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달림의 걷기여행과 마라톤 그리고 등산
남해 바래길 지선 2코스 노량바래길 본문
금산 바래길을 끝내고 남해읍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노량으로 향했다. 노량 유람선 선착장에서 노량 바래길은 시작된다. 노량은 정유재란 때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곳이기도 하다. 그때 하신 말씀 "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지금도 회자되는 말이다. 그래서 이곳에는 이순신 장군을 모신 사당인 충렬사가 있다.
돌계단을 올라 서면 충렬사 대문을 지난다. 충렬사의 내삼문을 들어가면 정면에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비와 비를 보호하는 비각이 나타난다. 이 비각에는 ‘보천욕일(補天浴日)’이라 적은 현판이 있다. 이 현판의 글은 박정희 대통령이 쓴 글이다.
‘보천욕일(補天浴日)’이란 '하늘을 수리하고 해를 목욕 시킨다'는 뜻으로 정유재란 때 명나라 어왜도총관 전군도독부 도독의 신분으로 전란에 참가한 명나라 진린(陳璘) 도독이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장군과 함께 승리를 이끌었지만 이순신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운명을 달리하자 장군의 공을 명나라 황제에게 보고한 내용에서 나온 글이다.
‘보천(補天)’은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저술한 『회남자(淮南子)』의 <남명훈(覽冥訓)>에서 나오는 글이다. “옛날에 물을 다스리는 신, 공공(共工)과 불의 신, 축융(祝融)이 싸워서 공공이 패하자 서쪽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인 불주산(不周山)을 머리로 부딪쳐 무너뜨렸다. 그래서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땅이 갈라지며 홍수와 큰 불이 났다. 이를 여와가 강에서 ‘오색 빛깔의 돌을 골라 불로 녹여서 부셔진 하늘을 보수하고(煉五色石以補蒼天)’ 홍수를 막아 재앙을 다스렸다.”고 전하는 글에서 빌려온 것이다.
‘욕일(浴日)’은 고대의 백과사전이라 전하는 ‘산해경(山海經)의 대황남경(大荒南經) 편’에서 빌려 온 글로 “태양의 신 희화(羲和)는 제준(帝俊)의 아내로 10명의 태양을 낳았다. 그들은 동쪽 바다 밖 탕곡의 큰 나무인 부상(扶桑)에 살았는데 10개의 태양은 하루씩 번갈아가며 하늘을 감시했다. 희화는 그날의 일을 맡은 아들인 태양을 늘 수레에 태워 바래다주었는데 매일 아침마다 수레에 오르기 전에 ‘태양들을 데리고 감연에서 깨끗하게 목욕했다(方日浴于甘淵)”는 것에서 욕일이라는 말을 빌려왔다.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시고 잠시 이곳에 모셨다가 아산 현충사로 모셨다고 한다. 지금도 허묘가 사당 뒤에 남아 있다.
노량 앞바다에는 당시 거북선을 재현한 거북선이 있다. 이곳 거북선은 1951년 건조한 돌격용 배로 이충무공전서와 옛 선박의 관련 기록을 참고로 하여 노산 이은상 등 학계 전문가 16인의 고증을 받아 1980년 1월 해군 공창에서 복원하여 해군 사관학교에서 전시 관리하다가 1999년 현 위치로 옮겨와 이순신 장군의 사당인 충렬사 아래에 전시하고 있다.
내부는 2층으로 아래층은 수병이 노를 젓는 공간이고 위는 함포를 배치하여 대포를 쏘는 공간이고 장군이 머무는 공간도 배치되어 있고 부엌과 의무실도 있다.
노량공원길로 가는 오르막에 여름의 고온 다습한 열기에 등줄기가 축축이 젖어 온다. 노량공원을 지나면 산성산 숲길을 걷는다. 편백나무와 소나무가 함께하는 숲길은 시원해서 걷기 좋은 길이다. 산림욕에 최고인 편백숲길이다.
한때는 대학나무라 하여 귀히 여겼던 유자나무는 지금은 관리가 되지 않아 높은 키를 자랑한다. 남해에 유자가 보급된 것은 신라 문무왕 때 해상왕 장보고가 중국에서 들여왔다고 한다. 노량 전망대에는 시야가 확 트이지 않는 곳이 자리하고 있다. 숲길로 내려 서면 레인보 전망대로 가는 길이다.
숲길이 끝나면 왼쪽으로는 노량대교가 오른쪽으로는 남해대교가 육지와 연결이 된다. 노량대교는 광양이나 하동 쪽으로 연결되는 다리이고 진주나 부산으로 연결되는 남해대교다. 레인보 전망대에 올라서니 남해바다의 바람이 다 모인 듯 시원하게 불어 준다.
남해대교 끝에 남해각은 남해대교가 개통되던 1979년 지은 건물로 지금은 옛 추억을 더듬는 추억의 장소가 되었다. 국내 최초 현수교인 남해대교는 당시만 해도 신혼여행지, 수학여행지가 될 만큼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길이가 660m이고 높이가 52m인 남해대교는 당시만 해도 대단한 자랑거리였단다. 지금은 주황색인 남해대교의 색은 한때 관리의 편의성을 위해 회색으로 칠했다가 남해의 색이 아니라는 이유로 남해군민들이 반대를 하여 다시 주황색으로 칠 했다고 한다. 주황색이 남해대교의 색은 군민에게 친근해진 색이었나 보다.
돌아오는 길에 이순신 순국 공원을 둘러보았다. 남해는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가 많은 섬이다. 장군의 나라사랑을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국내 걷기여행 > 남파랑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해 바래길 240km 완보 마지막 코스 이순신 호국길 (0) | 2022.07.09 |
---|---|
남파랑길 37코스 한국의 갈라파고스 고사리 밭길 (0) | 2022.07.02 |
남해 바래길 지선 3코스 금산 바래길 (0) | 2022.06.29 |
남해 바래길 16코스 대국산성길 (0) | 2022.06.16 |
남해 바래길 15코스 구두산목장길 (0) | 2022.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