지석 뒤에는 '한국인의 기상이 이곳에서 발현된다.' 라고 새겨져 있다. 새해 벽두에 천왕봉에 섰다. 늘 길게 서서 천왕봉 인증사진 찍는 줄이 없다. 두 팔을 높이 뻗여 사진을 담았다. 남해 쪽 산 그리메가 켜켜이 산으로 줄을 긋고 뒤로 줄을 그어간다. 남해 바다까지.
산은 내리막길이 더욱 위험하다. 그중에도 겨울산은 더욱 그렇다. 특히 천왕봉에서 로터리대피소까지는 최고로 위험한 구간이다. 길이 군데군데 얼었고 경사도가 급한 구간이다. 경남 쪽에 계신 분들이 이제야 올라오신다. '빨리 갔다 오시네요' '네, 새벽에 출발했습니다.' 그렇다 누가 새벽 세시반에 출발한 줄 알았을까.
로터리 산장에 앞에는 법계사가 자리 잡고 있다. 설악산 봉정암 보다 더 높은 1,400m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찰이다. 새해를 맞이하여 참배하고 내려왔다. 로터리산장에서 그간 주로 칼바위 방향으로 산을 내려왔다.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시간이 여유로워 오랜만에 순두류 방향으로 돌아서 내려가기로 했다. 1985년경에 이 길로 아내와 아이 둘 데리고 내려간 이후 처음으로 내려간다. 추억이 새록새록 베여 있는 길인데 그때 기억이 가물가물한다.
칼바위 길보다 완만하고 걷기도 편하다. 단지 돌아간다는 게 흠이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라 봄, 여름, 가을에는 계절마다 달리하는 풍경을 즐기며 걸어도 좋겠다. 2.7km만 내려가면 경남 환경교육원이 자리하고 있어 중산리 간 셔틀버스도 다닌다. 이곳 산객들은 버스시간에 맞추어 이 길을 많이 이용한다.
시간이 여유로 와 3km 포장길을 걸어서 내려갔다. 산죽과 낙우송이 많고 단풍나무가 많아 봄가을에는 상쾌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중산리 캠핑장에서 칼바위 길과 만난다. 천왕봉에서는 춥던 바람이 중산리에서는 포근하다. 2022년 신년 첫 산행은 지리산 해돋이를 만나고 그림 같은 산 그리메도 만나고 100점 만점에 100점이다. 이 기분 그대로 일 년을 살아가자.
행복은 저절로 찾아오는 게 아니고 기대치를 낮추면 나날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지리산 길에서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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