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달림의 걷기여행과 마라톤 그리고 등산
한북정맥 복계산 되돌아 오는 용기가 진정 고수 본문
매월 셋째 주 토요일에는 한북정맥을 간다. 이번 길은 가장 북쪽인 수피령에서 복계산을 오르고 복주산을 지나 하오현까지 16.2km의 길로 겨울철이 아니면 6시간 정도의 길이다. 연중 가장 춥고 24 절기 중 마지막 절기인 대한이지만 포근한 날씨가 산행하기엔 좋은 날이다. 강원도 산속의 눈과 기온이 변수가 된다.
9시 10분에 수피령에 도착해 기념사진을 남기고 산길로 들어서니 그간 내린 눈이 발목을 넘길 정도의 눈이 쌓여있다. 출발부터 스페츠와 아이젠을 착용하고 눈길로 들어섰다. 작년에 비해 올해는 눈이 자주 내리고 많이도 내려 겨울을 제대로 느낄 수 있지만 눈길은 더 많은 힘과 체력이 요구된다.
촛대봉까지는 고도를 높이는 구간이다. 이 정도 눈에도 속도는 20% 이상 더 힘들고 속도도 늦어진다. 촛대봉 삼거리에서 한북정맥 길은 남으로 내달려 복주산으로 이어지지만 여기까지 와서 복계산을 빼고 걸으면 섭섭한 일이다. 700m 떨어진 복계산으로 향했다. 내린 눈이 나뭇가지와 풀숲에 쌓여 겨울정취를 물씬 풍긴다. 겨울산은 뭐래도 눈이 있어야 겨울산답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산은 털 빠진 수탉 같아 볼품이 없다. 상큼한 산 공기에 청량감이 느껴지고 눈이 내려 만든 풍경은 소담스럽고 한 폭의 산수화가 된다.
오름길에는 힘이 많이 드니 체온이 올라 등줄기가 후끈하고 파커를 입은 이는 덥다고 한 겹을 벗는다. 등산은 겨울 운동치 곤 체력소모가 커서 심폐기능 향상과 지방을 태운 데는 좋은 운동이다. 눈은 모래밭을 걷는 것과 같이 힘이 더 든다.
헬기장을 지나니 복계산 정상이다. 복계산은 남한에서 민간인이 갈 수 있는 최북단의 산으로 1,057.2m로 산자락에는 매월당 김시습의 유래가 있다. 생육신의 한분인 그는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세상을 등지고 이곳에서 여생을 보낸 곳이다. 지명도 매월대, 매월당폭포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정상에서 조망도 좋다. 북으로는 추울 때 뉴스에 등장하는 최고로 추운 곳인 적근산이 북으로 있고 남으로는 명지산, 화악산까지 조망된다. 오늘은 포근한 날이라 하지만 북풍이 물아쳐 추워서 길을 서둘러야 하겠다. 왔던 길을 되짚어 촛대봉으로 돌아가니 또 다른 산악회에서 한북정맥을 종주하기 위해 올라왔다.
비교적 젊은 연령대로 여성비율이 높다. 요즘 트렌드인 국립공원 반달곰 마스코트를 달고 유명 브랜드의 배낭과 옷은 당장 히말라야 고산을 가도 될 정도로 단단히 복장을 갖추었지만 등산 실력은 뒤떨어져 외길인 등산로 정체현상이 발생한다. 마땅히 길을 질러갈 길이 없어 마음만 바쁘지만 뒤를 따라 걸었다.
올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 나뭇가지에 쌓였다가 그게 얼어붙어 있다가 강한 북풍이 불 때 언 참나무가 부러져 길을 막는다. 그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고 능선에 많은 곳이 길을 막으니 더더욱 진행이 더뎌진다. 그래도 기회는 오는 법, 내리막길에 눈을 가로질러 몇 사람씩 앞서가니 선두를 앞설 수 있었다.
좀 여유롭게 걸으니 1km를 걷는데 근 30여분이 걸린다. 오늘 걸을 거리가 복계산을 더해 18km 정도 되는데 이런 속도로 걷는다 해도 해질 때쯤 하오현 고개에 도착할 것 같다. 여성 몇 분은 점점 속도가 느려질 거고 그런 긴 길을 걸을 체력도 부족하다. 950봉에 도착하니 12시가 가깝다. 우선 식사를 하고 계속진행을 해야 할지 결정해야겠다.
산은 북쪽사면은 북풍이 불어 춥지만 남쪽 사면은 능선이 바람을 막아 줘서 바람이 없어 식사하기 좋은 장소다. 눈을 발로 밟으면서 다지면 훌륭한 점심식사 장소가 된다. 눈 위에서 먹는 점심밥은 꿀맛이다. 그만큼 힘들게 걸었으니 뭔들 맛이 없겠는가. 보온병에 넣어 온 따끈한 커피 한잔까지 더하면 최상의 점심식사다.
도저히 오늘 목표지점인 하오현고개까지 가는 건 불가능하고 1km 정도 더 가면 다목리 감성마을까지는 갈 수 있지만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아 매월대로 하산하기로 결정하고 능선길로 방향을 잡았다. 하지만 몇 분은 너무 이르다고 진행하겠다고 한다. 내리막 길도 눈이 내려 겨울철 산길은 만만찮다. 균형도 잘 잡아야 하고 미끄럼에 주의를 해야 한다. 내리막 길이 순해질 때쯤 원골계곡으로 접어든다. 얼음 아래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산이 들려주는 자연의 소리다.
계곡길의 끝에는 인가가 있지만 겨울이라 손님이 끊어지니 문을 닫고 겨울을 나려고 산을 내려갔다. 갈림길에는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후미가 늦어 남는 시간에 매월당폭포로 올랐다. 응달임에도 폭포가 2/3만 얼어 중앙으로 폭포수가 떨어진다. 옆으로 거꾸로 자란 고드름이 장관을 이룬다. 매월당 김시습은 단종 복위가 실패로 끝나자 이곳에 은거하면서 얼마나 세상을 원망하면서 이 폭포 앞에서 서성였을까 싶다.
눈발이 날리는 청석골은 오래전 SBS 임꺽정 드라마 세트장이 있던 마을이다. 계속 진행한 대원이 8명을 뺀 나머지 대원과 함께 사창리 능이버섯집으로 가는 길에 다목리에서 6명의 대원을 태웠는데 또 2명이 계속 진행했단다. 일단 늦은 점심식사를 위해 사창리로 이동해 느긋한 식사를 하면서 2명의 상황을 파악하니 지금도 진행 중이고 복주산 전에 실래임도길로 탈출하겠다고 한다.
눈이 많으니 왔던 길을 되짚어 감성마을로 내려오라 하니 "자기 사전에는 되돌아가는 건 없다"란다. 나이가 60이 넘은 분이 말로 될 일은 아니고 지금까지 살아온 몸에 밴 습관이 하루아침에 변하지는 않는다. 조심해서 내려오라 하고 음식점에서 기다리는데 밖은 어둑어둑 일몰시간은 되었는데 아직도 임도 갈림길에 도착하지 못했단다.
눈이 더 많이 쌓여있어 러셀 하기도 힘들 만큼 눈이 많아 더디다는 것이다. 두 분은 친한 지인들로 한분은 산에 다닌 경력이 많지 않아 체력이 많이 떨어졌단다. 다행히 랜턴은 가지고 있다니 그나만 다행이다. 아침 출발 때에 안전산행을 당부했지만 소귀에 경 읽기가 되었다. 그 임도길은 총 3.4km로 평소 같으면 50분이면 산을 내려올 수 있는 길이지만 눈이 쌓이고 체력이 떨어지니 진행속도가 느리고 느리다.
밤 8시가 되어 도저히 기다려서 될 일이 아니라 구출을 하러 올라가기로 했다. 버스를 실래고개에 주차하고 세 명이 따뜻한 물과 먹거리를 챙겨 랜턴을 켜고 올랐다. 밤이 되니 눈발은 더 굵어지고 바람이 더 매서워졌다. 무릎아래까지 빠지는 눈을 밟고 임도길을 올라가는 게 만만찮다. 불빛을 비추고 소리를 질러도 밤중에 들리지 않는다. 다행히 아직 휴대폰 통화는 된다.
그렇게 임도길을 올라가니 한분이 앞서 내려오는데 그분은 체력이 있고 한분은 체력이 바닥이 나서 뒤에 온단다. 먼저 내려오는 분은 스노우맨이 되어 온통 눈을 뒤집어쓰고 있다. 살아온 게 다행으로 생각하고 그제야 안도감이 온다. 10분을 더 걸어 올라가니 휘청거리는 다리로 넘어 질듯 힘겹게 걸어온다. 아침 9시 21분에 산행을 시작했으니 12시간을 넘게 산길을 걸었으니 체력방전이다. 먼저 따뜻한 물을 마시게 하니 한결 나아진다. 부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체력이 있다. 천천히 걷고 걸어 차로 돌아오니 밤 10시가 가깝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한국과 요르단과 1:2로 뒤지다가 가까스로 비긴걸 뉴스로 검색해 보면서 상경했다.
버스기사님이 배려로 마지막 전철이 끊기기 전에 도봉산역에 도착하여 겨우 탔지만 환승 전철은 끊긴 지 한참 지났다. 나이트 버스를 타고 김포공항 가는 길에 내려 집에 도착하니 새벽 2시가 넘었다. 참 긴 하루가 아닌 이틀만의 집으로 돌아왔다. 사고 없이 돌아온 게 다행이고 어쨌든 집에는 돌아왔다. 늦게 내려온 그분이 만일 왔던 길을 되돌아왔다면 그런 일은 당하지 않았을 게다.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되돌아오는 용기를 가질 때 진정한 고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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