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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달림의 걷기여행과 마라톤 그리고 등산

설악산 단풍 속살 산행 본문

국내 산행/강원도

설악산 단풍 속살 산행

산달림 2023. 10. 20. 17:16

공룡능선에서 바라본 대청, 중청봉

 

새로 지은 희운각대피소에서 꿀잠을 잘 잤다. 맑은 산공기 탓일까 피곤하다는 느낌이 없다. 산이 주는 선무을 받았다. 희운각은 서예가 최태문 씨가 1969년 2월 에베레스트 원정대원이 죽음의 계곡에서 훈련 중 밤중에 눈사태가 일어나 10명의 대원이 전원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산을 사랑하는 그가 사재를 털어 산장을 지어 설악을 찾는 산악인의 쉼터를 제공하였고 그의 호 '희운'을 따서 희운각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오래된 건물이라 이번에 헐고 새로 지어 완공된 것이다.

 

희운각과 대청봉 그리고 우측으로 중청봉

 

공룡눙선 중간쯤에 자리한 1275봉


하산길은 공룡능선길로 잡았다. 무너미재에서 직진해 바위길을 타고 오르면 신선대로 올라섰다. 바위길이 험하고 중간 탈출로가 없어 초심자는 조심해야 하는 길이다. 오죽했으면 공룡의 등과 같다 해서 공룡능선이란 이름이 붙여졌겠나. 오름내림이 심한 능선에 바위길이 많아 조심해야 한다. 초입부터 쇠봉을 잡고 용을 쓰며 올라야 한다.

요즘 설악산에는 외국인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어젯밤에도 서양인 커플이 대피소에서 자는 걸 봤고 공룡능선 초입에서 또 다른 외국인을 만났다. 역시 최고의 가을 산행지임에 틀림이 없다. 능선의 중간쯤에 1275봉이 우뚝 솟아 있어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여기를 오를 때면 숨이 많이 찬고 강한 인내심이 필요한 구간이다. 다들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며 꾸역꾸역 힘든 길을 오른다. 그 보상은 눈이 독식을 한다. 햇빛에 반사된 단풍색에 얼굴도 붉어지고 마음도 10년은 젊어진다. 가을의 공룡능선은 응달은 능선바람이 차갑게 느껴지지만 양달은 포근하다.

 

 

만산홍엽 설악의 단풍


공룡능선에도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을 때 잘 왔다. 새벽같이 설악동을 출발한 산객들이 마등령을 넘어 공룡능선을 올라오고 있다. 설악산에 유일하게 나무계단이 없는 구간이 이 길이다. 군데군데 쇠봉을 잡고 오르고 내리는 길에는 잠시 기다렸다가 가야 한다. 단풍지대를 지날 때는 추억을 담기 위해 저마다 예쁜 자세를 만드니 소녀 같은 모습니다. 뒤돌아 보면 저만치 대청봉이 양팔을 벌려  설악을 감싸 안고 있다. 공룡능선의 마지막 봉은 나한봉이다.



예전에 속초에서 인제로 오갈 때 말을 타고 넘었다는 마등령을 뒤로하고 오세암으로 길을 잡았다. 오세암으로 가는 길은 단풍이 더욱 불타고 있다. 11시부터 오세암에는 점심공양이 무료로 나누어 준다. 미역국에 밥 말아먹고 부처님 전에 들려 보시하고 그냥 내려가기는 섭섭해 4km 떨어진 봉정암으로 가기로 했다. 나 홀로 산행은 내가 갈길은 내가 정한다. 그런 홀가분함이 있어 좋다.

 

오세암의 단풍



봉정암 가는 길은 가야동계곡 언저리리를 걷다가 가야동계곡을 가로지르는 길이라 단풍이 더욱 선명하다. 이 길을 오길 참 잘했다. 나 홀로 산행은 좋으면 더 있고 싫으면 바로 떠나면 된다. 여행과 자유는 일맥상통하는 단어다. 예전에 가야동계곡을 걸은 적이 있는데 여름에도 좋지만 가을이면 가장 아름다운 계곡 중 하나로 기억하고 있다. 봉정암에서 수렴동대피소로 이어지는 용아장성은 그중 백미였지만 모두 지금은 입산 통제구역이다.

봉정암은 용아장성 능선의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어 마지막은 된비알에 설치된 계단을 힘겹게 올라야 한다. 4km를 걷는데 쉬지 않고 부지런히 걸어도 2시간이 걸렸다. 불자라면 살아생전 한 번은 참배해야 하는 불뇌사리보탑이 있고 석탑에 불사리가 봉안되어 적멸보궁으로 불상이 없는 암자다. 오늘도 봉정암을 찾는 불자들을 많이 만났다. 모두 성불하길 기원했다.

 

 

봉정암 불뇌사리보탑


이제 구곡담계곡으로 하산하는 길로 백담사까지는 10.5km를 계곡 따라 내려가야 한다. 봉정암을 오르던 깔딱 고개는 해탈고개로 이름을 바꿨는데 이름을 잘 붙인 것 같다. 개울가의 단풍은 더 색이 진하고 곱다. 늘어난 길이만큼 부지런히 재촉을 해야 서울 가는 버스시간을 맞출 수 있다. 계곡 중간쯤에는 쌍룡폭의 물줄기가 가늘다. 그래도 물을 맑아 옥빛을 띤다. 구곡담계곡은 단풍의 고운 색과 바위와 물이 있어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니 더 눈이 황홀하다.

 

구곡담 계곡의 쌍룡폭포


눈은 계곡과 단풍을 즐기며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하니 수렴동대피소다. 수렴동 계곡은 이제 제법 수량도 풍부하고 계곡미가 뛰어난다. 담과 소의 비췻빛 물은 빨간 단풍과 대조를 이루어 더욱 아름답게 다가온다. 마음 같아서는 한 며칠 쉬어 가고 싶단 생각이 드는 계곡이다.

 

단풍이 곱게 물든 수렴동계곡


영시암 쉼터에서는 백담사로 가는 길의 마지막 쉼터로 많은 산객들이 피곤한 다리를 쉬고 있다. 여기부터 길이 완만하고 폭도 넓어 걷기 좋은 길이다. 마등령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인 곰골을 초입을 지나고 저항령에서 내려오는 계고인 길골 입구를 지나면 백담사다. 만해 한용운 님의 '님의 침묵'을 쓴 곳이기도 하다. 가을이면 걷기 꾼들과 산객으로 늘 붐비는 곳이다. 백담사에서 용대리 입구까지는 셔틀버스줄이 길다. 연신 오가는 셔틀버스가 운행 중이라 걸어서 1시간 반이 걸릴 거리를 15분 만에 순간 이동을 했다.

용대삼거리에 나오니 서울 가는 버스가 오후 6시에 있다. 부지런히 걸어 다행히 버스를 탈 수 있어 다행이다. 막차가 끊어지면 자고 가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1박 2일의 단풍 따라 한 설악산행은 힘든 만큼 눈이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주변이 어둑해져 온다. 이번 산행은 설악산 단풍으로 오래 기억이 될 10월의 아름다운 추억 하나를 책갈피에 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