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달림의 걷기여행과 마라톤 그리고 등산
김삿갓의 풍류가 깃든 마대산 본문
간밤에 날씨는 1월의 날씨답게 추웠는지 얼었던 물통의 물을 녹여서 탠트 안에 놓아두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다시 물이 꽁꽁 얼었다.
하지만 침낭 속은 따뜻하고 포근해서 전혀 추위를 느끼지 못하였다. 6시경 일어나 우선 탠트 속의 공기를 버너를 피워 데우고 침낭을 정리하며 산속에서 하루일과를 시작하였다. 우선 찌게를 끓이고 어제 저녁 지어 놓은 밥을 데워 먹는데 통상 아침 출근할 때는 한공기면 족할 식사량이 3공기를 비우니 역시 산에 오면 먹어야 힘을 쓰나 보다.
어제 저녁에 리베로님이 많다고 하던 밥도 코펠 바닥이 보이고 바닥에 남은 누룽지는 숭륭을 만들어 깨끗이 비웠다. 산에 오면 왕성해지는 식욕을 감안하면 산행 때 쌀을 준비할 때는 평소보다 많이 준비해야 모자라지 않는다. 2명이 좁은 탠트에서 짐을 챙기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 될 것 같아 배낭을 꺼네 탠트 밖에서 꾸리니 휠씬 빨리 배낭을 꾸릴 수 있다.
탠트를 철수하니 간밤에 우리가 잤던 눈위가 단단하게 굳어 있고 텐트플라이 끝에는 고드름이 얼었다. 간밤에 밖의 날씨는 상당히 추웠나 보다. 서서히 어두움이 걷히는 7시 30분경 2일째 산행을 위하여 다시 배낭을 메고 출발을 하였다.
마대산(1,052m) 개념도
간밤에 잠시도 쉬지 않고 바람이 불더니 아침까지 계속 매서운 바람이 분다. 그리고 서서히 동녘에서 먼동이 터온다.
곧 일출이 시작 될 것 같다. 늘 일출은 장엄하고 숭고하게 느껴 지는건 탄생의 신비로움 탓일까? 매일매일 하루의 탄생을 알리는 일출의 모습은 장엄하다. 매일 동쪽에서 태양은 떠오르지만 도시민이 일출을 염두에 두고 사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산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황홀감을 느낀다. 그게 하루 탄생의 시작이기 때문일까?
늘 이런 경건한 마음으로 하루에 최선을 다한다면 얼마나 알뜰한 삶이 될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일출이 시작되기 전 여명
2007년 1월 14일 형제봉 일출
곧 형제봉 능선에 올라섰고 단양방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모질게 몰아친다. 형제봉은 접근이 쉽지 않는 오지의 산으로 남아 있는건 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은 무척 불편하고 차량으로도 접근하기가 만만하지 않다.
그래서 아직도 오지로 남아 있고 간혹 오지를 탐사하는 꾼들의 발걸음만 이어지고 있지만 표시판이나 표시리본이 제대로 붙어 있지 않다.
주로 형제봉은 영춘방면에서 동대리로 접근을 하는데 검우실에서 좌 우측 계곡을 이용하여 형제봉 능선에 오른 후 다시 계곡으로 내려가는 그런 코스를 선택한다.
형제봉은 특별히 표지석도 없고 정상은 두개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게 형제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형제봉 능선의 암봉들
우리는 형제봉 우측능선을 타고 좌측으로 휘어져 베틀제로 향하게 된다. 첩첩이 병풍처럼 쌓여 있는 산 넘어 산은 온통 산속에 묻힌 느낌이다.
능선으로 이어진 길이 미심쩍어 지도를 꺼내 능선을 확인하는데 지형이 잘 확인 되지 않아 확인해 보기로 하였는데 알바 할 생각으로 주능선인 듯 하여 따라 내려가니 아무래도 지릉인 것 같아 10여분 알바하고 되돌아와서 지도를 보고 주능선을 찾았다.
산행에서 길을 잘못 들었을 때 힘들어 걸어 온것이 아까워 되돌아 가는걸 망설이게 되는데 백두대간을 하면서 체득한 것 중 하나가 길을 잘못들어 섰을 때는 망설이지 말고 갔던 길을 되돌아 오라는 것이다. 그래도 그게 빠르다는 것이다.
곧 나타날 것 같은 베틀재는 하나의 봉을 넘으면 또 하나의 봉이 나타나길 수차례하고 드디어 의풍과 영춘을 잇는 도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11시경 베틀제에 도착하여 능선 좌측으로 떨어져 다시 우측 능선으로 붙어 가파른 오르막길을 따라 마대산으로 오르는데 잘 조성된 2기의 묘를 지나 산불감시초소까지의 길은 무척 가파르다. 베틀재는 오지의 고개답게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한가한 길이었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자 비로써 완만한 능선으로 길을 재촉하여 돌아서니 마대산 정상이 보인다.
마대산(1,052m)은 충청북도와 강원도의 경계의 산으로 김삿갓묘로 유명해진 산이다. 정상에는 마침 등산을 온 산행객들이 있어 처음으로 둘이서 기념사진을 찍고 오후 3시 10분에 있는 영월행 버스를 타기 위해 하산을 서둘렀다.
마대산 정상(1,052m)
마대산 정상 표지석
마침 점심때가 되어 남은 삼겹살과 라면으로 점심을 할 요량으로 양지쪽에 버너를 피웠다. 그간 물을 지고 다니며 사용했지만 물도 바닥이나 눈을 녹여 라면을 끓였다.
겨울에 눈 녹인 물은 그리 맑지는 못해도 어디서든 구할 수 있어 동계산행에서는 눈을 녹여 식수로 사용한다.
여유롭게 소주도 한잔씩하고 한결 편한 마음을 가진 것은 이제 하산길만 남았다는 여유로움과 남은 길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둔이계곡으로 내려 서는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서니 양지쪽에 김삿갓 생가가 있다. 지난 여름수해로 한쪽 기둥은 부러지고 문은 널 부러져 있으며 아직 보수가 되지 않았지만 툇마루에는 방명록이 있고 유행가 가사에 나오는 “죽장에 삿갓”이 마루에 전시되어 한번씩 써볼 수 있어 잠시나마 방랑시인 김삿갓이 되어 본다.
김삿갓 생가터 방명록에 서명 - 수마로 기둥이 부러지고 문짝이 떨어 졌다.
죽장에 삿갓!
버스정류소인 노루목 까지는 계곡으로 이어지는데 지난 여름 수마가 할키고간 상처가 아직도 복구가 되지 않고 여기저기 나무와 바위들이 나딩굴고 있어 수해의 상처가 심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늘 산행을 끝내면서 당초에 목표한 산행계획을 잘 끝내면 기분이 상쾌하고 성취감이 크다. 이번 산행처럼 형제봉에서 끝낼 산행을 마대산 산행까지 산행을 끝내어120% 초과 달성하여 기분은 배가 된다. 어렵고 힘든 산행을 끝내고 느끼는 뿌듯한 만족감은 골이 깊으면 산이 높듯 고생한 만큼 성취감도 크다.
김삿갓묘는 양지쪽에 잘 관리되고 있고 부근에는 사당과 생전의 詩들이 조각으로 전시되는 등 조선시대 한때를 풍미했던 그의 체취를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다.
김삿갓 묘
성황당
죽장에 삿갓
기념비
죽장에 삿갓
詩비
안내도
浮浮我笠等虛舟(부부아립등허주: 가뿐한 내 삿갓이 빈 배와 같아)
一着平生四十秋(일착평생사십추 : 한번 썼다가 사십 년 평생 쓰게 되었네.)
牧竪輕裝隨野犢(목수경장수야독: 목동은 가벼운 삿갓 차림으로 소 먹이러 나가고)
漁翁本色伴沙鷗(어옹본색반사구: 어부는 갈매기 따라 삿갓으로 본색을 나타냈지)
醉來脫掛看花樹(취래탈괘간화수: 취하면 벗어서 구경하던 꽃나무에 걸고)
興到携登翫月樓(흥도휴등완월루: 흥겨우면 들고서 다락에 올라 달구경 하네.)
俗子依冠皆外飾(속자의관개외식: 속인들의 의관은 모두 겉치장이지만)
滿天風雨獨無愁(만천풍우독무수: 하늘 가득 비바람쳐도 나만은 걱정이 없네.)
위 시는 김삿갓이 자기가 쓰고 다니는 삿갓의 고마움을 시원하고 섬세하게 표현해 주었던 싯귀다.
늘 마침표는 하산주로 끝냈듯이 오늘은 김삿갓의 풍류를 찾아 마시는 막걸리 한사발과 산초기름으로 구운 두부를 안주삼아 한잔씩 나누며 무사산행과 완등을 자축하였다.
산행후 마시는 막걸리 맛은 최고다. 산초 기름에 구운 두부맛도 맛있었다.
섶다리
섶다리에서 잠깐
오지에서만 느끼는 노루목의 산천은 아직도 섶다리가 있는 한적한 농촌의 겨울이지만 여름철엔 도시민들로 북적거림이 심할 것 같다.
인심좋은 할머니가 덤으로 주시는 공기밥을 깨끗이 비우고 영월로 나가는 버스에 오르니 버스안에도 김삿갓 그림이 보인다.
버스에 붙은 김삿갓 그림
영월발 서울행 우등버스 시간표(2007. 1. 14)
영월 버스터미널 연탄 난로
고씨동굴앞을 지나 영월에 도착하니 서울행 우등버스가 기다린다. 상경길에 맥주 한캔씩 마시면서 산행이야기를 나누며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니 오후 7시다.
주일임에도 2시간 반만에 서울에 도착하니 오늘은 일찍 귀가해 옆지기에게도 점수 따게 생겼네.
그런데 추운 소백산에서 서울로 돌아오니 서울은 참 포근하게 느껴진다. 그게 추위에 적응된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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