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달림의 걷기여행과 마라톤 그리고 등산
외씨버선길 11구간 마루금길 본문
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겨울산이 그리웠다. 외씨버선길의 나머지 구간 중 영월의 마루금길은 겨울산으로 손색이 없는 길이다. 어래산과 백두대간상에 선달산이 있는 구간이다.
서울에서 가는 빠른 교통편을 찾아도 첫 버스가 8시 30분이다. 영월까지는 2시간이면 도착을 한다. 마루금길 들머리인 김삿갓문학관으로 가는 버스는 11시 40분에 있다. 기다리는 시간에 시간 절약을 위하여 서부시장에 들러 시장 순대집에서 우거지 순댓국으로 점심을 미리 먹었다. 시골 시장의 인심은 넉넉해 양도 푸짐하다.
영월은 작년 가을에 2달 살기를 한 곳이라 지리는 익숙하다. 추억을 더듬으며 가는 시골버스에는 손님이 달랑 2명이다. 옥동에서 한분이 내리고 나니 나 홀로 버스를 전세 내어 노루목에 도착했다. 겨울 산속 바람은 차갑고 썰렁하다. 외씨버선길 영월 객주는 2월 말까지 문을 닫는다는 안내가 있다.
산에 들면 물이 귀해 먼저 식수를 챙기고 산을 오른다. 처음부터 된 비알이 시작된다. 내리막은 없고 오름만으로 곰봉 삼거리까지 올라야 한다. 마루금 길이 15.4km라 늦은 시간에 시작을 했으니 산중에 하룻밤을 탠트 속에 자야 한다.
먹을 꺼리, 잘 거리, 입을 것을 챙기고 겨울철에는 동계 장비를 챙겨 넣었더니 무게가 만만하지 않다. 하나라도 더 챙겨 가면 편하지만 무거운 짐을 지고 가야 하고 빼고 가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중도를 찾기가 쉽지는 않다. 살아가면서도 한 개를 얻으면 한 개를 버려야 하는 일에 선택을 망설이게 한다. 시이소에 한쪽이 올라가면 반드시 한쪽은 내려와야 하는 이치다. 둘 다 내려오고 둘 다 올라가는 시이소는 없다. 그 이치를 알면 훨씬 선택이 쉽다.
지난번 내린 눈은 양지는 녹았지만 음지에는 그대로 쌓여 있다. 겨울과 봄의 중간인 계절이다. 배낭을 무겁게 지고 오를 때는 쌀쌀한 날이 좋다. 그건 땀이 나지 않아 갈증이 심하지 않아 좋다. 땀을 흘리면 흘린 만큼 물을 마셔야 하지만 땀을 적게 흘리면 물을 적게 마셔도 된다. 오늘은 추워서 덕 본 날이다.
된비알은 1km를 걷는데 30여분이 걸린다. 달릴 때는 늦어도 5분이면 갈 거리를 된비알과 무거운 배낭으로 좀체 속도를 높일 수 없다. 1km 거리를 어떻게 걷느냐에 따라 시간은 달라진다. 만약 에베레스트의 8,000m라면 100m를 걷는데 30분이 걸리기도 한다. 시간과 거리는 그때그때 달라요다.
외씨버선길은 매 구간마다 2군데 인증 지점에서 본인의 얼굴이 나온 사진을 찍어야 지나갔음을 인정받는다. 그중 한 군데가 곰봉 삼거리다. 첫 쉼을 하면서 얼굴을 디밀고 인증 지점과 같이 사진에 담았다.
인적이 뜸한 이길은 나 홀로 걷는 길이다. 워낙 한적한 길이기도 하지만 코로나로 관광버스의 산행자 모객이 되지 않으니 여행업계가 많이 힘들다 한다. 등산인구도 많이 줄어들었다. 홀로 걸으면 나만 집중하고 주변 풍경에 마음을 맡기고 걷는 길도 좋다. 요즘은 GPS로 된 앱이 많이 나와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한 발은 강원도 또 한 발은 경상도 땅을 밟으며 걷는 마루금 길이다. 어은동 고갯길은 예전 보부상이 걷던 고갯길이다. 그때는 나무도 더 많고 짐승도 많았을 텐데 어찌 산길을 넘었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다음은 삼도봉이다. 지리산에서 반야봉과 피아골 고개 사이에도 삼도봉이 있고 여기도 있다. 강원 영월, 충북 단양, 경북 영주가 만나는 곳이다. 1,000m가 넘는 마루금은 연신 오름과 내림을 반복한다.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 위의 길에서 정확히 비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비기는 건 그 길을 다 가고 나서 돌아보면 길은 결국 평평하다. 그걸 모르고 오르막에서 힘들다고 투덜댄다.
어래산이다. 영월로 귀양을 온 단종이 다녀갔다는 말도 있지만 어린 나이에 이런 험준한 산을 다녀 갔다는 건 지어낸 말 같다. 헬기장이 있고 화강석에 글씨를 새겨 놓았다. 이제 올랐으니 내려가야 한다. 산이 높으니 눈이 점점 많아 발이 푹푹 빠진다.
마루금길에서 유일하게 중간 탈출 길이 있는 곳이 회암령이다. 2.5km를 골짜기로 걸어 내려가냐 민가를 만날 수 있다. 여기에는 양심 장독대가 있다. 식수를 구할 수 없는 길이기에 장독 안에는 500ml 생수병이 저장되어 있는데 꽝꽝 얼었고 더러는 빈 통도 있다. 이런 산중에 양심 장독대가 있다는 게 신선한 생각이다. 이곳이 두 번째 인증 지점이다.
고갯마루까지 내려왔으니 회암봉까지 올라야 한다. 이제 곧 어두움이 찾아올 것 같다. 오늘 비박은 회암봉 부근으로 생각을 해 본다. 강풍에 소나무가 댕강 부러져 길을 막아 놓은 곳도 있다. 하룻밤만 지새우지만 탠트 자리는 중요하다. 바람이 부는 반대편에 터를 잡아야 한다. 겨울바람은 모질고도 매섭다.
좀체 마음에 드는 자리를 구하지 못하다가 명당자리를 잡았다. 바람을 피할 수 있고 눈이 녹아 낙엽이 깔린 자리다. 눈을 조금만 정리하면 탠트를 칠 수 있겠다. 팩을 박을 돌을 찾아도 없어 참나무 곁가지를 잘라 망치로 사용하니 훌륭하다. 야외에서는 그때그때 생각을 짜내는 반짝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탠트는 천조각 2겹인 내피 외피지만 그 안과 밖은 하늘과 땅만큼 포근함의 차이는 생활해 본 사람은 안다. 집이 이리도 귀중하고 좋은지 새삼 느낀다. 배낭을 열고 짐을 꺼내 놓으니 잡동사니가 많기도 한다. 이런 게 있어야 비박 생활을 할 수 있다. 산중에 먹는 한 끼 식사는 시장이 반찬이라고 어느 요리보다 최고로 맛이 있다. 홀로 밤과 친구 하며 침낭 속으로 들어간다. 참 포근하다.
오후만 산길을 부지런히 걸었더니 11km나 걸었다. 조금은 힘들고 불편해도 좋아서 하는 일은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나태주 시인의 '행복'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주변이 있다. 그걸 찾을 줄 알고 볼 줄 아는 힘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산속에 밤은 할일이 없어 일찍 잤더니 일찍 눈을 뜨게 된다. 말똥말똥 눈만 뜨고 있다가 잠이 오지 않아 일어 났다. 나이들면 잠도 줄어드나 보다. 깜깜한 새벽에 누룽지로 아침식사를 하고 배낭을 꾸렸다. 탠트 안과 밖은 딴세상이다. 이왕 걸어야 할 길이라면 빨리 걷는게 좋다.
1,200m의 높이가 되는 길이라 눈이 푹푹 빠진다. 눈길은 힘이 2배도 더 힘든다. 땅따먹기를 한다. 조금씩 조금씩 거리를 늘려 간다. 아직은 아침이 멀었다. 헤드랜턴이 비추는 길이 전부인 나만의 세계다.
선달산(1,236m)에 오르기 전에 된 비알을 오른다. 마루금길에서 50여m를 벗어난 거리에 선달산이 있다. 예전에 백두대간을 걸을 때 여길 지났다. 소백산 자락으로 북으로는 옥돌봉이 있다. 늦은목이로 내려 가는 내림길이다. 늦은목이는 눈이 없다. 이곳은 소백산 자르닥길도 지나는 고개다. 백두대간, 소백산 자드락길, 외씨버선 길의 이정목이 어지럽다.
마루금길 종점은 상운사입구다. 여기까지 왔는데 상운사에 들려 잠시 절이라도 한번 하고 가야겠다. 허물어진 절터에는 아직 대웅전이 없고 주춧돌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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