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달림의 걷기여행과 마라톤 그리고 등산
설악산 단풍길 따라 대청봉 본문
설악산 단풍 소식에 서둘러 대피소를 예약하려 하니 모두 완료되고 희운각 대피소만 '대기'가 가능하다. 들머리인 한계령까지 가는 버스도 편리한 시간대인 07:30분은 만석이고 06:30은 달랑 2장만 남아 얼른 예약해 뒀다. 설악산의 단풍이 절정인 시기는 교통도 숙박도 초만원이다. 놀러 가는 것도 남보다 부지런해야 한다. 마침 대피소 '대기예약'도 풀려 얼릉 입금했다.
한계령 가는 첫 버스를 타려면 9호선 첫 전철시간으로는 연결이 되지 않아 버스로 당산역으로 가서 첫 전철을 타고 동서울터미널로 가서 버스에 올랐다. 승객들은 거의 단풍여행자들로 만석이다. 부족한 잠을 자고 있는데 벌써 인제란다. 한계령은 그새 푸르름에서 알록달록 고운 단풍으로 물들었다. 어제 일요일은 교통난에 등산로도 북새통이었단다. 주차할 데가 없고 차량이 막혀 설악동에서만 1시간 걸려 입구까지 갈 수 있었다니 난리가 단풍 난리다.
9시에 한계령을 출발할 때 설악의 찬 바람에 바람막이를 입고 나섰지만 된비알에 30분도 걷지 못하고 땀이나 벗어 배낭에 챙겨 넣었다. 만산홍엽이란 사자성어를 이럴 때 쓰라고 만들었나 보다. 빨강, 노랑으로 물든 단풍색은 짙은 색, 옅은 색이 더해 파노라마 영화가 따로 없다.
한계삼거리까지는 끊임없이 고도를 높여야 한다. 중력의 법칙을 거스리려니 숨도 차고 다리도 아우성이고 이마에서는 연신 긁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도시에서 찌든 몸속의 노폐물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 나쁘지 않다. 설악의 맑고 깨끗한 공기로 몸속의 기운을 모두 바꿀 수 있겠다. 대피소에 하룻밤 자고 가려면 코로나 이후로 대피소에서 침구를 지참해야 된다는 문자를 받았다. 침낭과 매트리스, 취사기구로 가스버너, 가스통, 코펠과 4끼분 식사와 물 그리고 간식을 챙겼더니 배낭이 꽤나 묵직하게 어깨를 짓누른다.
한 번도 쉼 없이 한계삼거리까지 올라 잠시 숨을 고르고 서북능선을 따라 끝청으로 향하는 길에는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 하는 설악산 주목이 버티고 있다. 가끔 바위 너덜지대 구간은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안전한 산행 즐거운 산행이 우선이다. 내설악은 바위와 단풍이 조화로워 설악이 더 아름다운 단풍으로 친다.
걷는다는 건 인내하고 버티는 마라톤과 많이도 닮았다. 힘들다고 쉬면 자주 쉬고 싶어 진다. 그걸 참고 걷고 또 걷는다. 오르막 길에는 심박수도 점점 올라간다. 마치 달리기에서 속도를 높일 때와 비슷하다. 눈은 온통 주변 풍경을 주며 "참! 좋다."를 연발하게 된다. 오래된 친구처럼 점점 산이 좋아진다.
법륜스님은 "잘 물든 단풍이 봄꽃보다 예쁘다."라고 하셨다. 단풍을 노년에 비유하여 노년을 예찬했다. 예쁘게 물든 단풍을 책갈피 속에 끼워 본 어릴 적 추억이 있다. 은행잎이나 단풍잎이 너무 고와 간직하다가 편지에 넣어 글을 써 보내기도 했다. 그런 아날로그적 추억은 문명의 발달로 스마트 폰이 나와 깡그리 앗아 갔다. 혼자 길을 걸으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도시의 빠름 빠름이 느리게 느리게 두 발로 움직이다 보니 마음이 여유로워 생각이 풍부해진다. 편리하고 빠름이 다 좋은 건 아니고 잃어 버리고 앗아간 게 참으로 많다.
설악산에는 설악산이 없고 대청봉, 중청봉, 소청봉이 있고 그리고 끝청봉이 있다. 서북능선 끝자락에 있는 끝청에 올랐다. 아침 7시에 한계령을 출발했다는 부부 산객을 만났다. 노년은 이 부부처럼 유유자적 같이 산길을 걷는 게 아름답게 보인다. 오늘은 봉정암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 천불동 계곡으로 내려 간단다. 체력 좋고 성질 급한 젊은이라면 하루에 걸을 거리를 이틀에 나누어 걷는다.
내려 갈때 보았네.
올라 갈때 보지 못한 꽃
그 꽃.
고은 시인의 '그 꽃'이다. 우리는 살면서 놓치는 작은 행복들이 많다. 바쁘다고 힘들다고 하지만 놓친 것들 중엔 소중한 것도 많다. 가끔 뒤돌아 보고 살펴야 한다. 늦게 올라 간다고 오르지 못한 건 아니다.
중청대피소에서 잠시 쉬어 간다. 턱시도를 입은 젊은이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만났다. 비 오는 날 대청봉 산행에서 만나 인연이 되어 부부가 되기로 언약을 하고 추억을 만들려고 웨딩 사진을 대청봉 정상석에서 찍으러 올라 왔단다. 요즘 젊은이들은 개성 있는 나만의 색깔을 찾는다.
대청봉에 오르면 속초 앞바다와 울산바위 그리고 북으로 황철봉 넘어 신선봉 뒤로 북녘 땅까지 보인다. 산이 높으니 안개가 수시로 설악을 보여 줬다 감추었다를 반복한다. 공룡능선은 그럴 때마다 바위섬이 생겼다 지워졌다를 반복한다. 설악은 바위와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준다.
중청 대피소 앞의 눈잣나무는 국립공원 관리공단의 노력으로 이제 제법 제 모습을 찾았다. 오직 이곳 설악에만 만날 수 있는 귀한 나무다. 누워서 자라 눈잣나무라 한단다. 대청봉 해돋이를 보기에 가장 좋은 중청대피소도 올 10월까지만 운영을 하고 개축공사에 들어 간단다. 공사 기간이 1년이라 하니 24년에는 만날 수 없겠다. 허물기 전에 추억을 남기려고 사진에 담아 두었다.
해가 많이 기울어진 오후 느지막 한 시간에 소청봉을 지나 희운각으로 내려섰다. 급 사면 길에 바위가 많아 만만찮은 길이다. 몇 군데는 나무계단을 만들어 그나마 낫다. 중천대피소에서 오늘밤을 보내려는 산객들의 발걸음이 힘겹고 연신 거친 숨소리가 크게 들린다. 설악산이 오라고 부르지 않아도 내가 좋아 오르는 산이다. 설악산이 좋아 한다고 말한마디 해주지 않아도 내가 좋아서 힘들어도 오른다. 사랑 받으려 하지 말고 내가 사랑해라. 그게 산이 주는 교훈이다.
희운각 대피소는 1년의 공사 끝에 오늘 처음 개소식이 있는 날이다. 첫 손님으로 첫밤을 맞는 행운이 있었다. 3층 규모의 목조 건물로 그간 대피소는 군대 침상 같았지만 이곳은 개인실로 꾸며졌다. 독립공간이라 산행이 지친 몸을 편한 쉴 수 있어 좋다. 목제향이 친환경적이라 좋다. 일찍 해가 지는 희운각 대피소는 금새 썰렁하니 쌀쌀하지만 난방도 잘 되어 포근해 좋다.
인연? 우연인가 필연인가? 옛 직장 산선배를 여기서 우연히 만났다. 인연의 끈은 참 질긴 게 몇 년 전에 덕유산 향적봉 대피소에서도 만난 적이 있다. 그래서 바르게 잘 살아야 한다. 혼밥을 하나 했더니 함께 저녁 식사 준비를 하며 그간 못다 나눈 산 이야기 꽃을 피웠다. 군대 이야기와 산 이야기는 밤을 새워도 다 못하는 이야깃거리가 많다. 밤이 되니 설악의 밤을 급격히 기온이 떨어진다. 추워지는 만큼 설악의 밤하늘엔 별들이 더욱 빛난다. 멋진 설악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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