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달림의 걷기여행과 마라톤 그리고 등산
기차로 가는 기축년 새해 소백산 산행 본문
기축년 새해가 밝았다. 코로나로 올해는 새해 해돋이도 금지된 일상이 되었다. 의미 있는 겨울 산행지를 찾다가 소백산을 골랐다. 겨울산이 진수를 느낄 수 있는 산이다. 칼바람과 눈 그리고 상고대가 있는 산이다. 6시 40분 청량리발 풍기행 누리호에 올랐다. 오랜만에 즐겨보는 기차여행이다. 예전엔 참 낭만이 있었지만 코로나로 기차는 텅 비어 1/10도 좌석을 채우지 못했다. 버스보다는 한결 편히 이동할 수 있는 기차여행이다.
원주 제천 단양을 지나 죽령터널을 지나면 풍기역이다. 소백을 오르기 가장 편리한 기차역이다. 예전에는 새벽에 도착해 역에서 기다리다가 6시경에 출발하는 삼가동이나 희방사행 버스로 소백을 올랐다. 희방사행 버스는 9시 20분 영주를 출발한 25번 버스는 9시 40분에 풍기에 출발한다. 산중 마을인 풍기는 코로나 청정지역인지 좌판에 한약재를 파시는 할머니는 마스크도 끼시지 않았다. 산행의 들머리는 희방사 입구다.
들머리 초입에서 트랭글을 켰다. 9시 55분이다. 소백산의 정통 코스는 희방사에서 연화봉으로 올라 백두대간길을 따라 걸어 비로봉(1,439m)에 오른 후 천동으로 내려오는 코스지만 요즘은 보다 빨리 비로봉에 오를 수 있는 천동 코스를 즐겨 이용한다. 최단코스이기도 한 이 코스만 인파가 몰린다. 과정보다는 빨리 정상에 오르는 요즘 세태의 감성을 산행에서도 느낄 수 있다.
희방폭포까지는 지루한 길이다. 본격 산행은 여기서 시작이다. 희방폭포가 올해 혹한으로 꽁꽁 얼어 붙었다. 올해 빙벽하는 꾼들은 좋아할 일이다. 희방폭포를 지나면 능선까지 오르는 깔딱고개는 0.9km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다. 능선까지 올라서는 까끌막 길이다. 산행에서 인내심을 배우는 구간이기도 하다.
능선에 올라 서니 칼바람이 먼저 마중을 나와 잘 오셨냐고 인사를 한다. 장갑을 낀 손가락부터 얼얼해져 온다. 스틱을 쥔 손가락이 점점 시려 온다. 장갑을 업 그레이드 해야 하나 싶다. 눈길을 자주 만난다. 올해는 눈이 풍년이다. 겨울산에 눈마져 없다면 얼마나 삭막한 겨울산이 될까.
연화봉을 올라 서면 마땅히 먹을 공간이 없고 소백산의 칼바람으로 오래 쉴 곳도 없다. 쉼터에서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기다리는 시간에 빵으로 배를 채웠다. 눈 속 혹한에 먹는 라면 맛은 먹어 보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설명해도 전할 맛있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마지막 국물을 마실 때는 추위를 날려 주는 속이 따뜻한 포만감이 함께 한다.
잠시 올라서면 연화봉이다. 여기부터 백두대간 능선길이다. 칼바람이 대단하다. 이제 칼바람과 눈 그리고 상고대의 연속이다. 상고대는 안개 입자가 나무나 풀에 붙어 눈처럼 얼어 뿥은 서리다. 날씨가 추우면 추울수록 그 모양이 크고 여러 형상을 만든 자연이 만든 조각품 같다. 흔히 바닷속 산호 숲 같이 보인다. 이게 겨울 산행에서만 만날 수 있는 진풍경이다.
비로봉 가는 길에는 눈속 산호 숲 사이를 걷는 구간이다. 연화 1봉 오름길 아래는 또 한 번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다. 오름 계단에서 거침 숨을 내뿜어도 땀은 나지 않는다. 소백의 기온은 -13도, 체감온도는 -20도 아래다. 단단히 겨울복장과 장비로 싸매고 와도 조그만 틈만 있으면 찬바람은 용케도 파고든다.
능선길은 그래도 고저차가 심하지 않아 걸을 만 하다. 천동삼거리에 다다르니 천동에 올라온 산객으로 가득하다. 그간 인적이 뜸했다. 새해를 산에서 맞이하려는 소박한 산객이 많기도 찾아왔다. 단체 산악회 산행이 없어도 이 정도니 산악회가 출동을 했으면 대단했을 것 같다.
소백의 진수는 지금부터다. 비로봉으로 오르는 나무계단에서 소백을 느낀다. 가파른 계단에서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칼바람은 몰아치고 다리는 묵직하다. 그래도 올라야 한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칼바람을 맞으며 소백의 정상에 올라 선다. 1,439m 비로봉. 북으로는 멀리 선달산이 보이고 남으로는 연화봉 뒤로 천체관측소가 보인다. 바람이 너무 거센 곳이라 나무 한그루 없는 비로봉이다. 정상 인증 사진을 찍는 줄이 길다. 준비해 온 2021 풍선을 들고 새해를 축하한다. 추위에 떨고 떨다 얻는 소중한 사진들이다.
여기서 국망봉으로 가는 능선길은 칼바람을 온몸으로 안고 가는 길이다. 하산길은 천동으로 길을 잡았다. 능선에 마음을 두고 걷다보면 모든 세상의 길이 한 겹에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꼭 한길만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
잠시 왔던 길을 되돌아 천동길에는 주목군락지를 지나게 된다. 살아 천년 죽어 천연이란 주목 위로 눈이 쌓여 겨울의 진경을 보여 준다. 자연이 만든 최상의 걸작이다. 그 앞에서 추억을 남기는 산객이 저마다의 자세로 찰깍 찰깍 사진에 담는다. 이곳이 소백산의 백미다.
조금만 높이를 낮추어도 상고대는 사라진다. 미끄러운 눈길에는 국공이 '아이젠 착용 길'이라 알려 준다. 겨울산은 올라갈 때 보다 내려올 때 더 조심해야 한다. 낙상은 내려올 때 생긴다. 곳곳에 빙판이 숨어 있다.
길가에 숱한 나무들이 즐비하다. 저 나무처럼 살면 된다. '특별한 존재다. 나는 특별해야 한다.' 하는 생각에 자산의 하루하루 삶에 만족을 하지 못하고 초조해 지는 것이다. 내가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내려놓으면 삶은 자유로워 진다. 자유를 원하고 행복을 원한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살자. 삶이 별것 아닌 줄 알면 도리어 삶이 위대해 진다. 그걸 새해 산행에서 배웠다.
지루한 신장로 같은 길을 걷다보니 천동 안내소다. 다리안폭포 앞에는 허영호 기념비가 있다. 기축년 새해 산행은 올 한 해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소중한 시간이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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