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달림의 걷기여행과 마라톤 그리고 등산
설악 단풍길 공룡능선 본문
가을엔 마음이 바쁘다. 춘마, 제마 대회가 있고 설악에는 단풍이 물든다.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진 않다. 얼른 설악의 단풍을 만나러 다녀와야겠다. 당일 산행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하룻밤은 설악에서 별을 보며 보내고 싶다. 대피소 예약도 단풍철엔 별따기다. 대기 예약을 걸어 두었더니 행운이 있었다. 한계령 가는 차표도 동이 났다.
대안으로 고속버스로 속초를 가서 설악동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문제는 출발이 한계령보다 2시간이 늦고 공룡능선을 타야 하니 거리는 늘어났다. 가는데 까지 가보자.
속초에서 설악동으로 가는 도로는 단풍을 만나러 온 차량으로 지체와 서행으로 하세월이다. 마음이 급해 기사님께 미리 내리면 안 될까요? 안된단다.
너무 막히니 겨우 한 정거장 전인 컨싱턴호텔 앞에서 차문을 열어 준다. 설악동은 인산인해다. 10시 14분 소공원 출발이다. 국공에서 공룡능선을 타려면 11시간이 권장시간이다. 늦은 시간이라 빨리 갈 수밖에 없다.
마음은 천불동, 공룡능선 두 갈래길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못 먹도 고는 마등령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산을 내려오는 산객은 있어도 올라가는 산객은 혼자다.
와선대, 비선대를 지나 금강굴, 여기까지 올라도 땀으로 다 젖었다. 마등령 오르는 길은 숭악한 오르막 돌길이 발길을 잡는다. 그래도 가야 하고 그것도 빨리 걸어야 한다. 숨이 탁탁 막 흰다. 금강굴 500m 위부터 노랗고 빨간 단풍을 만났다. 금강문을 앞두고 12시가 되어 체력이 떨어진다. 먹어야 가기에 10분 만에 점심식사를 끝내고 또다시 길을 재촉했다.
마등령에는 오후 1시 30분에 도착했다. 당일치기 여행사 산객은 모두 지나갔다. 근데 외국인이 한 명 있다. 프랑스인으로 공룡능선을 타고 천불동으로 내려간단다. 시간을 보니 일몰시간에 걸리는데 랜턴도 없단다. 그래도 간단다. 거참! 한국산을 만만히 보는 건 아닌가?
나한봉을 지나니 모녀팀이 희운각으로 간단다. 연세가 좀 있고 따님은 말이 어눌한 게 빠르게 걷지 못한다. 해 전에
희운각 가시겠냐고 하니 렌턴도 준비했단다. 미리 가거든 늦게 온다고 국공에 알려 달란다. 다 계산이 있는 분인데 내가 괘한 걱정을 했다. 한두 번 다녀본 게 아니다.
오후가 되니 외설악에서 운해가 끊임없이 밀려와 외설악은 구름바다로 변신을 한다. 백두대간 길을 가운데 두고 동서가 완연히 다르다. 공룡능선의 단풍이 자꾸만 발길을 잡지만 가야 할 길은 빨리 가야 하니 마음만 급하다. 1275봉을 가는 길에 가야동계곡의 단풍이 더 곱다. 내일 하산길은 대청봉을 찍고 봉정암에서 오세암 길로 잡아야겠다.
1275봉에서 지친 젊은 산객을 만났다. 아침 6시에 소공원을 출발했단다. 이제 마음의 여유가 좀 있다. 운해는 끊임없이 밀려와서 범봉을 가리곤 한다. 내설악이 있어 단풍을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다. 마지막 봉은 신선봉이다. 오름길에 부부팀 몇 명을 만나고 오르니 잠시 운해가 1275봉과 범봉 사이를 채우니 한 폭의 동양화가 따로 없다. 그래도 마지막에 얼굴을 보여주니 고맙다.
대청봉도 운해가 가렸다가를 반복하고 서북능선만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신선봉의 마지막 하산길은 암벽에 박아 놓은 쇠막대 구간을 지나야 한다. 이곳이 제일 위험구간이다. 안전을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내려서니 무너미재로 반대편에 있는 공룡능선 들머리로 희운각 200m 전이다. 벌써 내려가야 할 프랑스인 젊은이가 이제 무너미재를 내려간다. 다행인 것은 한국인들이 있어 같이 묻어가면 될 것 같다. 희운각에 도착하니 16시 52분으로 6시간 38분이 걸렸다. 두 번 잠깐 쉰 게 고작이니 빨리도 걸었다.
설악의 산중은 금세 기온이 떨어져 걸을 때는 반팔로 왔지만 체온이 식어 오리털 패딩을 입어야 했다. 설악은 한걸음 먼저 계절이 빨리 온다. 산중의 밤은 빨리도 찾아온다. 내일은 대청 일출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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