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달림의 걷기여행과 마라톤 그리고 등산
백두대간 고치령에서 죽령 트레일 런 본문
백두대간 팀들과 가을 산행을 가는 날이다. 이번 구간은 소백산권인 영주 고치령에서 소백산 비로봉을 지나 죽령까지 트레일 런으로 달려 보고 싶었다. 백두대간 길은 찾는 이가 많아 길이 잘 나있는 편이고 소백산 구간은 육산으로 암릉이 없는 구간이다.
전날 시청 앞을 밤 11시에 출발하여 들머리인 고치령에서 새벽 2시 반에 도착해 산행에 나선다. 한창 때는 무박 산행도 부담이 없었지만 이제 잠을 잘 자지 않으면 피곤하다. 수면 안대를 착용하고 흔들리는 버스에서 잠을 자 보려고 최대한 노력했지만 숙면은 어려웠다.
일출시간이 3시간 반이나 남은 시간에 산행을 시작한다. 고치령은 영월로 넘어가는 고개로 아직도 오지라 버스는 다니지 않고 아랫마을인 좌석리에서 걷거나 그곳 이장님께 부탁하여 수고비를 드리고 트럭을 이용해야 한다. 트럭 적재함에는 최고 15명으로 2번 왕복을 해야 한다. 다들 먼저 출발하려고 첫 번째 가는 트럭을 타려고 서둔다. 야간 산행시간을 최대한 줄이려고 한번 다녀온 차를 탔다.
밤중에 고치령 기온은 19도로 약간 쌀쌀한 느낌이지만 달리면 금방 더워진다. 30여분 앞서 간 분을 따라 2시 46분에 출발했다. 어젯밤에 슈퍼문이 떴다더니 오늘도 달은 휘영청 밝다. 대간길로 들어서니 나무숲은 헤드랜턴 불빛만 비 춘 곳만 보며 달렸다. 마당치까지는 줄곳 오르막 길이라 걷뛰가 된다.
산길은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 호흡이 허락하는 만큼 다리 근육이 버티어 주는 만큼만 달려간다. 2km를 지나면서 앞서 간 분을 앞서 달릴 수 있었다. 2.8km 지난 마당치를 지나서 4km 지점쯤 달리니 앞서 걷던 분을 앞설 수 있었다.
지금부터는 나 홀로 자신과 대화를 하며 달린다. 이 구간은 인연이 많은 구간이다. 15년 전쯤 백두대간 통일마라톤을 릴레이 식으로 달렸는데 그때도 이구간이 내가 달린 구간이다. 당시는 반대로 죽령에서 도래기재까지 달렸다. 국공에서 설치한 거리표시 안내표가 유일하게 내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연화동 갈림길을 지나 늦은맥이는 9km를 달려서 도착했다. 이곳은 어의곡리로 내려가는 길이라 겨울철 산행 때는 자주 이용하는 길이다. 대간길 허리를 타고 달리면 상월봉을 지나면 국망봉이다. 이제야 사방이 밝아져 온다. 이 구간은 나무가 적고 숲이 없는 초원지대를 지날 때는 밤이슬이 내려 트레일화가 다 젖는다. 등산화는 고어텍스 재질이지만 트레일화는 가볍게 만들기 때문에 통풍이 잘 되어야 하니 금세 젖는다. 신발은 물론 양발까지 젖는 약점이 있다.
비로봉을 향해 가는 길은 알프스 초원을 닮았다. 겨울에는 칼바람이 심하게 부는 구간이지만 여름날은 바람이 없이 국공에서 설치한 나무계단을 걷는 길이다. 비로봉에서 아침 해돋이를 만나러 온 분들이 어의곡으로 내려가려고 길을 나선다. 겨울철에는 비로봉 표지석 앞에 인증 사진을 찍으려면 줄을 서야 할 정도인데 여름음 인적이 뜸하다. 소백산은 역시 겨울산인가 보다.
우측으로 주목 군락지를 지나는 길은 예전엔 민둥산이었지만 국공에서 생태 복원을 위해 노력한 결과로 칼바람 속에서도 색생이 회복되고 있다. 자연은 그냥 그대로만 둬도 복원되고 치유된다. 인적도 없는 숲길을 홀로 달려 제2연화봉을 먼저 만난다. 연화봉 아래로 천문대가 자리 잡고 있고 오른편 멀리에 새로 지은 소백산 대피소와 기상대 시설물이 높이 솟아 있다. 그쪽이 내가 갈 길이다.
눈길만 걷다가 숲길을 달리니 소백의 얼굴이 낯설다. 이번에 준비한 물이 포카리스웨트 500ml와 물 300ml만 준비했는데 아껴 마시니 부족하지 않다. 여름 산이지만 그간 많이 선선해진 것도 도움이 되었다. 산은 늘 물이 부족해 갈증을 견디어야 한다. 그렇다고 무거운 물을 많이 갖고 뛰기는 부담이 된다. 평소에도 물을 많이 마시지 않고 갈증은 잘 견디는 체질이라 산 달리기에는 큰 도움이 된다.
연화봉에 올라 서면 희방사로 바로 내려가는 길이 있고 죽령으로 가는 길이 내가 갈 길이다. 여기서 7km로 대부분 거친 시멘트 길을 달려야 한다. 반쯤은 햇살을 받으며 달리는 길이다. 천문대 관리를 위해 개설한 도로로 근무자들의 출퇴근과 장비 반입 등을 위해 사용되는 도로다. 여기부터 7km는 제대로 된 도로를 만나지만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가는 길이기도 하다.
2.5km 정도를 달리면 소백산 대피소를 지나게 되고 나머지 4.5km는 급사면 내리막길이다. 바닥도 거친 시멘트 길이라 피로도가 높다. 능선을 돌고 돌아 내려서면 경상북도와 충청북도 경계 고개인 죽령이다. 영남 제1관문이란 현판이 걸린 정자는 죽령옛길에 있고 앞에는 주막이 있다. 예전에 한양으로 가던 그 고객길이다.
이제 9시, 후미가 올 때까지 많이 기다려야 하겠지만 오랜만에 트레일 런으로 나 홀로 즐겁게 달렸다. 산은 일반 도로와 달리 달리는 맛이 색다르다. 너무 빨리도 아닌 적당한 나만의 속도가 필요한 게 산악 달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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