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산달림의 걷기여행과 마라톤 그리고 등산

백두대간 버리기재에서 대야산을 넘어 늘재 본문

국내 산행/백두대간

백두대간 버리기재에서 대야산을 넘어 늘재

산달림 2024. 5. 5. 22:16

낙동강과 한강의 분주령인 백두대간 늘재

 

5월엔 신청한 대회도 없고 봄이 오는 백두대간길이 궁금하여 후배들과 함께하는 5월 정기산행에 동참했다. 전날 밤 11시에 시청 앞을 출발하여 밤새 달리는 차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버리재에 도착하니 새벽 3시다. 이제 무박산행을 조금은 부담스럽다. 어두운 밤에는 자는 생체리듬에 맞추어 사는 게 순리인데 자연의 법칙을 거슬리니 체력적인 부담이 있다.

깜깜한 버리기재에서 헤드랜턴만 켜고 산길을 걷는다. 보이는 건 렌턴이 비추는 내기 디딜 한평 정도의 땅뿐이다. 모두가 거친 숨을 몰아 쉬면서 산길을 걷는다. 이번 구간 중 대야산 구간은 바위가 많아 로프구간이 많다. 1km 정도 걸으니 바윗길이다. 로프를 잡고 하강하는 길이가 7 ~ 8m 정도가 된다. 내려섰는데 선두가 좌우로 길을 표시한 리본이 있는데 오른쪽으로 진행한다.

 


순간의 선택이 왔던 길로 되돌아갈 줄이야. 걷다 보니 반대로 가는 느낌이다. 어? 이상한테 하지만 오랫동안 이 팀의 선두를 믿을 수밖에. 따라가다 이상타? 하고 의자 같이 생긴 나무는 조금 전 들머리에서 오를 때 지난 적이 있는 나무라 하니 그제야 트렝글 지도를 보고 한 지역을 뱅글뱅글 돌고 있다고 한다. 이상한 느낌은 틀린 적이 없다. 힘들게 올랐던 산길을 다시 올라야 했다.

 

그리고 만난 20분 전에 내려갔던 바윗길을 다시 내려가야 했다. 대간길은 절벽을 내려서서 왼쪽리본이 붙은 길로 진행하는 게 정답이었다. 우리는 내가 알고 있는 게 맞다고 살지만 틀린 경우도 있다. 그때 맞다는 생각은 본인의 당시 기준이지 그게 진실은 아니라는 것이다.

선두로 가다가 이제 맨 꼴찌가 되었고 30여분 늦어졌다. 대야산에서 아침 일출을 보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늦으니 더 힘써 걷다 보니 힘을 더 쓰게 된다.  어둠 속에 곰넘이 봉을 올랐다. 이제 제대로 대간길에 들어섰으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대야산 가는 길의 암릉 절벽으로 대야산은 바위 구간이 많아 조심해야 하는 구간


미륵바위를 어둠 속에 지나고 내려 서니 불란치재다. 이번 구간은 큰 산으로 대야산, 조항산, 창화산을 지나고 불란치재, 밀재, 고모령, 갓바위재늘재를 지난다. 산과 재가 많다는 것은 산은 높아서 산이 되고 재는 낮아서 고갯길이 되니 높낮이가 심하고 평지길이 없어 그만큼 힘든다는 구간이다.

 

백두대간 능선길에서 만난 아침일출



촛대봉을 오르고 촛대재를 지나면 대야산 암릉구간과 마주 한다. 80m 직벽으로 자일을 잡고 올라야 하는 구간으로 가장 위험한 구간이다. 직벽구간은 너무 위험해 자일을 끊어 놓고 우회길에 새로이 자일을 설치했다. 대야산 정상에서 보려던 일출은 나무사이로 바라보았다. 알바만 하지 않았다면 정상에서 만날 해돋이다.

 

세수대야를 엎어 놓은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 붙여진 대야산 아래 용추계곡이 절경



대야산은 세수하는 대야를 엎어 놓은 형상이라 하여 대야산으로 불린다. 931m로 그리 높진 않지만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조망이 좋은 산이다. 가은 쪽의 용추골은 계곡의 바위가 일품이며 용추폭포의 곡선미를 으뜸으로 친다. 암릉구간이 많이 대간길도 조심해야 하는 구간이다. 속리산 국립공원 구역으로 용추계곡 방향은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대야산 건너편 바위에서 이른 아침식사를 하였다. 산정에서 먹는 아침식사는 꿀맛이다. 4시간 넘어 먹는 음식이 뭔들 맛이 없겠는가. 5월 첫 주라 산정에 부는 바람도 부드럽고 차다는 느낌이 없다. 그렇다고 마냥 쉴 수는 없다. 다시 부지런히 길을 재촉했다. 이제 이마에 달고 다니던 렌턴도 배낭에 넣고 가볍게 진행이다.

고래바위를 지나고 내려 서면 밀재다. 20년 전쯤에 나 홀로 백두대간을 걸을 때 괴산 청천면의 이평리는 밀재로 오르는 들머리였다. 이평까지 버스로 와서 밀재로 올랐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는 농촌도 제법 활기찬 시골이었는데 이제 노령화되어 젊은이를 찾기 힘든 농촌의 현실이다.

 

대간 능선에 불과 10m 떨어져 있는 고모치 샘이 있어 대간 종주자에서 시원한 물을 선물해 준다.

 

고모샘의 약수물


멀리 조항산이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한다. 아직은 갈이 먼 조항산이다. 먼저 바윗길을 지나 고모령까지 내려가야 한다. 고모령에는 10m 거리에 고모샘이 있어 더운 날 식수를 보충하기 좋은 고개다. 샘이 있다는 건 고개가 많이 낮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반신반의하며 샘터로 가니 물이 졸졸 흐른다. 아껴두었던 물을 다 마시고 식수를 보충했다. 산에서 솟는 샘물은 대부분 식수가 되는 우리나라 산은 큰 자랑거리다. 석회암이 많은 나라의 물은 식수로 부적합하다.

 

앞으로 조항산이 기세 좋게 떡 버티고 있다. 올라가는 길이 만만찮다. 된비알은 큰 힘을 앗아 간다. 올라가서 내려 올 산을 왜 올라 가느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지만 오름은 누구나 힘겨운 일이지만 오르고 나면 찾아오는 성취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선물이다. 무언가 하나하나를 이루어 가는 것 그게 존재의 가치는 아닐까?

조항산을 마주하고 그늘에서 목을 축이고 있을 때 인적이 뜸한 길에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잠시 긴장을 했는데 반대쪽에서 오는 산객이다. 인사를 나누고 어디로 가는지 물으니 아침에 늘재에서 올라 대야산으로 올랐다고 용추계곡으로 하산을 한단다. 가정의 달을 맞아 아내와 아들이 산을 좋아하는 아버지를 위해 늘재에 내려 주고 모자는 놀다가 느지막이 용추계곡에서 만나기로 했단다. 서로 본인들이 좋아하는 걸 하기로 했단다. 부부도 서로 좋아하는 것을 하고 만나는 것도 좋겠단 생각을 했다. 부부라서 무조건 같이 해야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대간길 조망좋은 암릉



조항산 된비알은 5월의 햇살에 많은 땀을 요구했다. 아래서 보이는 산은 조항산이 아니고 그 뒤 500m를 더 진행해야 조항산이 있다. 산은 늘 그리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지칠 때쯤 그 자리를 내줬다. 그늘을 지날 대 불어주는 산바람이 선풍기 바람보다 더 시원해 땀을 식혀 줬다.

조항산의 조는 새鳥자로 봉우리가 새 목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951m로 지나온 대야산과 앞으로 갈 청화산이 또렷이 보인다. 잠시 땀을 식히고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어차피 걸어야 할 길이라면 묵묵히 걸어가야지 누가 대신 걸어 줄수도 없고 내가 오롯이 걸어야 하는 길이다.

 

새의 목같이 생겼다 하여 부르는 조항산(951m)



길은 전망 좋은 암릉길로 이어진다. 암릉길은 바람이 불어 주고 전망이 좋아 눈이 즐거운 길이다. 오른쪽으로는 청천면의 입석리 의상저수지의 푸른 물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대간 능선길은 산은 물길을 끊지 않고 물길을 산을 넘지 않고 서로 공존해 갈길을 간다. 왼편 물길은 낙동강으로 흘러들고 오른편 물길을 한강으로 흘러든다. 대간능선길에 떨어진 한 방울의 물은 어디로 흘러 가느냐에 따라 서해바닷물을 만날 수도 있고 남해 바닷물을 만날 수도 있다. 우리네 삶도 그런 것 같다.

갓바위재까지는 줄곳 내림길이다. 769m의 고갯길로 괴산군 입석리와 문경 연천리를 연결해 주는 재다. 늘재가 포장되기 전에는 두 마을 이어주던 유일한 고갯길이었다.  옛날에는 산능선과 물길이 교류를 막는 큰 걸림돌이었다. 말씨가 다르고 풍습이 다르고 생각마저 달리하는 문화의 벽이었다. 그래서 길은 하나가 되는 소통과 교류의 시작점이 되었다.

이제 이번 산행의 마지막 산인 청화산으로 향했다. 자주 만나는 암릉이 바삐 가려는 말목을 잡는다. 가끔 보이는 봄 산나물인 참취도 뜯으며 걷다 보면 붉은빛의 병꽃나무의 꽃이 곱다. 5월에 피는 꽃으로 산에서 흔히 만날 수 있지만 꽃말이 더 마음에 든다. '내 마음속 사랑 내가 너를 기억해'란다. 수줍은 고백 같은 꽃말이 난 더 마음이 든다.

 

수달래라부른 5월에 피는 산철쭉
연달래라 부르는 철쭉 철쭉제는 연달래가 피는 시기에 열린다.



대간 능선길에도 철쭉이 피었다 우리가 흔히 잎이 피고 난 후에 꽃이 피는 철쭉은 높은 산에 피는 연철쭉을 일컬으며 진달래 같이 잎이 나고 붉을 꽃을 피우는 철쭉을 수달래라 하는데 간혹 산진달래라 부는 이도 있는데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청화산 가는 길에는 연철쭉과 수달래라 부르는 산철쭉이 곱게 펴있다.

아직은 청화산이 좀 더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부지런히 걷는데 앞에서 부부가 사진을 찍고 있다. '청화산 얼마나 남았나요.' 했더니 여기가 청화산이란다. 그러고 보니 바위 이에 '백두대간 청화산 970m란 검은 글씨로 쓴 표지석이 있다. 아직 더 멀리 있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표지석 앞에서 부부 두 분 사진도 담아 드리고 내 사진도 찍어 주셨다. 청화산은 산죽군락 지역과 소나무가 많아 겨울철에도 푸르게 보이는 산이라 하여 청화산이라 한다. 뒤 돌아보면 멀리서 대야산, 조항산으로 이어지는 대간 능선길이 뚜렷하다. 이 능선길이 한민족의 얼과 혼이 담기 등줄기로 우리의 자랑스러운 등줄기 백두대간이다.

 

백두대간 청화산 970m로 이번 산행중에 가장 높은 산


이제 남은 길은 하산길 2.6km로 늘재까지 줄곳 내리막길이다. 오름길에서 너무 힘들게 올라왔기에 내리막길이 많이 반가웠다. 남은 물을 탈탈 털아 마셔주고 내리막길을 가볍게 출발했다. 가끔 줄이 달린 바위구간 길도 있었지만 내려 갈수로 길이 편해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마지막 침엽수 숲길을 걷기 좋은 길이었다. 늘재가 가까웠을 때쯤 우리가 타고 온 새벽에 보낸 빨간 버스가 보이니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늘재에는 화강석으로 10m나 될 정도로 커다란 '백두대간'표지석이 설치되어 있고 늘재를 경계로 분수령 낙동강, 한강 표지판이 있다. 이곳에서 낙동강과 한강으로 갈리는 분수령이 되겠다. 새벽 3시 12분에 출발해 9시간 54분 긴 산행이었다. 매 순간 한 고비를 넘기는 게 산행의 맛이고 멋이다. 여름 어느 날 다시 백두대간길에서 다시 서 있는 모습을 그려보면서 갈증을 달리기 위해 챙겨 온 맥주를 한 컵 가득 따라 쭉 넘기니 이것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이 맛에 산행에 산행을 하나보다. 시원한 맥주를 한잔을 마시고 그걸 행복으로 생각하다면 많은 땀을 흘렸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