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산달림의 걷기여행과 마라톤 그리고 등산

여름같은 더위에 퍼져 버린 영주 소백산 마라톤 대회 본문

국내 마라톤/풀코스

여름같은 더위에 퍼져 버린 영주 소백산 마라톤 대회

산달림 2024. 4. 16. 10:53

런너에게 여름더위는 쥐약이다. 더위에 약할 줄 알면서 한낮의 23도 기온에 대비한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 그냥 달리면 되겠지란 안일한 생각에 된통 힘든 대회가 되었다. 2년 전 이맘때 나주 영산강 마라톤 대회에서도 더위로 쥐 잡느라 4:06:56으로 완주한 적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까먹고 다시 그런 우를 범했다.

 

출발전 출발선에서 기념사진



영주 소백산마라톤은 참가신청을 하면 무료 셔틀버스가 제공된다. 새벽 5시 서울역 스퀘어빌딩 앞에서 마라톤 버스를 타기 위해 새벽에 택시를 이용했다. 달리기에 대한 열정으로 두대의 버스가 거의 찼다. 잠실에서도 2대의 버스가 더 출발했다. 마라톤은 중독성이 강해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새벽은 한적한 고속도로를 거침없이 달려 제천쯤에서 잠시 휴게소를 들려도 대회장엔 7시 40분에 도착했다.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해 아직 대회장이 조용하다. 출발시간이 9시 30분이니 1시간 50분이나 남아 넉넉한 시간이다. 천천히 달릴 준비를 해도 여유로운 시간이고 아침시간에도 춥다는 느낌이 없다.

 

아직은 한가한 출발선



영주 소백산 마라톤대회는 지역축제로 전국 달림이 뿐만 아니라 영주군민도 면단위로 참가하는 잔칫날로 먹거리가 풍족하고 선착순 선비촌 숙소도 무료 제공하며 다른 대회보다 참가자에 대한 배려가 큰 대회다. 몇 년 전엔 회룡포 마을의 민박촌을 무료 제공받아 회룡포에서 추억을 만들고 간 적도 있다.

 

2024 영주소백산마라톤 풀코스 출발!!!



한낮으로 가면서 기온이 오를걸 감안해 여유 있는 330을 목표로 달려 볼까 하고 출발선에 섰다. 대구국제마라톤 대회날과 겹쳐 풀코스 참가자가 많지 않다. 9시 30부 영주공설운동장을 출발하여 영주 시내를 지난다. 평소와 같이 km 당 4분 57초로 출발하니 편하다. 이내 330 페메가 달리기에 함께 했다. 페메는 초반은 조금 빠르게 달려서 후반에 체력이 떨어지면 늦어지는 걸 만회한다.

5km쯤 작은 언덕을 내려갈 때 탄력을 유지해 그대로 달렸더니 330 페메를 앞설 수 있었다. 페메와 함께 달리면 급수대에서 물을 마실 때 한꺼번에 여럿이 몰려들어 번거롭고 나만의 페이스보다는 페메의 페이스에 맞추어야 하니 홀로 달리는 게 편했다. 2 ~ 30m 거리를 두고 달리는데 앞서 가던 런너와 거리가 좁혀진다. 

15km를 지날 때쯤 페메와 거리를 벌리지 못하고 페메를 먼저 보냈다. 기온이 올라 가면서 왠지 몸이 무겁다는 느낌이 든다. 이럴 때는 무리하지 페이스를 올리지 않고 혼자 달리는 게 편하다. 그들과 30m 거리를 두고 달리니 아직은 편한데 더운 날씨로 땀이 많이 흘러내린다. 2.5km 급수대마다 꼬박꼬박 급수를 하고 달려도 흐르는 땀에 갈증이 난다. 식염을 챙겨야 하는 걸 챙기지 못했다.

이번 코스의 최대 오르막인 선비촌 앞 19km를 지날 때는 왠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몸이 무거웠다. 평소 같으면 오르막에서 충분히 330 페메는 따라잡는데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이어지는 내리막길에 조금 힘을 내어 본다. 바로 잡힐 듯 잡히지 많은 330 페메 그룹이다. 몸만 살아나면 언제든 따라잡을 거리이기에 후반을 기대해 본다.

풀코스의 절반인 21km 반환점을 지날 때 확인하니 아직은 330이 가능한 딱 1시간 45분을 지나고 있다. 지금까지는 오르막이 많은 길을 달렸다면 지금부터는 은근한 내리막길에 조금 다리에 힘을 주고 달리니 속도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어찌 몸이 묵직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르막 구간을 빼고는 450대를 달리고 있으니 그리 무리한 레이스도 아니다. 정오로 향하는 기온은 점점 올라 20도를 넘어가고 구름 한 점 없는 뙤약빛이 내려 쬐는 시골길이다. 영주는 사과의 고장답게 사과나무를 손질하는 농부님의 손길이 분주하고 마을을 지날 때는 노인회 어르신들이 길가에 나오셔서 박수를 치면서 큰 응원을 보내 주신다.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고 노인네들만 사는 동네에 마라톤 대회는 큰 구경거리가 된다. 소멸위기에 처함 농촌에 젊은이가 다시 돌아오는 농촌이 되는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 그런데 25km를 지나자 왼쪽 종아리에 미세 통증이 느껴진다. 이에 뭐지? 근육 손상? 그건 아닌 것 같다. 속도를 조금 늦추었다. 그래도 통증은 가라 않지 않는다. 그건 지금껏 한 번도 올라오지 않는 종아리 쥐였다.

속도를 늦추고 달리면 덜하고 속도를 높이면 더하는 통증이 찾아왔다. 잠시 걸으니 편하고 달리면 다시 재발하는 통증이 찾아왔다. 남은 거리가 17km로 적지 않게 남았는데 여기서 포기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껏 풀코스에서 포기를 한 적이 없는데 새로운 기록을 세우는 게 용납하지 않았다. 늦어도 Go!

왼다리에는 힘을 적게 주고 오른 다리에 힘을 주고 절뚝거리며 달렸다. 연신 추월해 가는 주자를 보며 평정심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27.5km 급수대 도착하여 스프레이 파스가 있는지 찾으니 꺼내 준다. 스프레이 파스로 종아리 근육을 식혀주니 고 조금 낫은 것 같다.

28km 가는 길은 거리를 맞추기 위해 들어갔다가 돌아 나오는 코스다. 그 길을 달려 들어가니 돌아 나오는 330 페메 그룹에 왕년의 여제 이*숙님이 합류해 있다. 330 페메보다 많이 앞서 갔는데 그녀도 더위 앞에는 체력의 한계를 만난 것 같다. 누구든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은 진리다.

마라톤은 달리는 기술만으로는 풀코스를 완주할 수는 없다. 거기에 체력이 함께 동반되어야 한다. 평소 균형 잡힌 식사와 휴식이 더해져야 한다. 하나 더한다면 젊음이다. 젊은 시절은 자고 일어나면 회복이 되지만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 회복시간이 길어진다. 그게 나이가 들었다는 증상이고 점점 휴식의 시간을 늘려 가야 한다.

이제는 6분 주도 버거운 시간들이다. 앞서가던 청춘들도 하나, 둘 퍼져서 걸어가는 런너들이 늘어 간다. 완주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으니 시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냥 지금에 최선을 달릴 뿐이다. 걷지는 말자! 청춘들은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한다. 그들은 빠르게 뛰고 한동안 걷고 다시 빠르게 뛴다. 꾸준한 거북이의 느리게 뛰는 나와 그들과는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다.

이젠 급수대를 지날 때는 두 컵의 물을 마셨다. 12시를 넘긴 뙤약볕은 따갑도록 강하고 땀이 말라 어깨에는 소금을 만들어 허옇게 말라 붙어 있다. 38km쯤을 지날 때 구세주 같은 100회 클럽의 남궁만영 님이 응원차 나와 콜라를 한잔 건네준다. 갈증이 날 때 탄산의 시원함이 이리도 맛이 있을  줄이야. 시원하게 한잔 마시고 go go!

 

38km 지점 통과 (사진 제공 남궁만영님)



달리고 달리다 보면 피니쉬로 다가가고 남은 거리는 줄어든다. 버티고 견디는 힘이야 지금까지 달리면서 매 대회마다 몸으로 익혀 왔다. 이제 아침에 출발한 영주시내길을 달린다. 봄을 알리는 강변의 벚꽃은 흐드러지게 펴서 한층 무르익은 봄을 알리고 있다. 사거리를 지날 때는 교통통제를 하고 길을 열어 준다. '모두가 나의 응원한다.'라고 최면을 걸어 달린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을 치고 인간을 달린다! '인간 기관차 에밀 자토펙이 남긴 마라톤 명언이다. 그래 인간은 달리는 거야!

37km부터 함께 달려온 영주시청 유니폼을 입은 젊은이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지만 이제는 앞서 보고 싶다. 느린 달리기로 종아리 상태도 많이 좋아졌다. 그를 앞서 마지막 사거리를 지나 영주공설운동장으로 들어서니 큰 전광판에 나의 모습이 비춰지고 사회자가 배번과 이름을 여러 차례 소리 높여 불러 준다. 고래도 칭찬을 하면 춤을 춘다 했다.

 

운동자 앞 무대를 지나면 운동장 안으로 들어서면  붉은 트레이 나만의 길을 선물해 준다. 그 길을 달려 피니쉬 라인으로 빨려 들었다. 3시간 52분 20초로 서브포는 달성했고 192 번째 풀코스 마라톤은 사연도 많고 힘들었던 105리 길이었다. 42.195km 그 길에는 인생의 삶이 녹아 있는 그런 길이었다. 더위는 결코 얕잡아 봐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적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오늘도 마라톤에서 인생의 지혜를 몸으로 배웠다.

 

2024 영주소백산 마라톤대회 완주 메달
풀코스 완주 후