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달림의 걷기여행과 마라톤 그리고 등산
지리종주 2일차 천왕봉 일출 보고 연하천 대피소 가는 길 본문
지리산행 2일 차는 새벽 천왕봉 해돋이 산행준비로 시작된다. 각자 하루 계산이 다르니 4시 반부터 부스럭 거리며 배낭을 챙기는 소리에 선잠을 깼다. 알싸한 겨울 산바람을 맛보고 취사장에서 나주곰탕에 떡국을 끓였다. 추운 때는 뜨끈한 국물이 최고다. 거기에 김을 넣고 날달걀 한 개면 훌륭한 한 끼 삭사가 된다.
다녀오는 길이기에 배낭을 대피소에 두고 스틱만 챙겨 랜턴을 켜고 출발이다. 밤하늘에는 그믐달이 밤길을 비춰준다. 장터목에서 제석봉을 오르는 길은 처음부터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가파른 길이다. 거기다 길은 눈으로 다져지고 녹은 물이 얼어 빙판 길이다.
제석봉은 구상나무가 무성히 자라던 숲이었다. 자유당 시절에 이곳 유지가 여기에 불법으로 제재소를 차리고 나무를 도벌했다가 그게 문제가 되자 그 흔적을 지우려고 불을 질렀다. 그래서 나무의 무덤이 된 제석봉은 인간의 물욕을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제석봉 전망대를 지날 때부터 동녘이 붉어져 온다. 하늘로 통하는 문이란 통천문을 지나면 마지막 나무계단은 북측이라 바람이 거세다. 겨울산이 내는 산울음 소리를 드고 지나면 천왕봉이다. 곧 운무 위로 해돋이가 시작되겠다. 늘 붐비던 천왕봉 표지석의 긴 줄이 없어 여유를 가지고 사진을 남겼다. 오늘도 천왕봉 바람은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세게 분다.
바람이 덜 부는 중산리 쪽 바위틈에 앉아 기도하는 마음으로 해돋이를 기다렸다. 온 세상을 붉은빛으로 물을 들이더니 불덩이가 불쑥 솟아오르는 천왕봉 해돋이는 삼대가 덕을 쌓아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다들 열심히 해돋이를 사진으로 저장을 한다. 한 해를 살아가면서 오늘의 해돋이를 보며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장터목으로 돌아가는 길은 오르막 보다 내리막이 더 조심스럽다. 장터목에서 배낭을 챙겨 지리산 종주길에 섰다. 연하봉을 오르고 촛대봉으로 가는 길에 고갯마루는 바람이 모질게 분다. 세석대피소가 보이는 촛대봉 앞의 세석평전은 신라시대에는 화랑들이 무예를 수련하던 곳으로 초창기에는 이곳에 탠트를 치고 야영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채 11시가 되지 않았지만 새벽같이 움직였고 다음 대피소가 벽소령이라 이곳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간다. 남향의 대피소라 취사장도 햇살이 들어와 포근하다. 우리 부녀만 전체를 전세 낸 듯 고요하다. 이동식으로 가장 좋은 국민메뉴는 라면이다. 거기에 누룽지를 넣어 끓이면 든든한 한 끼 식사가 된다.
낙동기맥의 시작점인 영신봉을 오르면서 벽소령에서 오는 산객을 처음 만났다. 칠선봉을 지나 선비샘으로 가는 길은 지루하고 바윗길이 많아 지루한 길이다. 남해 쪽으로 바라 보이는 산들이 켜켜이 그려진 산그리매가 아름답다. 맑은 날이면 남해바다까지 조망이 되는 곳이지만 발아래 구름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덕평봉으로 지나면 옛 산판 길을 걷는다. 동절기에는 오후 4시까지 벽소령을 지나야 한다. 새벽부터 걸었더니 딸애의 발걸음이 느려진다. 아직 산꾼이 되려면 멀었다. BAC 100 산을 하고 있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 힘이 떨어지니 자꾸만 "얼마 남았어?"라고 묻는다. 묻는다고 길이 짧아지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걷고 걷다 보면 끝이 있고 목표지점에 도착한다는 것을 언제 알까?
명선봉에 걸렸던 해가 넘어가고 이제 곧 밤이 찾아온다. 눈길이라 평소보다 20 ~ 30% 시간이 더 걸리는데 지치니 50% 시간이 더 걸리는 것 같다. 그 사이에 연하천 대피소에서 3번이나 전화가 왔었는데 전날 대피소에서 무음으로 설정해 두어 전화도 받지 못했다. 혹시나 조난당했나 싶어 전화했단다.
힘들게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을 하니 5시 21분으로 땅거미가 지려한다. 조금만 늦었으면 엄청 고생할 뻔했다. 대피소 직원이 8시 소등이니 서둘러 저녁식사를 끝내라고 재촉한다. 10시간 50분을 걸었으니 지칠 만도 하다. 일요일 여수해양마라톤이 은근히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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