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달림의 걷기여행과 마라톤 그리고 등산
한 여름 설악산 천불동 계곡으로 대청봉 산행 본문
올여름 폭염은 더워도 너무 덥다. 잠시 더위를 피해 산으로 가보자 해서 찾은 곳이 설악산 천불동계곡이다. 계곡 바위들이 천 개의 부처 같이 보인다는 바위와 계곡미는 한국의 계곡 중 단연 으뜸으로 꼽는다. 반포터미널에서 아침 6시 30분 고속버스로 속초에 도착하니 9시 20분이 되었다. 산에 들기 전에 황태정식으로 아침식사를 든든히 하고 터미널 건너편에서 7번 시내버스를 타고 산행 시점인 설악산 소공원에 도착하니 10시 30분이 되었다.
작년 4월까지는 설악산은 사찰 관람료를 받았지만 폐지되어 신흥사 땅을 밟고 설악으로 드는 길에는 설악산 반달곰이 맨 먼저 맞아준다. 권금성으로 오르는 케이블카는 오늘도 열일을 한다. 신흥사 일주문을 지나면 설악산 통일대불 청동좌상이 설악산 길목을 지키고 있다. 오른쪽 길은 신흥사와 울산바위로 가는 길이고 천불동계곡은 왼쪽길로 향한다.
고즈넉하니 소나무 숲길을 걸을 때는 숲의 진한 풀내음이 코끝을 자극하고 숲 속 길이라 그늘이 져서 햇살을 피해 걸을 수 있어 좋다. 숲 속 길 끝에는 마고선이 바둑을 두던 곳이라 하는데 바위나 계곡미가 뛰어 난 담(潭)이 있는 곳이다. 예전에는 이곳에 매점이 있어 오르내리면서 목을 축이곤 했는데 말끔히 정리되었다.
설악의 바위미가 느껴지는 장군봉 아래에는 비선대다. 와선대에서 유유자적 신선놀음을 하던 놀 마고선(仙)이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곳으로 널찍한 바위 위에는 시인 묵객들이 여름날 이곳에 놀면서 시조를 돌에 새기고 이름 석자도 새겨 놓은 게 지금까지 남아 있다. 한때는 장군봉 바위에 붙어 암벽등반을 하던 때가 새삼 그립니다.
오른쪽 길은 마등령과 원효대사가 수도했다는 금강굴로 가는 길이고 왼쪽 계곡길로 들어섰다. 여기부터 계곡과 함께 얼깨동무하며 걸으니 한결 시원해졌다. 초입에 처음 만나는 계곡은 설악골로 바위등반하는 길로 석주길과 흑범길이 있다. 석주길의 이름은 이곳 바위길에서 사고를 당한 그들의 이름 00석, 00주에서 젊은 영혼을 달래려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설악골은 공룡능선의 범봉에서 발원하는 계곡이 깊어 돗자리 하나 깔고 쉬면 에어컨은 저리 가라다.
문수담과 이호담의 옥빛 웅덩이를 지나면 귀면암이다. 여기 오르는 길이 까끌막이라 등에 땀이 촉촉이 젖는다. 설악의 천불동계곡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험상굳은 얼굴로 잡귀를 물리 친다. 이곳 쉼터에 앉자만 있어도 계곡으로 부는 시원한 바람에 더위는 금세 사라진다. 나이 지긋한 산객은 이곳에서 오수를 즐기고 계신다.
오련폭포 오르기 전 천불동 계곡에 잠시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혔다. 발만 담가도 어찌나 시원하던지 물속에는 1 급수에만 산다는 버들치가 떼를 이루어 헤엄을 친다. 버들치를 중태기라 부르기도 한다. 천불동의 계곡은 아직 잘 보존되고 있다. 오련폭포 앞까지 올랐던 파란 눈의 커플은 여기서 발길을 돌려 내려간다. 요즘 설악에는 외국인이 부쩍 늘었고 설악산의 산세에 반해 원더풀을 연발하며 아름다운 산이라 한다.
다음은 양폭대피소다. 지난번 수해로 대피소가 무너 졌는데 새로 보수를 하고 물이 넘쳐 들어오지 못하게 앞으로 돌담을 쌓았다. 양쪽에 폭포가 있어 양폭이라 부르는데 오른쪽이 양의 기운을 가진 양폭 왼쪽 염주골에서 내려오는 폭포를 음폭이라 한다. 세상은 음양의 질서가 이곳 양폭에도 있다.
가파른 철계단을 오르면 천불동계곡의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한 곳인 천당폭포 가는 길이다. 예전 이곳에 철계단이 놓이기 전에는 아슬아슬한 길이었다 깎아지른듯한 바위 절벽사이 길을 오르내렸고 주변 바위가 설악의 멋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천당폭포에 오르면 천계에 든다 하니 이곳까지 오름이 만만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마지막 고개는 무너미재다. 오르기 전에 왼쪽 계곡은 '죽음의 계곡'으로 1969년 2월 에베레스 원정대가 동계훈련 중에 눈사태로 유명을 달리한 '10 동지' 눈사태가 발생한 계곡이다. 그 사고는 지금까지 가장 큰 산악사고로 기록되고 있다. 오늘 오름길의 최고의 오름길인 무너미재를 오르니 설악의 등줄기 공룡능선으로 가는 들머리가 왼쪽으로 길을 안내를 한다. 가을이면 꼭 걷고 싶은 길이지만 한 여름은 아니다 싶다.
희운각 전망데크는 보수 중이라 출입금지 줄을 쳐 놓았다. 200m만 가면 오늘의 목표인 희운각 대피소다. 작년에 이 대피소를 찾은 날이 새로 짓고 첫날이라 기억이 또렸하다. 친환경적인 목재로 지은 대피소로 기존이 침상개념에서 업그레이드하여 개인적 칸막이 공간을 만들어 놓아 하룻밤을 쉬어 가기 좋은 곳이다.
시간상으로는 대청으로 올라갈 수 있는 여유가 있지만 중청대피소가 공사 중이라 이용을 할 수 없어 희운각대피소에 머물기로 했다. 일본이나 유럽 트레킹에서도 아침 일찍 서둘러 출발하고 오후 3시경이면 더 이상 걷지 않고 쉬면서 산을 즐긴다. 빨리빨리 근성이 몸이 벤 우리는 어두워질 때까지 걷곤 하는데 이젠 좀 여유로운 산행을 해도 좋을 것 같고 이왕이면 가벼운 책을 가지고 와서 읽으면 느낌이 있다.
오후 3시 30분부터 대피소 입실이 가능하여 첫 입실자가 되어 가장 좋은 가장자리인 101번 자리를 배정해 준다. 벽 쪽 첫 번째 자리라 조용히 쉴 수 있어 좋다. 휴대폰의 브런치의 글 읽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산에서 읽는 글은 더 집중이 더 된다. 산중에서 나만의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다. 희운각 대피소는 높은 곳에 자리하여 가만히 있으면 서늘해 긴팔로 바꿔 입었다. 설악의 여름산은 에어컨이 없어도 덥지는 않다. 산이 주는 큰 선물이다.
주중이라 대피소도 한가하니 분답지 않아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며 보내는 시간도 좋다. 국립공원에서는 음주가 금지 된 후로 생긴 새로운 풍습도다. 밤이 되니 되니 도시의 불빛이 없어 설악의 하늘에는 별이 초롱초롱하다. 부부끼리 온 팀은 돗자리를 깔고 하늘의 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도시에서는 별을 잊고 살아간다. 설악의 밤이 추억과 동심의 세계로 안내를 했다. 산이 주는 선물을 제대로 받는다.
희운각 대피소의 밤은 가을밤이었다. 대피소의 소등시간은 다음날 산행을 위하여 밤 9시에 일제히 불을 끈다. 산행 다들 긴 거리를 걸은 탓에 곤히 잔다. 가끔은 코골이도 있지만 피곤한 탓에 잘들 잔다. 일찍 잤으니 일찍 일어 난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누룽지를 끓여 먹고 소청봉으로 향했다. 설악에서도 가장 가파르게 오르는 길로 계단이 많고 돌길로 이어져 힘든 길이다. 헤드랜턴을 켜고 제일 먼저 계단을 올랐다.
해 뜨는 시간이 5시 38분이니 어두운 밤이지만 밤하늘에 별은 많다. 최근에 가장 많은 별을 보며 소청으로 향했다. 출발할 때는 쌀쌀했지만 오르막을 오르니 등이 후끈하다. 계단이 많고 돌길이 많아 발걸음이 더디다. 절반쯤 오르니 동해 바다가 붉어 온다. 해가 뜨기 전부터 주변은 밝아 온다.
소청봉 오르기 전에 동해를 뚫고 구름 위로 붉게 떠 올랐다. 또 하루를 낳았다. 대청봉으로 가는 길에는 이슬이 흠뻑 내렸다. 설악은 한걸음 먼저 가을이 왔다. 구절초가 벌써 하얀 꽃을 피웠고 희귀한 보라색의 금강초롱도 만났다. 대청봉 아래에 설악의 깃대종인 누운잣나무는 빽빽이 자라 본시 모습을 찾았다.
1708m 대청봉은 언제 올라도 좋다. 새벽같이 서둘러 올라온 산객들이 대청봉 표시석 앞에서 추억을 기록한다. 공룡능선의 밖인 외설악은 운해로 가득하다. 이맘때는 운해로 아름다운 설악이다. 설악에 왔으면 그래도 대청봉을 찍고 가야 기분이 개운하다. 왔던 길을 되짚어 소청으로 향했다. 중청대피소는 낡은 대피소를 허물고 새로 짓는 공사가 진행되고 이제 겨운 터파기를 하고 있다. 겨울이 빨리 오는 설악에서 년내 준공은 힘들 것 같다. 중청대피소는 산악인들이 대청봉과 가깝고 제일 높아 모두 좋아하는 대피소다.
소청봉에서 이번 산행은 계곡산행이라 봉정암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소청대피소 가는 길에 이슬이 흠뻑 내려 바짓가랑이가 다 젖는다. 소청대피소 탁자에는 느직이 일어난 산객들은 여유로운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여기서 바라보는 공룡능선과 용아장성 능선이 일품이다. 공룡의 등줄기 닮았다고 공룡능선이고 용의 이빨을 닮았다고 용아장성이라 부르는 암릉은 이제는 갈 수 없는 출입금지 구간이다. 너무 험해 산악사고를 예방하려고 국공에서 통제해 버렸다. 암릉구간으로 전망이 일품인 구간인데 아쉽다.
용아장성의 능선이 끝나는 곳에 자리 잡은 봉정암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한 암자로 불상이 없는 우리나라 5대 절멸보궁 중 하나다. 워낙 유명한 암자라 전국의 불자들은 봉정암을 꼭 찾는다. 오 층 석탑은 외따로 홀로 언덕 위에 있지만 이곳에 부처님의 불사리가 봉안된 곳이다. 봉정암은 오가는 산객과 불자를 위해 무료 공양을 하고 있다. 밥과 미역국 그리고 오이지가 전부지만 이 깊은 첩첩산중에 이것만 있어도 감사할 일이다. 긴 구곡담계곡을 걸어야 하기에 든든이 배를 채우고 오 층 석탑에서 백팔배를 올리고 길을 재촉했다.
구곡담계곡에서 봉정암으로 오르는 길을 예전에는 깔딱고개라 불렀는데 어느새 해탈고개로 이름을 바꾸어 놓았다. 깔딱 고개보다는 해탈고개란 이름으로 잘 지었다. 이 고개가 구곡담계곡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다. 구곡담계곡 길은 이제부터 많이 순하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은 편하다. 오름 길을 오르시는 스님도 여름 더위에 많이 힘들어하신다.
쌍룡폭포는 두 개의 폭포가 만나서 쌍룡폭포라 부르며 우측 폭포를 남성폭포라 하고 좌측 폭포를 여성의 치맛자락 같다 하여 여성폭포라 한다. 두 개의 폭포가 만나 못을 이루고 흘러내리는 폭포는 손자폭포라 용손폭포라 부른다. 아래로 내려 갈수록 수량이 풍부하니 폭포가 점점 큰 소리를 내며 흐른다.
할머니들이 목에 명찰을 걸고 오는 게 단체로 봉정암 참배를 가신다. 300명이 오셨다니 대단한 행렬이다. 이런 더워에 그 길을 오르는 것은 오직 불심으로 오르시는 것 같다. 시주할 물품도 배낭에 챙기고 더러는 미역도 많이들 매고 가신다. 70대의 할머님도 뵈는데 대단한 체력이다. 수고하신다고 인사를 드렸더니 '성불하십시오.' 하신다.
수렴동대피소에 내려오니 아직도 그 행렬은 이어진다. 여름산행은 체력소모가 많아 먹는 만큼 걸으니 여기서 배낭을 뒤져서 간식을 챙겨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오세암 삼거리를 지나면 영시암이다. 많은 나들이 객과 산객이 그늘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산을 많이 내려왔더니 기온이 많이 올랐다.
마등령에서 시작하는 곰골과 저항령에서 시작하는 길골을 지나면 백담사다. '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한용운 시인이 이곳 백담사에서 그 시를 쓰셨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첩첩산중의 절인 백담사는 지금은 8km 아랫마을 용대리에서 백담마을버스가 운행되지만 그땐 멀고 먼 험한 길이었다. 얼마나 깊은 계곡이었으면 백개나 되는 담(潭)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백담계곡이다. 요즘은 걷기를 할 수 있도록 백담사 둘레길이 새롭게 잘 조성되어 있다.
연일 폭염에 1박 2일의 설악산 계곡산행은 잠시나마 도시에서 벗어나 숨통을 틔우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무념무상으로 걷는 산길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고 한걸음 빨리 찾아오는 대청봉에서 먼저 가을을 만나고 왔다. 가을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고 곧 찾아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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