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달림의 걷기여행과 마라톤 그리고 등산
경기옛길 봉화길 마지막길 8, 9길 자채방앗길과 설성산길 본문
9월이 가기 전에 봉화길을 끝내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섰다. 첫 전철을 타고 2번 환승 후에 부발역에 내렸다. 수도권은 전철이 연결되어 접근이 빠르고 쉽다. 봉화길은 경강선과 연결이 되어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다. 부발역은 지난번 남천추길을 끝내면서 들렸고 골내근길을 걷기 위해 찾았으니 그간 두 번을 지난 길이라 낯이 익었다.
봉화길 제8은 자채방앗길로 황금들녘의 비경을 찾아가는 결실의 길로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과 무우정, 성호호수연꽃단지를 지나 설성면행정복지센터까지 20km의 길이다. 부발을 시골치곤 꽤나 큰 읍소재지로 인근 sk하이닉스가 있어 유동인구가 많아 제법 활기찬 곳이다. 영동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어 교통도 편리한 곳이라 작은 도시를 연상케 한다.
서둘러 나오느라 아침식사를 먹지 못해 더운 날 긴 길을 걸으려면 아침식사를 해야 긴 길을 걷고 달릴 수 있다. 8,9길 두 개의 길의 길이가 36km나 되니 체력소모가 많을 것 같다. 인구가 많은 부발읍은 아침식사를 하는 식당이 여럿 있어 순대해장국집에 들러다가 길을 나섰다. 오른편으로 높은 타워 같은 게 보이는 게 SK하이닉스를 바라보고 영동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하고 계속 큰 도로인 337번 지방도로를 따라간다. 길꾼이 제일 싫은 게 이런 도로를 따라가는 것이다. 어디 뒷길로 돌아가더라고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길로 변경해 주면 좋겠다 싶다.
큰 길가에 대월농협미곡종합 처리장 앞을 지난다. 요즘 벼 수확철이라 정미소가 바쁘게 돌아간다. 초지사거리 앞 Cu편의점이 마지막 간식과 물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이며 종점인 설성면행정복지센터까지는 식당이나 편의점은 없다. 기독교역사역사박물관을 지나서야 시골길을 달릴 수 있었다. 들판을 들어서기 전 봉화길 안내표지의 방향이 반대로 되어 있다 혹시나 해서 방향 데로 갔더니 쓰레기 처리장으로 길이 막혔다. 돌아 나와 반대방향으로 가니 이제야 들길로 접어든다. 앞으로 작은 구릉 같은 드넓은 고구마밭이 펼쳐진다. 이천은 쌀도 유명하지만 고구마도 많이 재배한다. 고구마 밭 아랫길은 어제 내린 빗물이 고여 풀이 자란 가장자리로 조심해서 걸어야 하는 길이다. 전혀 배수가 되지 않는 길이다. 작은 그늘이 있는 나무를 지나니 수풀이 무성히 자라 반타이즈를 입고 왔더니 살갗에 잡풀이 스쳐 지나가는 게 영 느낌이 좋지 않은 관리가 되지 않는 길이다
고갯길에서 만나는 우사는 텅 비어 있는 게 요즘 소값이 떨어져 사료값이 나오지 않아 키울수록 손해라더니 여기도 소사육을 접은 듯하다. 구시리 마을을 지날 때는 오래전 보았던 나무대문에서 향수를 느꼈다. 한때는 빛났던 집인데 쇠락한 농촌의 현실을 보는 것 같다. 그때는 출세하는 길은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고 농촌에서는 현금을 만질 수 있는 건 전답을 팔고 심지어 소를 팔아 등록금과 하숙비를 마련했다. 그래서 붙여진 대학 졸업장이 우골탑이라 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해도 출세길을 멀기만 했고 그냥저냥 먹고살기 바쁜 월급쟁이로 끝나기 일쑤였다. 돈 없는 가정의 여학생들은 중학교를 졸업하면 도시의 공장으로 취직을 했다. 받은 월급을 꼬박꼬박 부모님께 보내 줬고 그 돈으로 전답을 쌌다. 이제는 역전이 되어 예전에 힘들게 사시던 분들이 더 잘 사는 경우도 많다. 살다 보면 음지가 양지되는 세상은 돌고 돈다.
옛 생각을 하며 달리다 보니 구시리 마을을 지나나 양화천 둑방길을 따라간다. 기온은 달아 올라 달리니 땀이 줄줄 흐른다. 햇볕 가리게 모자를 쓰고 소실점이 보이는 길에서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달렸다. 무우정이 나올 때가 되었는데 보이질 않는다. 경기옛길은 Gps를 따라 가기에 굳이 중간스탬프를 찍지 않더라도 인증을 받기에 다시 걸을 일은 없지만 자채란 이천지방의 고유쌀 품종으로 밥맛이 좋아 임금님 수라상이 올리는 진상미를 재배하는 곳이라 하여 둘러고 가려했는데 지난 것 같다.
둑방길 옆으로는 비닐하우스 파이프를 이용한 애호박 재배 농가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이제는 소득이 높은 작물을 재배하는 게 농촌의 현실이다. 애호박도 그런 품종 중 하나이다. 양화천을 따라가는 길은 끝 간 데 없이 올라가는 인내력 시험을 하는 길 같았다. 둑방길에 나무가 차량 통행에 지장이 있어 전정을 하여 'ㄱ'자를 돌려놓은 듯한 나뭇가지를 잘라 멀리서 보니 그럴싸하다. 지루하던 양화천을 벗어나 창전마을 가기 전 나무그늘이 좋아 잠시 쉬고 있으니 역방향으로 걷는 옛길 걷기꾼을 만났다. 지금까지 봉화길에서 만난 유일한 분이다. 홀로 걸으시는데 가벼운 배낭과 발걸음이 재빠르다. 길 가장자리에 사과나무를 심어 열매가 제법 많이 달렸고 붉을 내며 잘 익어 가고 있는 게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 맞다.
지루한 양화천 상류 곧은 길을 달라는데 진이 빠졌는데 쉬면서 간식을 먹었더니 다시 달릴만하다. 아직 더위는 물러간 게 아니다. 도로를 건너서 창천마을로 접어드니 장독을 뒤집어 울타리를 만들었다. 생각을 달리하면 창조의 힘은 커진다. 성호호수연꽃단지 후문으로 자채방앗길은 이어진다. 벌써 연꽃은 지고 잎도 말랐다. 6~8월에 오면 연꽃이 장관이란다. 말라 비틀어진 연꽃 단지사이 잔디길과 데크길을 거쳐 정문으로 나왔다. 두어 군데 포토존을 만들어 추억을 남길 장소를 마련해 두었다. 국내 3대 연꽃단지로 두물머리에 있는 세미원과 시흥 관곡지와 더불어 성호연꽃단지라 부른다는데 국내가 아니라 경기도 3대 연꽃단지가 아닐까 싶다.
자채방앗길의 8길 종점인 설성면행정복지센터 앞에 도착하니 점심때가 되어 여기를 지나면 식사할 곳이 없어 점심식사를 하고 출발했다. 봉화길의 마지막 9길인 설성산성길로 들어섰다. 총 거리 16km로 성호 저수지를 지나 설성산을 올랐다가 이천 선읍리 석불입상을 지나면 장호원의 청미교사거리까지다. 오후가 되니 햇살이 따갑게 내려 쬔다. 장능1리(장수골) 마을 안내 표시를 지나니 성호저수지로 가는 길이다.
성호저수지 옆길 밤나무 아래를 지날 때는 알밤이 꽤나 많이 떨어져 있다. 인적이 뜸하고 아직 이 구간을 걸은 걷기꾼이 지난 적이 없었나 보다. 그냥 가기가 아쉬워 잠시 주웠는데 비닐봉지 하나가 된다. 무거우면 달리기가 불편하지만 그냥 두고 갈 수도 없어 배낭에 넣었다. 성호저수지 낚시터에는 낮에도 낚시꾼이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다. 정적인 걸 좋아하는 사람은 기다림이 좋겠지만 동적인 걸 좋아하는 사람은 딱 질색이다. 좋아하는 게 다르니 맞고 틀림의 문제는 아니고 다름을 인정한다. 그들이 나를 보면 더운 날 달리는 게 미친 짓으로 보일 게다.
신필2리 마을을 지날 때는 마을회관 앞에 정자가 있어 쉬어 가기 좋은 곳이다. 어르신들도 뜸하고 마을이 조용하다. 설성산 중턱에는 위성전파감시센터의 둥근 안테나가 멀리서도 눈에 띈다. 여기가 지난번에 우주로 쏘아 올린 다누리 위성과 교신을 하고는 곳이란다. 설성산 오름길에는 초파리가 땀냄새를 맡고 달려들어 상당히 귀찮았다. 정상에는 정자와 정상표지석이 있지만 조망은 그리 좋지는 않다. 내리막을 빠르게 달려 내려오니 신흥사가 자리 잡고 있다. 범종각이 정취 있게 지었다. 인기척도 없고 개만 혼자 절을 지키고 있다. 약수가 시원해 손수건도 헹구고 세수도 하니 한결 개운하다. 이곳에는 삼국시대 쌓아 다는 설성산성도 복원해 놓았다. 찻길을 따라 내려오면 선읍리 석불입상을 만난다. 인근 논에서 불상이 발견되어 이곳으로 모셨지만 불상의 머리 부분은 찾지 못해 새로 조각해 올려 놓았다. 여기에 설상산길 9길의 스탬프함이 있다.
청미천으로 가는 길에는 음죽현 쌈지공원을 만났다. 붓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크게 눈에 띈다. 연이어 시멘트로 하수도 관을 생산하는 공장 앞을 지났다. 꽤나 큰 공장으로 길 옆으로 공장에서 만든 하수도관을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 설성천과 나란히 달리면 3번 국도를 지난다. 이제 청미천이 가깝다. 선읍1리 들판을 지난다. 풍계쉼터 앞을 지나면서 쉼터에 동네분들이 몇 분 쉼터에 더위를 식히고 있다. 길가에는 솟대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솟대는 솟다와 막대의 합성어로 하늘 높이 솟은 막대를 뜻하며 새가 사람과 하늘을 이어 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제 지루한 들길을 달려야 한다. 벼가 익어 누런 벌판을 달리는 건 좋은데 햇살이 너무 따갑다. 이천 들판길은 지루하고 길었다. 벼가 잘 익어 가는 들판을 달려가니 청미천 둑방길을 따라간다. 그리곤 청미천으로 내려가니 경기 둘레길 걸을 때 만났던 청미천 길을 다시 만났다. 건너편은 충청도로 경기도와 충청도 경계의 하천이다. 그 길을 따라 올라 가면 Ktx중부내륙선 철교 아래를 지나면 저절로 자란 황화코스모스가 장관을 이루는 넓은 꽃밭을 만났다. 온통 주황색 꽃밭이 길게 펼쳐져 있고 그 끝에 청미교가 보인다. 청미교 사거리가 봉화길 9길인 설성산길의 마지막 종점이다. 청미교에 오르면서 308km의 경기옛길 봉화길을 마쳤다. 더위가 사라지기 전에 덜리다 보니 무더위로 힘든 때가 많았다. 시원한 가을길에 달렸으면 좋았을 것 같지만 끝내고 나면 그간 힘들었던 건 다 잊히고 아름답게 보인다. 그래서 인생도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 했다. 이젠 멀리 보고 살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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